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쌀농사 국가 유래 위계구조386세대내 네트워크위계 + 네트워크 = 386카르텔청년세대 숨통 틀어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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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 이철승 著『불평등의 세대 :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 2019 ⓒ 문학과지성사
한국 학계-출판계-언론계 등 지식인 사회는 지나치게 좌파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좌파 지식인들이 담론을 장악, 한국 사회 전반을 좌경화시키고 있다.그런 좌경화에 맞서 싸우는 우파 인터넷신문 뉴데일리는《자유의 파숫꾼》임을 자임하고 있다. ① 자유민주주의 ② 자유시장경제 ③ 자유통일 이라는 사시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창간 20주년을 맞은 뉴데일리는《기업이 대한민국이다》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고, 그 슬로건에 걸맞는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책을 보다》연재가 그것. 매주 한 권의 책을 골라 소개-분석-비평하는 기획이다. 단순 서평 차원을 넘어 반(反)대한민국-반자유민주주의 세력과《담론 투쟁 / 이론투쟁》을 벌여나갈 생각이다.열세번째 책으로 이철승 著『불평등의 세대 :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 2019 가 선정됐다.필자는 유광호 자유민주연구학회 회장.필자는 서울대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사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전 연세대 강사. 전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연구원, 전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초빙연구위원을 지냈다.한국자유회의 운영위원이기도 하다.========================== -
- ▲ 《위계》와《네트워크》가 씨줄날줄로 얽혀 386세대가 한국사회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다. 쌀농사에서 유래한 품앗이와 두레가 그런 그물망의 자양분이다. 카르텔 수준으로 그 얼개가 고착화되어 있다. 미래세대가 끼어들 틈을 모두 막고 있다. ⓒ 챗GPT
■《계급》이 아니라《세대》세상은 불평등하다.이것이 사회학자들의 사업 밑천이다.공기와도 같은 불평등의 양상을 이모저모로 드러내 보이고 분노도 숨기지 않는 것이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이 하는 작업이다.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불평등에 대한 아우성은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더욱 높아지고 있다.이 책『불평등의 세대 :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는 《세대》라는 앵글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이해하려는 작업이다.저자 이철승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계급》의 틀로 불평등 문제를 분석해온 그간의 연구들과 달리, 이를《세대》의 문제로 바꿔놓고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파악한다.예의 계급론자들은《세대》는《계급》의 착시 효과일 뿐이라고 비판할 것이다.그러나《세대》가 사람의 유일한 정체성은 물론 아니지만, 존재 여부가 애매모호한《계급》보다 《세대》범주가 한국 사회 파악에 유용하다는 판단에 동의한다.■ 지금의 불평등은 “386세대의 약속 위반 때문”저자는 “386세대가 권력을 잡고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어쩌면 더욱 심화된《불평등 구조》를 가진 사회가 되었다”고 말한다.민주화와 경제발전이 한국 사회에 더 많은 소통, 더 많은 자유, 더 공정하고 평등한 분배 구조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건만, 왜 우리는 날로 증대되는 불평등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고 보는가?저자의 대답은 “386세대의 약속 위반 때문”이라는 것이다.《386세대》는 주지하듯이 1960년대에 출생하여 1980년대에 대학에 입학했던 세대이다.이 책이 쓰여진 2019년에 나이가 50대였고, 지금은 56세에서 65세에 걸친 세대로 현역 최고참들이다.