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다르고 같은가한국의 정치적 광기는 5060 주도모두 권력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선동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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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 션판의 『홍위병 : 잘못 태어난 마오쩌둥의 아이들』 ⓒ 황소자리
한국 학계-출판계-언론계 등 지식인 사회는 지나치게 좌파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좌파 지식인들이 담론을 장악, 한국 사회 전반을 좌경화시키고 있다.그런 좌경화에 맞서 싸우는 우파 인터넷신문 뉴데일리는《자유의 파수꾼》임을 자임하고 있다. ① 자유민주주의 ② 자유시장경제 ③ 자유통일 이라는 사시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창간 20주년을 맞은 뉴데일리는《기업이 대한민국이다》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고, 그 슬로건에 걸맞는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책을 보다》연재가 그것. 매주 한 권의 책을 골라 소개-분석-비평하는 기획이다. 단순 서평 차원을 넘어 반(反)대한민국-반자유민주주의 세력과《담론 투쟁 / 이론투쟁》을 벌여나갈 생각이다.스물 세 번째 책으로 션판의『홍위병』이 선정됐다.필자는 도희윤 한국자유회의 사무총장 .한국 천주교 평신도협의회 화해평화위원장 직도 맡고 있다.==================================== -
- ▲ 중공의 어린 홍위병들의 광기를 보라. 60년 후, 우리의 보금자리 대한민국엔 늙은 홍위병들의 광기가 분출하고 있다. ⓒ
■ 국가권력과 선동폭력의 기억1966년 중국의 거리는 붉은 완장을 찬 청소년들로 뒤덮였다.그들은 자신들이 정의를 실현한다고 믿었다.낡은 것을 파괴하고, 반혁명분자를 색출하고, 스승과 부모와 지식인을 끌어내려 모욕하는 것이 혁명이라고 배웠다.그러나 그들이 외친 정의는 곧 폭력 이 되었다.그 폭력은 한 세대의 영혼을 파괴했다.션판의 『홍위병 : 잘못 태어난 마오쩌둥의 아이들』은 바로 그 시대를 내부자의 눈으로 증언한 책이다.저자 션판은 열두 살이던 1966년 홍위병 조직에 참여했던 인물이다.이 책은 문혁을 경험한 홍위병 당사자의 자전적 기록으로 소개되어 있으며, 한국어판은 2004년 황소자리에서 출간되었다.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홍위병의 만행》을 고발하기 때문만이 아니다.더 중요한 것은 저자가 자신도 그 광기의 일부였음을 고백한다는 점이다.션판은 자신이 처음부터 괴물이었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그는,▼ 시대가 요구한 언어를 배웠고▼ 국가가 허락한 분노를 정당하다고 믿었으며▼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고통을 외면했다.그러다 어느 순간,혁명이 인간을 해방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괴물로 만들었다 는 사실을 깨닫는다.이 책은 그래서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참회록에 가깝다.부산일보는 이 책을 “혁명의 광기가 어떻게 개인의 삶을 유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끔찍한 경험담”으로 소개한 바 있다.또 문화일보 역시 이 책이 "단순한 경험담을 넘어 중국 정치상황의 전개까지 배경으로 삼는다"고 평가했다.■ 홍위병은 왜 괴물이 되었는가홍위병의 비극은 그들이 젊었다는 데 있지 않다.젊음은 본래 순수하고, 정의를 갈망하며, 불의에 분노한다.문제는 그 젊음이 국가권력에 의해 이용되었다 는 데 있다.문혁은 자연발생적 폭동이 아니었다.그것은 권력의 위기 속에서 모택동(마오쩌둥) 이 대중을 동원해 체제 내부의 반대자와 지식인, 전통문화, 사회질서를 공격하도록 만든 정치운동이었다.홍위병은 자발적 혁명세력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분노는 권력에 의해 허가되고 조장되었다.여기서 우리가 보아야 할 핵심은 이것이다.