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한 달 만에 395건 쏟아졌지만 본안 회부 '0건'법관 대표들 "하급심 약화 및 재판 지연" 우려학계 "재판소원, 실무적으로 유명무실한 제도"
  • 재판소원 제도가 시행 한 달 만에 헌법재판소 사건 구조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지난달 12일부터 이달 11일까지 접수된 재판소원 본안 사건은 395건이다. 같은 기간 전체 본안 접수 사건(657건)의 60.12%를 차지한다.

    지정재판부가 심사한 194건은 모두 각하됐다. 전원재판부에 회부된 사건은 아직 한 건도 없다. 제도 도입 한 달간 사건은 폭증했지만 정작 본안 심리로 넘어간 사례는 전무한 셈이다.

    법조계는 이 같은 흐름이 재판소원의 실효성 논란을 키운다고 본다. 기본권 구제를 위해 도입된 제도라면 본안 심리 문턱을 넘는 사건이 나와야 한다. 다만 지금까지는 사전심사 단계에서 각하 처리만 반복되고 있다.

    '어떤 사건이 1호 사건이 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지만 현실은 1호 본안 사건조차 나오지 못한 채 헌재가 접수·선별 기능에만 매달리는 모습이 더 두드러진다는 지적이다.
  • ◆ 사전심사에 묶인 법관들 … 사법부 내 인력 불균형 현실화되나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재판소원 사건 전담 심사부를 꾸렸다. 법조 경력 15년 이상의 연구관 8명을 배치했다. 사무처 차원의 행정준비단도 가동 중이다. 향후 재판소원 접수가 연간 1만5000건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으며 헌법연구관 20명과 사무처 직원 18명 충원도 추진 중이다. 

    정작 재판이 취소된 뒤 어느 심급에서 다시 심리할지, 기록 송부를 어떤 방식으로 할지 같은 핵심 운용 기준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반면 헌재는 인력 확충과 예산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전날 "재판소원으로 인한 분쟁의 종국적 해결 지연"을 우려하며 재판소원 시행 이후 일선 법관을 종전처럼 헌재에 파견할 것인지 법원행정처에 설명을 요구했다. 

    법관 대표들은 사법부 인력 부족 문제를 짚었다. "헌재에서 파견 판사를 늘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지", "파견된 판사들이 원치 않는 재판소원 업무를 맡을 경우 거부할 방법이 있는지" 질의했다.

    법원행정처의 답변은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 법원행정처는 향후 "법관의 양심에 반하는 업무지시"가 있을 경우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관련 법에 따라 헌재에 법관을 파견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최근 검찰이 특검에 수사 인력을 대거 파견하면서 일선 청의 미제 사건과 사건 적체 우려가 커진 상황을 떠올리는 시각도 있다. 숙련 인력을 본래 업무 현장에서 빼내 별도 대응 체계에 투입할 때 본업 사건 처리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는 구조가 닮았다는 것이다. 

    재판소원 역시 기본권 구제라는 명분 아래 숙련 법조 인력을 대거 사전심사와 행정 대응에 묶어둘 경우,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곳은 결국 이미 인력난이 심한 하급심 법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
  • ◆ "본안 심리 전무한 재판소원, '기본권 구제' 도입 취지 무색해져"

    결국 지금 드러난 재판소원의 첫 성적표는 '기본권 구제 확대'보다 '사전심사 확대'에 가깝다. 사건은 한 달 만에 수백 건씩 몰렸고 헌재는 인력과 예산 보강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실효성은 입증되지 않았는데 조직만 커지는 추세다. 

    그 부담이 일선 재판부로 전가된다면 재판소원은 사법 구제 장치가 아니라 또 하나의 고비용 저효율 제도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학계에서도 재판소원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론이 나온다.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우리나라 헌법상 사법부 최고기관은 대법원이고 헌재는 별도로 헌법재판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이라며 "독일식 재판소원 제도를 우리 사법 체계에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독일은 연방헌법재판소가 사법부의 최고재판소 역할을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법원과 헌재의 관할과 지위가 달라 권력분립 원칙상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생길 수 있다"고 부연했다.

    재판소원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우리나라는 재심 제도가 이미 마련돼 있고 재심 사유와 재판소원 청구 사유가 겹치는 부분도 적지 않다"며 "실무적으로는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어 "법원이 헌법이나 적법절차를 명백히 위반하는 경우를 전제로 한다지만 그런 사건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결국 대부분은 요건을 갖추지 못해 각하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김 교수는 "도입 한 달 만에 수백 건이 접수됐지만 상당수가 각하되고 있는 상황은 재판소원이 본래 취지대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국민 입장에서는 일단 청구해보자는 흐름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는 헌재의 업무 부담만 크게 늘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헌재의 인력 확충 움직임에 대해서도 "재판소원 제도를 도입한 이상 헌재가 사전심사 등 준비를 해야 하니 연구관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도 "실효성이 불분명한 제도에 고급 법조 인력과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비판적 평가를 내놨다.

    그러면서 "하급심 재판 지연과 법관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재판소원 대응을 이유로 헌재 인력을 늘리는 것이 사법부 전체에 어떤 부담을 주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제도 취지보다 운영 부담과 예산 낭비 우려가 더 커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