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과 의회의 충돌은 내란 아니라 내전의회도 군대 동원해 국왕과 두차례나 전쟁이런 비유라면 현집권층은 독재자 크롬웰 될 듯
  • ▲ 지귀연 판사가 판결문에 느닷없이 영국 국왕 찰스1세를 소환했다. 국왕이 군대로 의회를 공격했기에 국가수반도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법리를 완성하기 위한 사례로 거론했다. 당시 영국 왕과 의회는 사사건건 대립 끝에 양측 모두 군대를 동원해 전쟁을 했다. 그것도 두번이나 했다. 그것은 내란이 아니라 내전이었다. 1, 2차 내전 모두 찰스1세 군대가 패했다. 승자가 된 의회측 크롬웰은 찰스1세 목을 끊었다. 크롬웰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한다고 했지만, 의회를 해산하고 철권통치를 했다. 1인 독재였다. 크롬웰은 죽으며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줬지만, 곧 몰락했다. 왕정이 복고되고 찰스2세가 국왕이 됐다. 크롬웰은 부관참시 됐다. ⓒ 챗GPT
    ▲ 지귀연 판사가 판결문에 느닷없이 영국 국왕 찰스1세를 소환했다. 국왕이 군대로 의회를 공격했기에 국가수반도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법리를 완성하기 위한 사례로 거론했다. 당시 영국 왕과 의회는 사사건건 대립 끝에 양측 모두 군대를 동원해 전쟁을 했다. 그것도 두번이나 했다. 그것은 내란이 아니라 내전이었다. 1, 2차 내전 모두 찰스1세 군대가 패했다. 승자가 된 의회측 크롬웰은 찰스1세 목을 끊었다. 크롬웰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한다고 했지만, 의회를 해산하고 철권통치를 했다. 1인 독재였다. 크롬웰은 죽으며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줬지만, 곧 몰락했다. 왕정이 복고되고 찰스2세가 국왕이 됐다. 크롬웰은 부관참시 됐다. ⓒ 챗GPT
    [편집자 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 혐의 재판 1심 판결에서 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는 느닷없이 영국왕 찰스1세를 법리설명에 등장시켰다.
    지귀연 판사는 윤 전대통령을 군대로 의회를 공격한 찰스1세에 빗대어 자신의 판결을 정당화하려 했다,
    이런 주장은 1600년대 영국왕과 의회의 관계21세기 자유민주공화국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에 기계적으로 등치시킨 우수꽝스런 궤변에 불과하다.

    당시 찰스1세와 의회의 갈등은 왕과 의회 모두 각자의 군대를 동원한 두차례의 내전이었다.
    동시에 로마카톨릭-성공회(영국국교)-청교도(개신교)가 뒤얽힌 종교권력전쟁이었다.
    물리력에서 우위에 선 의회가 1,2차 내전에서 모두 이겨 찰스1세를 투옥했다. 
    다시 의회 내에서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가장 강한 군대를 소유한 크롬웰이 의회내 반대파를 무력으로 숙청한 뒤 찰스1세를 처형하고 의회를 해산한 뒤 철권독재 통치를 했다.

    말만 공화정이지 1인 독재통치를 자행했던 크롬웰이 죽고 아들이 그 뒤를 이었으나 찰스2세를 옹립한 왕정복고가 이뤄졌다,
    이런 역사적 사실 관계를 무시하고, 찰스1세의 군대를 동원한 의회 공격 무자르듯 뚝 잘라 판결 법리를 보강하는 이유로 들이댄 것 은 역사에 대한 모독이자 왜곡이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출신 이인호 전 러시아대사의 칼럼이다.
    ======================

  • ▲ 찰스1세 처형 장면을 기록한 그림. ⓒ 나무위키
    ▲ 찰스1세 처형 장면을 기록한 그림. ⓒ 나무위키
    ■ 계엄 선포가 내란?

    오래 살다 보면 희한한 일도 겪는다. 
    우리 대한민국이 민주화 과정에서 이제 세계 최첨단을 달리는 모앙이다. 

    헌정체제 붕괴를 막겠다는 의도의 계엄 선포를 구실로 국민 직선 선출 대통령을 탄핵하더니, 급기야《내란우두머리(북한의 “내란수괴”를 우리말 로 표현한것)로 지목하여 1년간의 구속재판 끝에 종신형을 선고했다.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힘이여! 

    여권 수뇌부는 그것도 모자라 사형대신 종신형을 선고했다고 재판관을 질타한다. 
    일각에서는 계엄체제를 무산시킨 공로로 우리 국민이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된다 는 주장까지 나왔다. 

