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날거짓의 성벽은 무너진다 "진실의 분노가 해일 되어 덮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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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3일은 심판의 날.《하나마나》선거의 판세가 뒤집히고 있다. ⓒ 챗GPT
■ 교만한 이재명 정권옛이야기가 있다.성전에서 탈취해온 신성한 그릇에 술을 따라 마시며 술잔치를 벌인 왕이 있었다.술잔치 와중에 벽에 알지 못하는 글이 뜬다.해석인즉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다니엘서 5장 27절) 함이었다.그날 밤 그 왕은 최후를 맞는다.바빌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 이야기다.역사를 관통해온 오랜 옛이야기들은 세상의 이치에는 섭리가 있음은 말해준다.교만에 빠진 권력은 자신이 절대적인 듯 여기고 오늘의 힘이 영원히 이어질 듯이 행세를 한다.그러나 지상의 권력은 절대적이지도 영원하지도 않다.현실의 법정은 잠시 피할 수 있어도, 섭리의 심판대는 피하지 못한다.언제 어떤 식일지는 모른다.하지만《심판의 날》은 결국 온다.■ 권력의 자격을 재는 심판의 저울권력(權力)은 그냥 힘(power)이 아니다.권(權)은 저울추다.즉 권력은《저울추의 힘》이다.국가를 다스리는 힘은 그냥 무력(武力)이나 폭력이 아니다.사회적 질서와 그 기준을 가늠하는《저울추와 같은 역할》에서 나온다.권력은 단순히 누르는 힘이 아니다.공정한 판단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능력이다.권력(權力)의 그 같은 역할은 먼저 그 권(權) 자체의 무게 가늠에서부터 시작한다.그 권력의 저울추 자체가 그에 합당한 무게를 갖고 있어야 한다.그렇지 못하면 자격상실이다.“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면, 그 권(權)은 력(力)을 갖지 못한다.지금 한국은 그 무게를 재는 날을 앞두고 있다.6.3선거다.■ 이재명의 폭주2~3달 전 6.3선거 전망은《하나마나》였다.이재명 정권은 집권 초기라는 정치적 프리미엄이 있었다.반면 국힘당은 계엄-탄핵의 여파에 여전히 허덕이고 있었다.거기에 공천파동의 후유증도 겹쳤다.여당의 압승이 점쳐졌다.그러나 지금은 아니다.여야 격차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판세가 뒤집히고 있다고까지 한다.어떻게 된 것인가?이재명 자신에 의해서다.① 이재명 정권이 집권 이후 내내 몰두해온 것은《사적 방탄의 성벽》쌓기였다.이재명 자신의 안위를 위해 법치주의를 무너뜨렸다.헌정 유린 이다.② 부동산가를 잡는다더니, 전월세의 씨가 마르게 하고 다시 폭등세로 들어서게 만들고 있다.③ 자신들은 일말의 공로도 없는 반도체 산업의 호황을 자기들의 성과인양 행세를 하더니, 그것을 뜯어먹자고 선동 했다.④ 또 돈을 뿌린다.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있다.⑤ 회의에서 SNS에서, 연일 쏟아내는 거친 언사 가 뉴스를 장식한다.외교적 폭언도 마구잡이다.모든 지점에서 폭주하고 있다.평범한 사람들조차 진저리를 치게 하고 있다.■ 위선자들의 스타벅스 공격그러더니 그 폭주가 이제는 스타벅스에 대한 공격 선동으로 이어지고 있다.“5.18을 모독” 했다는 것이다.가관이다.소위 그《신성한 5.18》에 대한 모독을 들자면, 20여년 전《새천년 NHK 룸살롱 사건》만한 게 없을 것이다.5.18을 기념하는 전야제를 한다면서 룸살롱에서 유흥의 파티를 한 자들 이 있었다.그들이 누구인가?이 정권의 현재의 핵심 실세들 이다.예전에 유흥주점에서 자행한 만취 폭행으로 처벌받은 것을 5.18에 대한 언쟁 때문이었다고 구차한 변명을 하는 자 도 있다.사실이든 아니든, 5.18을 술 시비 거리가 되게 하는 게 신성함에 대한 예의이기는 한가?성전에서 탈취한 신성한 그릇에 술을 따라 마시며 술잔치를 벌인 자를 능가한다.