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범죄 피해자들, 보완수사권 폐지 반대 기자회견"피해자 의견 수렴 없이 권한 폐지만 논의""경찰 부실수사로 사라진 증거, 피해자가 찾아다녀"
  • ▲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피해자 없는 검찰개혁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기자회견에서 범죄 피해자 및 관계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피해자 권리강화를 통한 검찰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피해자 없는 검찰개혁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기자회견에서 범죄 피해자 및 관계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피해자 권리강화를 통한 검찰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강력범죄 피해자들이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 추진에 대해 "피해자 없는 검찰개혁은 개혁이 아니다"라며 피해자 보호 장치 마련을 촉구했다.

    범죄 피해자들과 이들을 대리해 온 오지원 변호사 등은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관에서 '피해자 없는 검찰개혁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전했다.

    이들은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를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 논의가 피해자 의견 수렴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화도 유기치상 사건' 피해자의 딸 한지유씨는 경찰의 초동수사 실패로 피해자가 직접 증거를 찾아다녀야 했다고 호소했다.

    한씨는 "경찰은 현장을 범죄 현장으로 보지 않아 혈흔과 파손된 가구 등을 제대로 촬영하지 않았다"며 "손톱 DNA와 피 묻은 옷, 휴대전화 등도 모두 제가 수차례 요청한 뒤에야 확보됐다"고 말했다.

    이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증거는 사라졌고 결국 가해자는 '증거가 없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게 됐다"며 "검찰 보완수사권까지 사라지면 피해자는 진실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씨도 사건 초기 경찰 대응과 피해자 보호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가해자가 사흘 동안 도주했지만 저는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다"며 "경찰은 제 상처조차 제대로 촬영하지 않아 친언니가 대신 찍어야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현실에서 보완수사권까지 없애면 결국 피해자만 더 오래 기다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경찰이 처음 상해 사건으로 수사했지만, 검찰 보완수사를 통해 성범죄 혐의가 추가로 밝혀졌다. 가해자는 강간살인미수 혐의 등이 인정돼 징역 20년을 확정받았다.

    '세종 집단성폭행 사건' 피해자 정연수씨는 이날 참석하지 못해 사회자가 발언문을 대독했다.

    정씨는 "경찰은 참고인 조사도 하지 않았고, 피해자인 제가 직접 증거를 찾아다녀야 했다"며 "보완수사는 제게 구원과도 같았다"고 밝혔다.

    정씨는 경찰이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사건을 불송치했지만, 검찰 재수사 요구 이후 참고인 조사와 핵심 진술 확보가 이뤄지면서 공소시효 직전 기소돼 유죄 판결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 김윤지씨도 경찰의 불송치 결정 이후 검찰 직접 수사로 기소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김씨는 "경찰은 한 차례 조사만 한 뒤 가해자 주장만 믿고 반박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사건을 불송치했다"며 "불송치로 끝났다면 제가 살아갈 이유가 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의 의견도 듣지 않은 채 보완수사권을 없애는 방향의 개혁은 다시 생각해 달라"고 했다.

    교제폭력 피해자 최윤희씨는 "수사기관의 첫 판단이 잘못되면 피해자가 아무리 호소해도 성범죄는 그대로 묻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씨는 감금·폭행·스토킹 피해와 함께 성범죄 피해를 고소했지만 경찰이 성범죄 관련 질문은 5차례만 한 뒤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수사와 재판 절차에서 피해자가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성폭력 피해자 한우리씨는 "피해자인 제가 기록도 제대로 열람하지 못했고, 공소장 내용에 대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절차에서 계속 배제됐다"고 말했다.

    한씨는 "검찰 보완수사권이 폐지돼 재검토와 보완 통로가 사라지면 피해자를 더 궁지에 모는 것"이라며 "피해자를 절차의 당사자로 세우지 않는 개혁은 피해자를 지우는 개혁"이라고 했다.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으로 숨진 고(故) 김혜빈씨 유족도 "경찰이 확보하지 못한 CCTV를 직접 찾아 제출했고, 수사와 기소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적도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유족은 "피해자와 유족은 형사 절차에서 방청객 정도의 역할만 허용된다"며 "불기소 이유를 설명받을 권리와 수사 진행 상황을 알 권리, 의견을 제출할 기회 등 피해자 참여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한 오지원 변호사는 "검찰 개혁의 출발점은 권한 남용을 막는 것이지만 형사사법 절차를 바꾸려면 피해자 권리도 함께 설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지난 5년간 수사 지연과 부실수사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는데 이를 해결할 장치 없이 보완수사권만 폐지하면 결국 피해 회복과 구제가 더 늦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완수사 요구만 허용하면 사건이 경찰과 검찰 사이를 오가며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며 "복잡한 사건일수록 공소시효가 임박하거나 피해 회복이 늦어질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안지희 변호사는 피해자의 수사 진행 상황 통지 의무, 수사기록 열람·복사권, 부실수사에 대한 이의제기권 등을 형사소송법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변호사는 "피해자는 수사기관이 어떤 증거를 확보했고 어떤 조사를 했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가 수사 과정을 확인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적 권리가 함께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선희 변호사는 "보완수사권 유지 여부는 검찰이나 경찰 어느 한 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수사 과정의 오류를 줄이기 위한 제도 설계의 문제"라며 "국회가 보완수사 범위와 전건송치 등 다양한 대안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