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결단의 사상적 근거대한민국의 정신적 토대를 이루는 고전이승만의《문명다움》강조는 박정희의《근대화론》으로이승만의《통상》강조는 박정희의《수출입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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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 『독립정신』. 20대의 청년이 옥중에서 저술한 우리 민족 최고의 명저. 2018, 비봉출판사. ⓒ 비봉출판사
한국 학계-출판계-언론계 등 지식인 사회는 지나치게 좌파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좌파 지식인들이 담론을 장악, 한국 사회 전반을 좌경화시키고 있다.그런 좌경화에 맞서 싸우는 우파 인터넷신문 뉴데일리는《자유의 파숫꾼》임을 자임하고 있다. ① 자유민주주의 ② 자유시장경제 ③ 자유통일 이라는 사시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창간 20주년을 맞은 뉴데일리는《기업이 대한민국이다》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고, 그 슬로건에 걸맞는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책을 보다》연재가 그것. 매주 한 권의 책을 골라 소개-분석-비평하는 기획이다. 단순 서평 차원을 넘어 반(反)대한민국-반자유민주주의 세력과《담론 투쟁 / 이론투쟁》을 벌여나갈 생각이다.열다섯번째 책으로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독립정신』 이 선정됐다.필자는 도희윤 한국자유회의 사무총장 .한국 천주교 평신도협의회 화해평화위원장 직도 맡고 있다.==================================== -
- ▲ 대한민국의 출발점은 청년 이승만이 29살에 옥중에서 쓴『독립정신』이다. 대한민국의 과거, 오늘, 미래 모두가 이 책 한 권에 다들어 있다. 이 책을 읽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을 이해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바이블이자 교과서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 ⓒ 제미나이
《황무지 위에서 자유를 꿈꾼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정신을 되새기며》《한 나라가 사라진 자리에서 무엇을 먼저 세울 것인가.총칼인가, 권력인가, 아니면 사상인가.》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나라가 망국으로 치닫던 청년 시절에 집필한 『독립정신』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나라를 빼앗겨가고 주권을 상실해가고 있던 조선의 현실은 마치 폐허의 황무지로 향하던 것과 다름없었다.국권은 무너졌고, 백성은 무력했으며, 국제 정세는 냉혹했다.하지만 청년 이승만은 그 폐허 속에서 오히려《정신》을 붙들었다.그는 독립을 단지 영토 회복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유의 주체로 서는 일이라고 보았다.독립의 상실은 외세 탓만이 아니다■ 29살 청년이 만든 벼락 같은 축복과 기적『독립정신』은 이승만이 29세인 1904년 저술한 책이다.그는 고종 퇴위 음모 가담 혐의로 1899년 1월 9일부터 한성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었다.그러던 중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독립정신』은 반일독립운동의 격문이 아니다.당시 한반도는 아직 일본 지배하는 아니었다.일본도 야심이 있었지만, 러시아도 조선의 독립을 위협하는 세력이었다.러일전쟁은 그 두 외세가 한반도에 대한 패권을 놓고 벌인 전쟁이었다.하지만 문제는 외세만이 아니었다.이승만은 『독립정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지금 우리나라에 독립이 있다 없다 함은 외국이 침범함을 두려워함도 아니요,정부에서 보호하지 못함을 염려함도 아니요,다만 인민의 마음속에 독립 두 글자가 있지 아니함이 참 걱정이라”《독립》이라는 생각 자체가 제대로 자리 잡고 있지 못한 게 더 근본적인 문제라는 지적이었다.그는 조선이 쇠망한 이유를 외세의 침략만으로 돌리지 않았다.내부의 무지, 파벌, 사대주의, 책임 회피를 준엄하게 질타했다.독립은 외부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세우는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망국의 시대에 쓰인 자유의 선언독립은 무력투쟁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국민이 자유의 가치를 이해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정치 공동체로 거듭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었다.