홍위병은 어느 날 갑자기 광기에 빠진 것이 아니다.그들은,▼ 국가가 만들어 준 언어 를 사용했고▼ 국가가 지정한 적 을 미워했으며▼ 국가가 허락한 폭력 을 정의라고 믿었다.폭력은 권력의 암묵적 허가를 받는 순간, 양심의 통제를 잃는다.그리고 그 폭력은 가장 먼저 청소년과 청년의 순수성을 삼켜 버린다.션판의 『홍위병』이 오늘 다시 읽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그는 괴물이 된 홍위병을 외부에서 저주하지 않는다.자신이 그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슬프게 바라본다.그 슬픔은 역사적 반성의 출발점이다. -
- ▲ 모택동이 문화대혁명이란 그럴 듯한 이름을 붙인 피바다가 일어난지 60년이다. 그 당시 피빛 광기에 취해 광란극을 벌인 어린 애들도 이제 70대 노인이 됐다. 지금 한국엔 정신의 성숙이 정지된 늙은 홍위병들의 광란극이 한창이다. ⓒ 챗GPT
■ 1966년 중국과 2026년 한국은 무엇이 다른가물론 오늘의 대한민국은 1966년의 중국이 아니다.중국 문화대혁명 과 오늘의 한국을 그대로 동일시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부정확하다.1966년 중국에서 국가권력이 어린 청소년들을 혁명의 전위대로 내세웠다면, 2026년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문제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오늘 한국의 정치적 광기는 청년세대가 아니라, 오히려 청년기의 정치적 열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부 5060 운동권 세대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이들은 생물학적으로는 기성세대가 되었다.하지만, 정치적 상상력은 여전히 1980년대의 거리, 투쟁, 적대, 선동의 언어에 머물러 있다.자신들이 한때 가졌던 민주화의 기억을 도덕적 특권으로 삼고, 다른 의견을 가진 시민을 반민주·반개혁·반역사로 낙인찍는 태도는 문혁기의 홍위병식 사고와 위험하게 닮아 있다.■ 청소년 홍위병과 늙은 홍위병중국의 홍위병은 어렸다.그들은 미성숙했기 때문에 쉽게 선동되었고, 선동되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폭력을 정의라고 믿었다.그러나 오늘 한국사회의 문제는 더 씁쓸하다.지금의《홍위병식 정치문화》를 주도하는 일부 세력은 더 이상 어린 청소년이 아니다.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기성세대다.자녀 세대에게 자유와 품격, 법치와 관용을 가르쳐야 할 부모 세대다.그런데 그들이 오히려 가장 거친 언어로 사회를 갈라놓고 있다.▼ 기업을 적으로 만들고▼ 반대자를 악마화하고▼ 법치를 정치보복의 도구로 여기며▼ 시민사회를 진영의 병영으로 바꾸려 한다.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처벌의 대상으로 보는 순간, 민주주의는 선거제도만 남은 채 속에서부터 무너진다.반면 오늘 대한민국의 2030 세대는 놀라울 만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이들은 집단주의적 구호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진영의 명령보다 상식과 공정을 요구한다.부모 세대가 아직도 과거의 이념전쟁에 사로잡혀 있을 때, 자녀 세대는 세계와 경쟁하고, 기술과 시장을 이해하며, 국가가 아니라 개인의 가능성으로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이 점에서 오늘의 한국은 역설적이다.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은 젊은 세대가 아니라, 젊음을 잃어버리고도 미성숙함만은 버리지 못한 일부 기성세대 일 수 있다.1966년 중국에서는 청소년들이 홍위병이 되었다.2026년 한국에서는 청소년기를 벗어나지 못한 일부 기성세대가 스스로《늙은 홍위병》이 되고 있다.■ 국가권력의 책임그러나 모든 책임을 대중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문혁의 본질은 홍위병 개인의 광기가 아니라, 그 광기를 허가한 국가권력 에 있었다.홍위병을 만든 것은 마오쩌둥 의 권력이었다.권력은,▼ 적을 지정했고▼ 분노를 조직했고▼ 폭력을 묵인 했다.그러고는 필요가 다하면, 그들을 산간벽지로 보내거나 버렸다.