권위주의독재-극좌 모두와 싸웠다강성우파? 또 무슨 얼어쥭을 낙인찍기!70여년전 그대들 선배 최후 생각해보길
  • ▲ 관훈클럽이 주최한 토론회. 레거시 언론의 대표선수들이 김문수 후보와 격돌했다. ⓒ 서성진 기자
    ▲ 관훈클럽이 주최한 토론회. 레거시 언론의 대표선수들이 김문수 후보와 격돌했다. ⓒ 서성진 기자
    ■ 관훈토론의 도발적 질문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관훈클럽 질의응답을 보고 느낀 것. 
    질문하는 기자들의 인식이, 답변하는 김문수 후보의 그것을 능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건 물론 필자 개인의 주관적 평가다. 
     
    예컨대, 김문수 당신이 과연 행정 능력이 있다고 보느냔 투의 도발적 질문 자체는 좋았다. 
    그러나, 김문수 후보는 이 질문에 주눅 들지 않고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그것도 월등한 논리와 속사포로. 
    필자가 보기엔.  
     
    “나만큼 일자리를 많이 만든 사람 있나? 
    KTX도 내가 처음 고안했다. 
    삼성 평택공장 아는가?” 
    하는 식이었다. 


    ■ 방패막이 좌경 흉내가 패션

    전혀 꿀릴 게 없었다. 
    필자는 언론 에 있으면서도, 왜 이렇게 언론의김문수 제압 실패를 좋아하는가?  
     
    그것은 오늘의 언론이 대부분좌파-중간파라는 데서 오는 거리감 때문이다. 
    좌파는 좌파니까 당연히 트집 잡게 돼 있다. 

    문제는 일부 다른 언론이다. 
    이들은《좌파》도 못되면서 “나도 수구-꼴통은 아니다” 《방패막이 좌경》티를 낸다.  

     
    ■ 해방공간의 얼치기 바보들

    이런 위선은 8.15《해방공간》에서도 절정에 달했었다. 
    경성제국대학-동경제국대학 등 당시로선 최고 학부《귀공자》출신들이면서도 우~ 하고《남로당-중간파》를 지지했다.  

    이들 상당수는 딱히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승만 건국 노선에 반대하고,《남북협상》에 가담했다. 

    6.25 남침이 있으면서 이들은 의용군에 끌려가거나 북으로 끌려갔다.  
    대부분 도중에 폭격 맞아 죽거나, 굶어 죽거나, 얼어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소(小)부르주아 반동》이란 이유로 숙청당했다. 
    자신들이 설마《북조선 혁명정권》에 의해 숙청당하리라고는 아마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 극우란 없다, 극좌만 설쳐댈 뿐

    그로부터 70년이 지났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의 선진국이 되었다. 
    이 대명천지에서도 적잖은 소장 교수-언론인-예술인들이 시진핑-푸틴-김정은 욕은 하지 않으면서도 이승만-박정희《독재와 대기업 위주》만은 즐겨 탓한다.  
     
    그들은 김문수가 우익 권위주의에 저항하다가 모진 고문을 받을 땐 뭘 했던가? 
    젖 먹이었다고? 
    그럼 잠자코 있던가. 

    그리고 오늘의 김문수가 극좌 전체주의와 싸우는 건 뭐,《강성 우파》
    혹시 극우라는 뜻?
    얼씨구! 
     
    진짜 중도는 극좌 전체주의 일당 독재에 대해서도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중도는 중간이 아니기에. 
    다부동 전투현장에서 중간이 뭔가?  
     
    그리고! 
    특정인에 대한 호불호는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광장을 가득 메운 애국 국민을 모욕하지 말라!

    이래서 뉴 미디어의 분발이 절실하다.
    품격에서도, 지적(知的) 능력에서도, 영향력에서도.

  • ▲ 김문수 후보를 이른바《극우》로 몰아붙이려는 언론들의 저의와 속셈이 그들의 질문에 녹아있다. ⓒ 서성진 기자
    ▲ 김문수 후보를 이른바《극우》로 몰아붙이려는 언론들의 저의와 속셈이 그들의 질문에 녹아있다. ⓒ 서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