    대통령이 몸담았던 현 야당도 윤석열 대통령과의 절연을 요구하는 세력“윤어게인”을 부르짖는 세력으로 분열되며 국민의 지지를 잃고 있다.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대표정당으로서 지켜야 할 가치와 원칙이 무엇인가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음으로서 정정당당하게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장동혁 야당 대표의 힘겨운 노력은보수》로 치부되는 주요 매체들로부터도 격려를 받기는 고사하고 사사건건 발목잡기에 시달린다. 

    계엄령 선포가 내란의 동의어가 될 수 없다는 일부 법학계 원로들의 목소리는 모기가 앵앵거리는 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무지와 증오와 욕심과 오만의 파고 속으로 사회 전체가 휩쓸려 들어가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 어느 누구의 초동 지시였는가?

    내란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내란을 겪고 있는가, 아닌가? 
    누가 그 주범인가? 

    법과 정치를 말하기 전에 우선 상식과 양심으로 돌아가 보자. 
    2025년 12월 3일 밤 우리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내란을 시작했다고 생각하거나 실제로 경험한 사람이 있었는가? 

    계엄령 선포에  국민 모두가 놀랐고 군의 국회진입에 걱정한 것은 사실이나, 내란이란 오랜 전부터 대한민국의 체제전복을 노리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모르되 정상적인 국민들에게는 상상밖의 일이었다. 
    총 한방 쏘지 않고 피 한 방울 흘림 없이, 시작한지 불과 6시간 만에 항복하는 내란 우두머리가 세상에 존재 할 수 있는가?  

    정치권 밖에서까지 나라가 소란해 진 것은 오히려 정치민주화에도 성공했다고 자랑스러워 하던 우리 대한민국의 현직 대통령을 재판도 없이 내란범으로 지목하여 체포하려는 시도가 어느 누구의 초동 지시였는지도 모르게 시작된 후 부터 가 아니었는가? 


    ■ "동기" 무시되는 데 등장한 "성경 읽기"

    사법부의 이번 판결문은 사실파악에 대한 열정과 논리적 유희, 그리고 엄중한 처벌 기준의 교묘한 배합에서 인류역사 전체의 기록도 뛰어 넘는게 아닌가 싶다. 

    그 판례에 따른다면, 동기가 자기방어였던 아니든 상관없이 어느 누구고 “저 놈 죽여라” 한마디면 곧바로 살인자로 처벌받을 수 있다. 
    그리고 국회는 절대 성역이기 때문에 설사 그 안에 헌정파괴범들이 잠입해 있다는 정보를 국가수반이 갖고 있다 하더라도 국회가 그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면 대처할 방법이 없다. 
    군을 국회와 선관위로 보낸 일 자체가 계엄령 선포가 내란이 되는 “핵심”이라는 주장 이기 때문이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재판부도 "윤대통령이 야당이 무리한 탄핵 소추와 예산안 삭감등으로 정부 활동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음을” 인정했고, 계엄의 목적이 장기독재에 있었다는 검사측의 주장은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시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엄령 선포 “동기”는 그것이 “목적”과는 별개였다는 이상한 구실로 내란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했다.  
    대한민국의 국가체제 존속 여부의 기로에서 고심하던 대통령의 절박했던 결단을 재판부는성경 읽기” 비유로 격하 시켰다.  


  • ▲ 영국 런던 트라팔카 광장에 세워져 있는 찰스1세 동상.ⓒ MSN 화면 갈무리
    ▲ 영국 런던 트라팔카 광장에 세워져 있는 찰스1세 동상.ⓒ MSN 화면 갈무리
    ■ 찰스1세의 처형과 독재자 크롬웰의 철권통치

    이번 판결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내란죄 성립 주장을 뒷 받침하기 위해 역사적 선례나 외국의 사례를 찾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다. 
    결국 1649년 영국의 찰스 1세의 처형에서 국가수반도 반역죄로 처단될 수 있다는 선례를 찾아냈다. 

    그러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부끄러운 억지 주장 이다.
    찰스의 처형은 왕권신수설을 고집하는 왕과 왕권을 제한하려는 귀족들로 구성된 의회파 사이에 벌어진 오랜 내전에서 왕당파가 패배함으로 빚어진 일이지 단순한 의회당 난입사건의 결과가 아니었다

    영국의 의회제도가 정착하고 휘그당 계열의 역사해석이 힘을 얻으면서 찰스의 처형은 한 때《입헌군주제의 출발점》으로 미화되어 세상에 알려졌지만, 왕의 처형에 뒤따른 것은 공화정이 아닌 크롬웰의 독재와 스튜어트왕조의 부활이었다. 

    영국에서 입헌왕정체제가 정착한 것은 40년이 지난 1688년《명예혁명》곧 무혈혁명이 성사된 후였다. 