저자는 20년 동안 미국에서 연구하며 시카고 대학교 종신교수를 지내다가 2017년 고국으로 돌아왔다.『불평등의 세대』는 저자가 내부자와 외부자의 시선을 두루 오가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그는 이 저술의 계기가 청년 실업과 극심한 취업 경쟁으로 인해 불안과 고통 속에서 전전긍긍하는 젊은 세대를 바로 곁에서 지켜보면서 문제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이 책이 보여 주는 데이터는 “우리도 다 겪었으니 인내하라” “세대 갈등은 위험하다” 라는 기성세대의 다독임과 우려 섞인 충고가 상당 부분 거짓임을 폭로한다.“그동안의 세대론은 데이터 없는 아우성이었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의 큰 미덕은 총 54개에 이르는 데이터를 분석하여 독자들에게 그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는 데 있다.■ 386세대가 불평등의 생산자이자 수혜자이 책의 백미는 “좋은 운을 향유했던” 386세대 가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장악하고, 불평등의 치유자가 아닌 불평등의 생산자이자 수혜자로 등극하는 과정을 데이터 분석을 통해 보여주는 충격적인 결과들이다.다른 세대를 압도하는 ※고위직 장악률 ※상층 노동시장 점유율 ※최장의 근속연수 ※최고 수준의 임금과 소득점유율 ※꺾일 줄 모르는 최고의 소득상승률 ※세대 간 최고의 격차.이 모든 것이 어떻게 성장이 둔화되어가는 경제에서 가능했을까?어떻게 파이는 크게 증가하지 않는데, 특정 세대의 몫은 줄지 않는가?그것은 바로 386세대 의 상층 리더들이 다른 세대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더 가져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정치권력 및 기업, 상층 노동시장의 최상층을 차지한 386세대의 자리 독점 은 이제 형평성의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의 비효율을 걱정해야 할 수준에 이르렀다고 저자는 판단한다.따라서 386세대의 자리 독점 은 상승 통로가 막혀버린 다음 세대에게 궁극적 회의를 자아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온갖 폐해를 양산할 것임이 시사되었다. -
- ▲ 이철승 저『쌀 재난 국가 : 한국인은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2021. ⓒ 문학과지성사
■《한국형 위계 구조》와《386세대 네트워크》결합이 책은 궁극적으로《386세대 비판》이 아닌, 세대라는 관점으로 한국의 위계 구조를 비판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저자는 “사회과학자들이 흔히 쓰는《계급론》의 앵글이 한국 사회의 개인과 집단의 행위 및 그 행위의 동기를 분석하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본다.한국 사회 특유의 위계 구조로 인해 계급과 세대가 거의 일치하는 상황이고, 따라서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위계 구조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에는《계급》보다는《세대》라는 앵글이 더 적합하다고 보는 것이다.궁극적으로 "이 책은 세대가 위계 구조로 탈바꿈하는 과정, 구체적으로 세대와 위계가 어떻게 서로를 재생산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말하며, 왜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계급》이 아닌《세대》를 분석 틀로 이용하는지를 밝히고 있다.저자는 산업화 세대가 동아시아 벼농사 체제에서 유래한 한국형 위계 구조를 어떻게 도시의 공장에, 사무실에 이식했는지를 묘사한다.저자는 2021년 출간한 『쌀 재난 국가 : 한국인은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에서 그 위계 구조를 설명한다.산업화 세대는 도시로 이주했으나 농촌에서의 신분제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그대로 지닌 채 상경한 이른바《농민공》들이라는 것이다.386세대 가 이른바《민주화 투쟁》을 통해 산업화세대를 극복하고자 했다.그러나 386세대 의 리더들은 산업화 세대로부터 그러한 위계 구조는 물려받았다.그러면서 한국의 기업들에 있던 기존의 위계 조직을 유연화된 위계 구조로 업그레이드했다.바로 연공에 따른 기존의 위계적 직무 분배 체계에 내부자(정규직)와 외부자(비정규직)를 구별하는 차별적 보상 체계를 결합시킨 것이다.■ 세대교체 룰의 붕괴, 불평등의 심화, 젊은 층의 출산 포기그렇다면 386세대 의 네트워크 가 한국형 위계 구조 와 결합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이 거대한 베이비붐 세대가 위계 구조의 상층을 장기 독점하면서 유교적 연공 법칙인《세대교체》의 룰이 무너지고 있다.