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학당 "金 장군 재평가 필요"김창룡 암살 "근현대사 중대 사건"김구 암살 배후설 비판 본격 제기유족·학계 인사 참석해 열띤 토론
  • ▲ '김창룡 장군 서거 70주년 추모 학술대회'가 27일 열린 가운데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 류석춘 전 연세대학교 교수 등 주요 관계자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김창룡 장군 서거 70주년 추모 학술대회'가 27일 열린 가운데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 류석춘 전 연세대학교 교수 등 주요 관계자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김창룡 장군 서거 70주년을 추모하는 학술대회가 개최됐다. 이번 학술대회는 반공 전선에서 활동한 김 장군의 역사적 업적을 재조명하고 김 장군을 김구 암살 배후로 규정해 온 역사 학계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위해 마련됐다.

    이승만학당(이영훈 교장)은 27일 오후 서울 을지로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김 장군 서거 70주년 추모 학술대회'를 열었다.

    1916년 함경남도 영흥군에서 출생한 김 장군은 1939년 당시 일본 중지나군(中支那軍) 제33사단에서 복무했다. 광복 이후 1946년경 월남한 김 장군은 1947년 육군 전신인 조선경비사관학교에 입교했다. 이후 김 장군은 제1연대 정보과에 배속됐다.

    김 장군은 1948년 10월부터 6·25전쟁 직전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군내 좌익 세력 숙군 작업을 개시했다. 또 1951년 전쟁 당시 특무부대장에 취임해 1951년 8월부터 1954년 10월까지 총 세 차례 숙군을 진행했다.

    김 장군은 1956년 당시 용산구 원효로에 있는 자혜병원 앞 노상에서 괴한의 총격에 숨졌다. 김 장군은 중장으로 추서되고 국군장 대우로 엄수됐다. 현재 김 장군 유해는 대전 현충원에 있다.
  • ▲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이 개회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이 개회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이번 행사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는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과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 류석춘 전 연세대학교 교수 등이 강단에 올랐다.

    이 교장은 개회사에서 "김 장군 암살 사건은 단순 애국자의 순국을 넘어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이 자리를 통해 김 장군의 업적 추모는 물론 김 장군의 역사적 의의를 학술적으로 성취하려 한다"고 말했다.

    허 이사장은 "김 장군 순국 70년이 지난 지금도 고인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며 거짓과 오명이 지속되고 있다"며 "김 장군은 1993년 문민정부에서 정치 보복 성격으로 진행된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의 최대 피해자"라고 지적했다.

    류 전 교수도 "1948년 대한민국 좌익 운동은 건국 이후 제주 4·3 사건과 여순 사건을 거쳐 6·25전쟁에 절정을 이뤘다"라며 "김 장군의 숙군 작업이 없었다면 전쟁 당시 군 내부는 혼란에 빠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유족 측도 연단에 올랐다. 김 장군의 셋째 딸 김미영 여사는 "오늘의 학술대회가 김 장군에 대한 논의를 넘어 대한민국 역사관을 바로잡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2부에서는 김 장군과 관련된 연구 발표가 진행됐다. 정 연구위원은 김 장군 암살 사건 진상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하며 "당시 특무대장이 계획적으로 암살당한 충격적 사건"이라며 "지금까지의 관련 연구를 봤을 때 불완전한 부분이 많다"고 주장했다.

    주 교수는 1949년 김구 암살 사건에 김 장군이 안두희에게 암살을 사주했다는 의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주 교수는 "해당 의혹은 1960년대 시작돼 김 장군 악마화의 마침표가 됐다"며 "통일 국가가 좌절된 상황 등의 이유로 문화적 트라우마로 김 장군이 저격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장군의 업적에 대한 토론도 이어졌다. 토론에는 정주진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교수, 김광동 전 과거사위원장, 유광호 자유민주학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태인 한국정보문화연구원 원장 등 학술대회 관계자 및 방청객 200여 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