그것은 자유, 법치, 국민 주권, 공화 정치에 대한 치열한 사상적 성찰이다.아직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 그는 이미 민주공화국을 구상하고 있었다.이 대목에서 우리는 건국의 철학을 본다.해방 이후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폐허 위에서 대한민국을 세울 때, 건국대통령 이승만이 굳건히 붙들고 있었던 것은 44년 전 청년 시절 이미 확고히 했던 바로 이 사상이었다.그는 권력의 장식이 아니라 헌법과 제도, 국제 질서 속의 자유민주국가를 선택했다.공산 전체주의의 유혹과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한민국의 방향을《자유민주주의》로 고정시킨 결정은 우연이 아니었다.그것은 이미 『독립정신』에서 다져진 사상의 연장이었다.『독립정신』은 망국의 시대에 쓰였지만, 그 책의 진짜 의미는 해방 이후 그의 통치 시기, 특히 국가 존망의 위기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청년 이승만이 조선의 백성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일깨우려 했던 것은 단지 이상주의적 계몽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그것은 나라의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고, 역사적 결단이었다.■《국민》이 준비되지 않으면,《나라》도 설 수 없다조선 말기 백성은 근대적 의미의《국민》이 아니었다.왕권 아래의 신민(臣民) 이었고,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통치의 대상 이었다.청년 이승만은 이를 정확히 보았다.그는 독립을 선언하기 전에 먼저 국민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이승만은 그 핵심을《자유》라고 말하고 있다.“마땅히《새 교화(敎化)》의《자유(自由)》하는 도(道)로써오랜 악습에 결박당해 있는 민심을 풀어주어야만,비로소 고질의 구습을 깨뜨리고차차 자신의 생각으로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하여 택할 줄 알게 될 것이다.”그가 자유를 강조한 이유는 단순한 개인주의적 가치 전파가 아니었다.자유는 책임을 전제로 한다.민주주의는 참여를 요구한다.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시민이 없으면 공화국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만일 결박당해 있는 그 마음(정신)을 풀지 못하고 자유하지 못하고몸만 자유를 얻으려 한다면이는 결단코 자유로 될 수 없는 일이다.”해방 직후의 한반도는 혼돈 그 자체였다.좌우 대립, 미·소 군정의 긴장, 경제적 파탄, 정치적 미성숙.이러한 상황에서 다수의 대중은 공산주의의 단순하고 강력한 선동에 쉽게 끌릴 수 있었다.평등과 토지 개혁, 급진적 사회 개조의 약속은 즉각적이고 매력적 으로 보였다.청년 이승만이《자유》를 강조한 것은 바로 이 지점 때문이었다.자유민주주의는 느리고 복잡하다.그러나 그만큼 개인의 존엄을 보장한다.그는 조선이 다시 외세나 독재의 도구가 되지 않으려면, 국민 스스로가 자유의 가치를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6·25 전쟁 : 자유의 실존적 시험대1950년 발발한 6·25 전쟁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었다.그것은 체제 전쟁이었다.한반도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존속할 수 있는지, 아니면 공산 전체주의 체제로 흡수될 것인지를 가르는 실존적 시험이었다.서울이 함락되고 정부가 부산으로 피란했을 때, 대한민국은 사실상 붕괴 직전이었다.이 시기 이승만은《끝까지 싸운다》는 메시지를 반복했다.단순한 전쟁 의지의 표명이 아니었다.그는 이 전쟁을 “자유를 지키는 전쟁”으로 규정했다.그가 미국과 국제사회를 설득하며 자유 진영의 일원으로 대한민국을 자리매김하려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대한민국은 지정학적 완충지대가 아니라, 자유세계의《전선》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려 했다.이는 『독립정신』에서 이미 드러난 국제 질서에 대한 통찰의 연장이었다.그는 일찍이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하려면 원칙과 체제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보았다.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헌정 질서를 유지하려 했던 시도 역시 주목할 대목이다.