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도 웃도는 무더위…낡은 선풍기에 의지화재 이재민들, 비닐 천막서 폭염과 사투5평 남짓 공간서 6명 생활…물도 부족18일 수도권 최대 80㎜ 비…누전·침수 우려도
  • ▲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의 낡은 판잣집 너머로 고층 아파트들이 보이고 있다. ⓒ임찬웅 기자
    ▲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의 낡은 판잣집 너머로 고층 아파트들이 보이고 있다. ⓒ임찬웅 기자
    "90대 할머니와 80대 할아버지가 더위로 병원에 실려 갔어. 이제 막 여름이 시작됐는데 벌써부터 걱정이야."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이어진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은 사람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만큼 적막했다. 주민 상당수가 생업을 위해 집을 비운 데다 남은 주민들도 더위를 피해 집 안에 머물면서 골목은 마치 유령마을처럼 고요했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문을 열어둔 집에서는 낡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간간이 새어 나왔다.

    골목 곳곳에는 생활 쓰레기와 폐가전 등 각종 폐자재가 방치돼 있었다. 무더위에 달궈진 쓰레기 더미에서는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했고, 낡은 집의 지붕과 벽면은 비닐과 천막, 합판 등으로 덧대져 있었다. 마을 앞쪽에는 강남의 마천루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지만,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구룡마을 주민들은 쓰러져 가는 판잣집에 의지한 채 여름을 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마을에서 30년 넘게 거주한 70대 이모씨는 "여름만 되면 늘 힘들다. 보다시피 마을 곳곳에서 악취가 진동하고 벌레도 들끓는다"며 "오늘은 비가 내린 뒤라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일부 집에는 에어컨이 있지만 대부분 낡은 선풍기에 의지해 더위를 버티고 있다"며 "그마저도 전력 공급이 불안정해 정전이 자주 발생한다. 이틀 전 비가 왔을 때도 마을 전체가 4시간가량 정전됐다"고 설명했다.

    ◆ 집 잃은 이재민들, 비닐 천막서 폭염과 사투

    이씨는 이날 취재진에게 "그래도 우리는 집이라도 남아 있어 그나마 나은 상황"이라며 "지난 1월 화재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은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1월 16일 구룡마을 4지구에서 불이 나 인근 6지구까지 번지며 두 개 지구가 전소됐다. 이 화재로 약 18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강남구청은 화재 직후 호텔 등 임시 거처를 지원했지만, 지원 종료 후 갈 곳을 찾지 못한 일부 이재민들은 다시 마을로 돌아와 비닐 천막 등에 의지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 입구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는 비닐과 천막 등을 이어 붙여 만든 구조였다. 대피소 안에는 이불과 옷가지 등 생활용품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고, 이재민들은 곳곳에 놓인 선풍기에 의지해 더위를 견디고 있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한 이재민은 "매년 여름이 힘들었지만 올해는 유독 걱정이 크다"며 "이전에는 그래도 집이 있어 햇빛을 막을 수 있었고 어느 정도 버틸 만했지만, 이제는 집도 없고 비닐로 만든 대피소에서 지내다 보니 내부가 항상 찌는 것처럼 덥다"고 말했다.

    그는 "온도를 낮춰보려고 자리를 비울 때도 선풍기를 계속 틀어놓지만 별 효과가 없다"며 "중고 에어컨도 구해 설치해 봤지만 전기도 자주 끊기고 바람도 약해 결국 온몸으로 더위와 싸우며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 ▲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내 임시 대피소에 선풍기 한 대가 놓여 있다. 이곳에서는 화재로 집을 잃은 이재민 6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임찬웅 기자
    ▲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내 임시 대피소에 선풍기 한 대가 놓여 있다. 이곳에서는 화재로 집을 잃은 이재민 6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임찬웅 기자
    ◆ 5평 남짓 공간에 6명 … 선풍기 한 대로 버텨

    마을 안쪽에 마련된 또 다른 대피소의 상황은 더욱 열악했다. 모기장을 열고 들어간 5평 남짓한 공간은 마치 찜질방을 연상케 했다. 이곳에서는 6명의 이재민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창문이 작아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는 데다 비닐 등으로 둘러싸인 구조 탓에 내부에 갇힌 열기가 좀처럼 빠져나가지 않았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70대 박모씨는 "선풍기 한 대를 6명이 함께 사용하려니 너무 힘들고 물도 부족하다"며 "얼마 전에는 90대 할머니와 80대 할아버지가 더위를 견디지 못해 병원에 실려 갔다. 옆에 있는 할아버지도 병원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여름이 막 시작됐는데 벌써 이렇게 힘들어 앞으로가 걱정"이라며 "그렇다고 이곳을 떠나자니 갈 곳도 없고 집도 모두 타버렸다. 결국 힘든 사람들끼리 이곳에서 함께 지내는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허망하다"고 덧붙였다.

  • ▲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의 좁은 골목 양옆으로 낡은 판잣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임찬웅 기자
    ▲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의 좁은 골목 양옆으로 낡은 판잣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임찬웅 기자
    ◆ 폭염에 폭우까지 '이중고' … "대피소 천장 붙들며 비바람 견뎌"

    이재민들에게는 폭염뿐 아니라 다시 예고된 폭우도 걱정거리다. 박씨는 "더위도 더위인데 폭우도 걱정된다"며 "당장 이틀 전과 어제만 해도 비가 내리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 대피소 천장이 날아가려는 것을 겨우 지켰다"고 토로했다.

    비닐과 천막을 이어 붙인 대피소는 강한 비바람에 취약해 보였다. 박씨는 "천막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거나 바닥이 젖기도 한다"며 "가뜩이나 전력 공급도 불안정한데 누전이나 화재 사고도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16일 기상청에 따르면 18일 이른 새벽부터 수도권에는 30~80㎜의 비가 내릴 전망이다. 특히 늦은 새벽부터 아침 사이에는 시간당 20~30㎜의 강한 비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많은 비가 내릴 가능성도 있어 저지대 침수와 토사 유출, 축대 붕괴, 침수 지역 감전 사고 등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폭염도 17일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수도권 대부분 지역의 낮 기온은 31도 안팎, 최고체감온도는 33도 안팎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폭염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많은 비가 예고되면서 구룡마을 주민과 이재민들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무더위와 폭우의 이중고를 견뎌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