그런《5.18 술잔치》등의 장본인들이 커피-스타벅스를 공격하고 있다.위선자들 이다.갖은 범죄혐의로 얼룩진 자들도 때 만난 듯 나서《5.18모독》시비에 말을 보탠다.■ 군림과 지배를 노린다그 무리들이 온갖 억지 논리로 스타벅스를 공격하고 있다.진영적 선동을 겨냥한 것이다.5.18을 앞세워 자신들의 사특함은 가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진영을 부추기려는 것이다.나아가 권력을 더욱 강화하려는 수작이기도 하다.《5.18의 신성불가침》을 절대화하여 사회를 검열하고 통제하려 한다.개헌에 5.18정신을 넣으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우상 숭배의 강요 다.군림하고 지배하려 한다.현대 민주정치의 지도력의 이상적 지향은 군림이 아니라 섬김이다."먼저 섬기는 자가 되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비록 그처럼 온전히 구현되지 못한다 해도 그 지향은 교만과 일탈을 경계하게 하는 지침이 된다.권력은 늘 교만의 유혹 앞에 있다.현대의 민주정치는 견제와 균형으로 권력이 긴장하게 함으로서 그 유혹에 맞선다.그러나 이재명 정권은 주권자인 국민을 섬기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이념과 권력에 맹종하도록 가르치려 들고 통제하려 한다.자신들을 역사의 절대 주권자로 여기는 독선으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파괴한다.그리고 국민 위에 오만하게 군림하며 권력을 휘두르려 한다.■ 섭리, 멸망할 권력이 날뛴다“하나님은 멸망시킬 자에게 권력을 줘 날뛰게 한다.”미국의 역사학자 찰스 비어드(Charles A. Beard, 1874~1948)의 말이다.종교적 표현이지만, 역사의 섭리를 말함이다.물론 비어드는 기독교인이기도 했다.그런데 그는 좌파였다.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지만, 늘《자산가와 기득권층》을 비판했다.미국의 제2차 대전 참전을 제국주의라고 비난하기도 했다.그래서 그의 말과 글은 좌파논객들 인용의 단골이다.그러나 인용한 그의 언명은 아이러니하게도 좌익세력의 행태에 딱 들어맞는다.지금 한국의 이재명 정권이야말로 더욱이 그렇다.비어드는 덧붙여 섭리적 심판의 작동을 말한다.“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돌아가지만 갈지 않는 것이 없다.”권력을 쥐고 날뛰는 자는 결코 자신의 시간이 짧을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하지만 언제인지 알 수 없어도 심판대는 예정이다.심판의 맷돌은 더디게 돌아도 확실히 죄를 갈아낸다.잠시 사법의 저울은 피할 수 있어도 국민적 공의의 심판은 느려도 계속 다가온다.처음에는 작아도 계속 커진다.이재명 정권의 거짓과 난행의 폭주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점점 커지고 있다.진실의 분노다.그럼에도 이재명 정권은《이념적 독선의 탑》과 함께《방탄의 성벽》을 계속 쌓고 있다.하지만 결국《거짓의 성채》일 뿐이다.거짓의 성채는 진실의 분노 앞에는 모래성이다.진실의 분노가 파도가 되고 해일이 되어 몰아치면, 그 모든 거짓은 무너지고 쓸려나간다.■ 심판, 그리고 회복6월 3일, 선거의 결과는 그날의 것이다.예견은 못한다.그러나 어떻든 2~3달 전의 《하나마나》는 이미 이겨냈다.남은 삼사일, 저들에게 더 큰 매서운 심판을 안길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그들에 대한 심판과 대한민국의 회복은 함께 간다.심판의 정도만큼이 회복의 힘을 가늠한다.관건은 결집이다.지방선거는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낮다.잠재적 지지층의 투표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승부처다.어설프게는 안 된다.선명하고 강렬해야 한다.《심판의 결의》에는 중간이 없다.분노의 해일을 일으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