완전하지 않았고 논란도 많았지만, 전시 상황 속에서도 공화국의 틀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 선택은 그의 기본 인식 — “나라는 제도 위에 선다” — 와 맞닿아 있다.아이러니하게도, 1960년 4·19 혁명은 그가 세운 헌정 질서와 시민 의식의 성장 속에서 일어났다.학생과 시민이 거리로 나와 부정 선거를 규탄하고, 헌법적 가치를 요구했다.이는 자유민주주의의 역설적 증거이기도 하다.국민이 더 이상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의 주체로 행동한 순간이었다.■ 자유는 저절로 꽃피지 않는다오늘 우리는 자유를 공기처럼 누린다.표현의 자유, 선거권, 법치의 보호, 국제 사회에서의 국가적 위상.그러나 자유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자유를 경시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고 정신은 사라진다.『독립정신』은 우리에게 묻는다.“당신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청년 이승만이 강조한 것은 국민의 각성이다.무지와 무관심은 독립의 가장 큰 적이다.그는 교육을 통한 계몽, 법치에 대한 존중, 공적 책임의식의 확립을 강조했다.이는 단지 20세기 초 조선 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오늘의 대한민국에도 유효하다.정치적 갈등이 격화되고, 진영 논리가 공동체를 갈라놓는 시대에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① 자유민주주의는 단순히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다.② 다수결이 정의를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③ 법 위에 선 권력은 민주주의가 아니다.④ 자유 없는 평등은 폭정이 될 수 있고, 책임 없는 자유는 방종이 된다.■ 건국을 다시 생각하다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둘러싼 평가는 엇갈린다.역사적 인물에 대한 비판과 성찰은 필요하다.그러나 공과를 따지기 이전에, 그가 남긴 사상의 뿌리를 읽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독립정신』은 특정 정파의 문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신적 토대를 이루는 고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오늘의 선진국 대한민국을 있게 한 경제성장 그저 이루어진 게 아니다.박정희 대통령이 이끈《한강의 기적》이라는 위대한 성취의 시대가 있었다.그런데 그 위대한 성취를 가능하게 한 출발점이 있다.바로 이승만이다.대한민국은 굳건한 사상 위에 세워진 나라다.자유를 이념으로 선택한 결과물이다.그 선택은 자동적이거나 필연적이지 않았다.수많은 갈림길 중 하나였고, 결단의 산물이었다.그 결단의 사상적 근거가 바로 『독립정신』에 있다.『독립정신』은 독립과 자유를 말하면서 그에 입각한 자유로운《통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이승만의《문명다움》에 대한 강조는 박정희의《근대화론》으로 이어지며,《통상》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수출입국》으로 이어진다.『독립정신』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결코 과거 회귀가 아니다.그것은 자유민주주의를 다시 자각하는 일이다.청년 이승만이 꿈꾸었던 나라는 완성된 이상향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켜내야 할 체제였다.자유는 세워진 뒤에도 매일같이 지켜져야 한다.망국의 청년은 감옥에서 글을 쓰며 미래를 설계했다.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시대에 그는 오히려 가장 중요한 것을 준비했다.정신이었다.오늘 스스로에게 묻는다.그 정신은 아직 살아 있는가.『독립정신』을 다시 펼치는 일은 대한민국의 근본을 다시 성찰하는 일이며, 자유민주주의를 다시 꽃피우기 위한 정신적 다짐이다.그리고 대한민국의 위대한 성취가 무너지지 않게 지키기 위한 수호의 결의이다.황무지 위에서 시작된 자유의 씨앗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이제 그 씨앗을 다시 가꾸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
- ▲ 대한민국은 거듭된 결단의 산물이다. 위대한 통찰력에 바탕을 둔 결단이 거둔 결실이다. 그 모든 통찰력이 1904년 감옥에 5년째 같힌 29살 청년의 머리 속에서 탄생했다. 썩어 문드러진 500년 노예국가 조선의 이름 없던 청년으로부터 한국인에게 벼락처럼 내려진 축복이다. 사상적 스승과 계보도 없이 나타났으니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챗GPT는 제미나이에 비해 한글 폰트처리 능력이 떨어진다. ⓒ 챗GP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