오늘의 한국도 이 대목을 무겁게 보아야 한다.시민의 분노는 있을 수 있다.정치적 갈등도 민주주의의 일부다.그러나 국가권력이 해야 할 일은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절제시키는 것이다.권력이 특정 기업, 특정 계층, 특정 지역, 특정 정치세력을 겨냥한 대중적 적대감을 사실상 방조하거나 조장한다면,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선동정치다.▼ 국가가 시민에게 분노의 대상을 제공하고,▼ 지지자들이 그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며▼ 권력이 이를 보며 미소 짓는 구조.이런 구조야말로 가장 위험한 국가폭력의 초기 형태 다.폭력은 반드시 물리적 폭행 으로만 시작되지 않는다.먼저 언어가 폭력화 되고,그다음 여론이 폭력화 되며,마지막에는 제도가 폭력화 된다.문혁 은 바로 그 과정을 보여준 역사적 비극이었다.■ 왜 지금 『홍위병』인가션판의 『홍위병』은 우리에게 묻는다.당신이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과연 홍위병 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국가가 정의라고 말하고,▼ 학교가 혁명이라고 가르치며▼ 친구들이 모두 같은 구호를 외치고▼ 권력이 침묵 속에 폭력을 허락한다면,우리는 과연 끝까지 인간의 양심을 지킬 수 있는가.이 질문은 중국인에게만 던져진 것이 아니다.오늘 한국인에게도 던져진 질문이다.우리는 지금 60년 전 중국을 비웃을 수만은 없다.중국의 문혁과 한국의 오늘은 제도도, 역사도, 폭력의 수준도 다르다.그러나▼ 권력이 선동을 이용 하고▼ 진영이 양심을 압도 하며▼ 집단적 분노가 개인의 존엄을 짓밟는다 는 점에서는섬뜩하게 닮아 있다.『홍위병』은 괴물의 기록이 아니다.괴물이 되어가는 인간의 기록 이다.더 정확히 말하면,국가가 어떻게 평범한 아이를 괴물로 만들고,그 아이가 훗날 자신이 저지른 일 앞에서 어떻게 슬퍼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그래서 이 책은 오늘 한국사회에 경고한다.정치가 시민을 홍위병으로 만들기 시작하면, 그 나라는 이미 자유민주주의의 길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시대정신은 분노가 아니라 성숙2026년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그것은 다시 거리의 광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낡은 혁명 언어를 되살리는 것도 아니다.특정 기업과 개인과 집단을 적으로 몰아세우는 것도 아니다.지금 필요한 시대정신은 성숙이다.① 법치의 성숙② 시민의 성숙③ 국가권력의 성숙, 그리고④ 기성세대의 성숙이다.2030 세대는 이미 새로운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그들은,① 과거의 원한보다 미래의 기회를 원한다.② 진영의 충성보다 공정한 규칙을 원한다.③ 국가가 삶을 대신 결정해 주는 사회보다,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책임지는 사회를 원한다.그런 젊은 세대를 짓누르는 것이 일부 5060 운동권 정치문화라면, 이제는 말해야 한다.① 민주화의 기억이 민주주의의 면허증이 될 수는 없다.② 과거의 공로가 현재의 오만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③ 혁명의 언어를 오래 붙들고 있다고 해서 영원히 정의의 편에 서는 것은 아니다.문혁 60년을 맞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홍위병의 붉은 완장 이 아니다.그 완장을 채워준 권력의 손 이다.그리고 오늘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도 거리의 청소년이 아니라, 국가권력과 결합한 선동의 정치 다.션판의 『홍위병』은 말한다.한때 자신이 정의라고 믿었던 것이 훗날 참회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정치적 광기도 언젠가 누군가의 참회록이 될 것이다.그 참회록을 쓰기 전에 멈춰야 한다.그것이 《문혁 6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역사적 양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