또한 세대 네트워크 내부에 속한 상층 리더들과, 거기에 속하지 못한 동 세대 하층 및 다른 세대들 간의 격차가 커지면서 세대 내 그리고 세대 간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마지막으로 최고의 응집성과 연계성을 가진 세대 네트워크가 국가와 경제, 시민사회의 상층권력을 장악 하고, 동시에 그 세대 네트워크가 위계 구조와 결합 하면서 조직 내부 혹은 조직 간의 지대 추구 행위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반면에 불평등은 확대되고 성장률은 낮아지며 상층 노동시장의 소득과 자산은 나날이 늘어가는 한편, 중하층과 젊은이들은 낮은 소득과 실업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출산을 포기 내지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386세대의《네트워크 위계》라는 특권 카르텔이 책이 말하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의 본질은《네트워크 위계》라는 한국형 위계 구조의 등장과 심화이다.여기서《네트워크 위계》는《네트워크》와《위계》가 톱니바퀴처럼 물려 돌아가며 작동하는 시스템이다.《위계》가 연공에 기반하여 조직 구성원의 직무 간 수직적 명령과 복종 및 보상 체계를 규정하는 생산과 수취의 기제라면,《네트워크》는 조직 상층 지도부가 조직의 목표 달성과 자신의 권력 유지 및 재생산을 위해 조직 내부와 외부에 수평적으로 구축한 사회적 연결망이다.보다 구체적으로 세대 네트워크는 기업, 정당, 시민사회 조직들 간에 공식⋅비공식적으로 정보와 자원을 동원하고, 협의와 거래를 성사시키는 세대 기반 인적 교통망이자 연대 체계로 정의된다.세대 네트워크는 위계 구조와 결합함으로써 자원 동원과 교환⋅정보 공유⋅협력⋅수취 체제 구축이라는 한국형 위계 구조를 완성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산업화 세대인 1930년대 출생 세대가 첫 삽을 뜨고, 이른바《민주화 세대》인 386 이라 불리는 1960년대 출생 세대가 완성한 것이 한국형 위계 구조이다.그 희생자는 바로 청년 세대라는 것이다.저자는 시장에서 지위 상승을 위해 분투해온 386세대 는 정치권의 386세대 에 비해 균일한 이념 집단이 아니라고 한다.화이트칼라의 세계에서 경쟁을 통해 기업 조직의 정점에 오른 386세대 와, 블루칼라 생산직의 세계에서 연대를 통해《전투적 조합주의》노조를 건설한 386세대 는《나이만 같을 뿐》이념적으로는 다른, 세대 내의 상호 이질적인 집단들이다.아이러니한 점은, 두 집단 모두《동아시아 위계 구조》를 철저히 이용하여 현재의 권력에 이르렀다는 점이다.두 집단 모두 학맥과 인맥에 기반하여 자원⋅기회⋅정보를 동원했으며, 동아시아 위계 구조를 통해 아랫세대를 조직화했다.이념적으로 전자는《시장자유주의》를, 후자는《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랫세대가 조우한 세계는《헬조선》으로 귀결되는 이유다.한국의《시장》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유주의적 경쟁 시장이 아니라, 위계적으로 분단되고 분절되어 이념⋅가문⋅학벌⋅인맥으로 엮이고 통합된《동아시아 위계 조직》들 간의 카르텔에 가깝다는 것이다.《정치》도 똑같은 방식이라고 한다.■ 젊은 세대는《공정한 게임》을 희구한다오늘날 젊은 세대는《금수저》대《흙수저》논란이 있다.저자는 그 근원은 1930년대 혹은 그 전후 출생인 그들의 조부 세대에 시작된 70~80년대 자산의 최초 축적과 그 이후 이 세대의 불균등한 자산 이전 및 자산 소비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한국형 위계 구조는 가구 세대 간 부의 이전으로 마무리되면서,《역사적 세대》의 프로젝트가《가문 세대》의 프로젝트로 탈바꿈됐다는 것이다.이 조부 세대에선 소득, 자산, 성별, 세대 간, 세대 내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불평등이 커졌다.386세대 는 그 불평등을 상속한 또 다른 불평등의 세대라는 것이다.젊은 세대는 공정성에 훨씬 민감하다.네트워크 위계 를 통해 상층 노동시장에 자리 잡고 있는 기득권층이 품앗이 네트워크 를 통해 자신들의 자식들에게 특혜를 주어 취직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자, 이 세대는 취업문이 실제 수치보다 더《좁아졌다》라고 느낀다.젊은 세대는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경쟁의 실상에 대해 이전 세대들보다 더 심각하게 반응한다.더욱이 현 청년 세대는 금수저와 흙수저의 대비를 일찍부터《내면화》하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그런데 상층에 진입할 수 있는 문은 좁아지고 진입하고자 하는 경쟁자들은 많아졌는데, 불공정한 게임의 수혜자들은 점점 더 많이 눈에 띄는 형국이다.