    가혹한 세금징수 등으로 인기 없던 찰스 1세의 처형에 대한 영국 사회의 반응은 환호보다는 경악과 수치심에 가까웠다. 
    자기의 소신을 굽히지 않은 채로 의연하게 처형당한 왕을 순교자로 추앙하는 분위기가 일었다. 
    1661년에는 영국교회가 그가 처형당한 1월 30일을《찰스 1세 순교자 추모일》로 지정하기도 했다. 
    의회주의자들 조차도 찰스의 처형은《불편한 기억》으로 여기지 자랑거리로 삼지는 못했다. 

    우리 재판부가 윤석열 대통령이 순교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나마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국가수반, 더욱이 자유로운 국민 직선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라면 몰라도 반역 또는 내란죄로 처벌 받는 것은 반란 또는 혁명으로 국가체제가 전복되었을 때 일 뿐이다.
    기존의 헌정체제가 온전한 민주 국가에서  일어 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내란》재핀을 당당했던 지귀연 재판부도 사례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①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현정체제는 지금 온전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지금 내란을 겪고 있는 중이거나 이미 대한민국의 헌정수호 세력은 이미 형해만 남은채로 실질적으로는 패배한 것인가? 

    ② 이제 우리 모두 솔직해지자. 
    지금 이재명 체제하의 대한민국은 1948년에 새로 출범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인가 아닌가? 

    ③ 국민이 계엄체제를 거부함으로서 지키려했던 가치들 – ※ 개개인 국민의 자유와  법치 ※ 공정한 인권 보호와 사회 보장 ※ 복지의 하한선 높이기를 통한 사회 안정과 통합 ※ 투명한 선거제도 ※ 양심과 언론의 자유 ※ 재산권 보장과 시장경체 체제 유지를 통한 지속발전 전망 등은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범으로 처벌하는 현 정권에 의해 더욱 잘 지켜지고 있는가? 

    ④ 일당독재의 국회와 대통령실이 담합하는 현 체제는 전 보다 더 정의롭고 안정적이며 덜 부패했고 나라발전에 효율적인가? 

    ⑤ 기존 체제를 뒤집으려는 쪽이 내란세력인가 지키려던 쪽이 내란 세력인가? 

    ⑥ 국민의 절반이 뽑았던 대통령이 종신형을 선고받았음에도 사회는 기이할 정도로 조용하다. 
    이 정적은 희망인가, 체념인가, 자긍심인가 공포인가? 

    ⑦ 침묵의 피난처로 은신한 국민 절대다수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인가? 

    ⑧ 우리 주요언론들이 보여주는 것 처럼 계파싸움, 표밭 장악 싸움이 정치의 전부인가? 

    ⑨ 기후 위기, 자원 고갈, 고령화, 실업률 증가, 국제 경쟁 심화와 사회갈등 고조, 폭증하는 국가와 가계 부채,  인공지능의 도전 등 우리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런데 국민도 정치지도자들도 전직대통령을 가혹하게 처벌만 하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리라고 믿는가? 

    ⑩ 사람답게 살수 있는 세상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되는가?
    사람과 짐승, 그리고 인공지능을 구분하는 기준은 수치심과 측은지심에 있다. 

    시대착오적인 왕권신수설을 고집했지만 의연하게 단두대에 올랐던 찰스I세를 순교자로 추모하기도 했던 영국인들은 세계 최초로 의회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고 지금까지도 입헌왕정체제 하에서 정치적 안정을 누리고 있다. 
    전직 대통령마다 감옥으로 보내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영국인들 보다 잘나서 인가? 


    ■ 믿는다, 그리고 기대한다

    법은 사람들이 서로 해치지 않고 도우며 살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법조문은 그 정신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고 해석되어야 한다. 
    법관들이라도 법조문에 끼워 맞추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논리적 비약을 일삼아서는 안된다. 

    다만, 필자는 아량을 베풀줄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윤석열 대통령 뿐 아니라 이번의 내란 재판을 맡았던 지귀연 재판부 역시 감내하기 어려운 정치적 압력 아래서 최소한의 양심과 양식은 지키며 살아남으려 노력한 인간들임을 인정한다고.

    그리고 또 믿는다.
    국민 각자가 자기가 서 있는 현 위치에서 세상이 모두 뒤집히는 상황에서라도 나라를 바로 세우며 서로를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최대치가 어떤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고.

    그렇때, 우리 대한민국은 미국에게도 중국에게도 흔들리지 않고, 누구나 노력과 능력에 따라 결실을 거두며, 힘없는 약자들에게도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해주는 자유민주적 복지국가로 바로 서고, 젊은 세대 앞에 희망찬 미래가 다시 열릴 것이다. 

    우리 국민 전체의 총체적 정신적 역량과 판단력에 기대를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