게다가 상층 노동시장에 진입하더라도 월급쟁이 수입으로는 서울에서 집 한 채 장만하기가 요원해지면서, 집단적으로 흙수저 신세를 한탄하는 세대이기도 하다.이 때문에 이들은 불공정한 게임의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어쩌면 영원히《공정한 게임》을 희구하는 세대라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제도 개혁이렇게 분석한 후, 저자는 다음과 같은 제도 개혁의 모습을 제시한다.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이 전 국민을 보다 값싸고 안정적인 의료 및 노후 보장 시스템으로 통합시켰듯이, 국가가 한국형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모든 노동자를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직업 알선 및 교육 시스템으로 통합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비정규직 위주 유연화를 지양하고,《사회안정망》을 덧붙여 세대 간 형평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더 나아가 국가가 개인의 실업과 취업 과정에서의 리스크를 관리하고 책임져줄 때, 청년들은 보다 자유롭게 창업과 취업을 오가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새로운 고용 창출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1,000명의 청년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며 그중 살아남은 몇 개의 아이디어가 2,000명 아니 3,000명의 청년을 새로이 고용하는 사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파산과 실업의 위험을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 파산과 실업이 낙인이 되지 않고 경험과 경력이 되어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는 사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어린 나이에 높은 시험 점수를 받아 네트워크 위계 구조의 상층으로 진입하고 눈치를 잘 보는 자가 승리하는 사회가 아니라, 도발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담대한 젊은이가 성장할 수 있는 사회, 바로 이것이 한국형 사회적 자유주의가 꿈꾸는 사회일 것이다.이러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해고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취업에 목맬 필요도 없을 것이다.아마도, 이러한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경험과 아이디어가 쌓이면 누구나 창업을 꿈꾸기 때문이다.저자는 이러한 사회에서는 더 이상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신분화와 차별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전망한다.■ 저자의 인식의 한계는 있지만…저자가 평가하고 바라는《한국적》건강보험, 국민연금과 비정규직 지양 같은 정책들은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이 정초한 것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 정부들을 “폭압적 파시즘 체제” 로 규정한다.그리고 “대만과 달리, 한국은 몇몇 재벌과 대기업 위주의 공업화를 통해 불평등을《조장하는》산업화의 길을 걸었고, 그 여파로 70년대에 불평등은 수직에 가깝게 치솟는다” 는 등 분열된 인식을 노정하고 있다.하지만 대만은 한국의 강대국형 산업구조와 대기업들을 몹시 부러워한다.데이터 분석의 우수성과 역사의식 사이에 큰 불균형을 보이는 것이다.《한국형 사회적 자유주의》를 희망하고 있는 좌파 리버럴이라면 후후발국 한국 산업혁명기의 박정희가 미국으로 치면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한국의 이른바《민주화》는 이른바《민주화세력》의 도적정치(kleptocracy) 로 귀결되었다.이 실상을 밝히는 한국의 정치학이 없고, 역사학은《민족해방파》의 친북⋅종북 민중민족주의 가 지배하고 있다.이 같은 현 상태가 극복되지 않고서는 현안들이 공정하고 생산적으로 논의될 수가 없다.이런 약간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철승 교수의 『불평등의 세대』는 가장 주목되는 사회학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