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 폭풍 몰아친다정치권력이 불에 기름 붓고 부채질소비자 심판 문제를 정치문제로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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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녀사냥인가. 정치권력과 정부가 주도하고 부추기는 관제 멍석말이 광풍이 일고 있다. ⓒ 챗GPT
■ 미국 기업 쿠팡과 스타벅스 때리기이게 우연일까?쿠팡과 스타벅스.이 둘은 공통점이 있다.미국 기업이다.수요가 많다.한국인들의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있다.쿠팡에 이어 스타벅스에《증오》가 쏟아지는 중 이다.하나 짚자.솔직히《탱크 데이》이벤트는 경솔했다.전후 맥락을 떠나, 5·18 즈음에《탱크》라는 말 자체가 《오버》다.역사 감수성 부족이라는 비판도 가능하다.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기업도 마찬가지다.실제로 해당 이벤트를 기획한 책임자는 이미 경질됐고, 정용진 회장도 공개 사과했다.여기가 논란의 끝이어야 한다. -
- ▲ 5월21일 광주 서구 광천동 이마트 광주점 앞에서 열린 광주·전남 시민단체의 스타벅스 코리아 규탄 기자회견에서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스타벅스 컵과 텀블러를 망치로 내려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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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21일 광주 서구 광천동 이마트 광주점 앞에서 열린 스타벅스 코리아 규탄 기자회견에서 스타벅스 텀블러와 컵 등이 깨지고 찌그러진 채로 놓여있다. ⓒ 연합뉴스
■ 감정의 정치화, 집단주의 광풍문제는《관제 멍석말이》다.이는 한국에만 있는 것으로,《감정의 정치화》라고 보면 쉬울 듯 하다.일단 누군가를 멍석으로 말고 대중의 증오 감정에 불을 붙이면, 사람들은 일단 그 멍석을 향해 발길질을 하고 본다.그걸 정의라고 착각 하는 사람들이 많다.최근 스타벅스를 둘러싼 논란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쉽게 집단주의에 휩쓸릴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스타벅스 제품을 광장에 쌓아놓고 망치로 내려치고, 일부 매장 직원들에게 폭언과 위협을 가한다.이를 말려야 할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는 오히려 그 분위기를 주도하는 듯하다.기업이 실수를 하면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심판하는 게 맞다.그 브랜드가 그토록 싫다면 안 사면 그만인 것이다.다른 이들에게 사라 말라 강요할 이유도 없다.정치인들은 그러한 대중을 향해 냉정과 자제를 주문해야 할 것이다.《불매》와《증오》를 권장해선 안 된다. -
- ▲ 광기로 얼룩진 중국의 문화대혁명. 문화대혁명이라고 불러선 안된다. 피바다 광란참극이라고 해야 옳다. ⓒ
■ 정의감이 광기로 변하면?무엇보다 섬뜩한 건, 그러한 광경이 역사 속 어느 장면과 너무 닮아 있다는 점이다.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 시절, 홍위병들이 “혁명의 적” 이란 이름 아래 사람들을 광장으로 끌어내렸다.모자를 씌우고, 목에 팻말을 걸고, 군중 앞에서 조롱하고 모욕했다.대중의《정의감》을 내세웠다.정의감이 광기로 변한다면, 그건 정의감이 아니다.과거 중국의 사드 보복을 기억해보라.당시 국민은 한국 기업이 사실상 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모습을 보고 분노했다.H&M과 Nike도 한 때 중국에서 조직적 불매운동에 시달렸었다.많은 한국인들이 그걸 권위주의적《경제보복》이라고 비판했었다.이젠 한국이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경제가 정치에 종속되는 경로 를 걷는 것이다.극단적 팬덤 문화의 이면일 수도 있다.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모든 판단 기준이 되고, 그 외 다른 목소리는《적》으로 낙인찍히는 분위기다.사실관계보다 분노가 우선하고, 법보다 감정이 우선한다.그 분노는 항상 가장 만만한 대상을 찾아간다.스타벅스가 한 예이다.커피가 무슨 죄일까?공부하는 청년의 밤을 버티게 하고, 직장인의 집중도를 높여주며, 사람 간의 대화를 만들어준다.정치 과잉의 나라 한국은 지금 커피를 향해서도 정치적 입장을 묻는 격이다.오버다.《선택적 분노》와《관제 멍석말이》를 통해 정작 피해를 입는 건 자본가가 아니라 주로 매장 직원, 가맹점주, 협력업체 노동자들 같은 평범한 시민들일 뿐이다.■《권위주의》와《팬덤정치》가 결합하면?문제는 커피 브랜드 하나가 아니다.더 본질적인 건 권위주의와 팬덤 정치가 결합할 때 나타나는 위험성 이다.일부 정치인들은 대중 분노를 제어하기보다 오히려 이용하려 한다.팬덤의 화력을 등에 업고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할 유인이 존재하는 것이다.물론 얕은 꾀에 불과하다.권력을 비판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권력을 지향하며 대중의 분노를 증폭시키는 행태.그건《열린 사회》가 아니라《닫힌 사회》다.《닫힌 사회》에서 기업은 권력의 눈치를 보게 된다.시민들은 소비자로서 대접받지 못한다.기업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걸 생산하지 않고, 권력이 원하는 걸 생산한다.그걸《계획경제》라고 포장한다.사실 권력이 원하는 건《생산》이 아니라《아부와 뇌물》이다.경제원론을 듣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안다.그렇게 해선 경제가 돌아갈 수 없다.그게 바로《위선의 극장판 계획경제》의 요체다. -
- ▲ 칼 포퍼의 명저《열린 사회와 그 적들》. 전체주의를 통렬히 직격했다. ⓒ 민음사
■《열린 사회》아니라《닫힌 사회》로 가는 중문화 수준도 저급해질 수밖에 없다.튀면 돌을 맞기 때문이다.돌이 누군가의 뒤통수를 갈기는 걸 보고도 모두가 침묵한다.자신의 뒤통수 걱정이 먼저이기 때문이다.열린 사회 는 다양한 생각이 교차하는 공간이다.닫힌 사회 는 검열과 감시가 교차 한다.같은 생각만 강요 된다.따라서 창의성이 있을 수 없다.당연히 발전도 없다.발전이 지체될 때, 대중은 자극을 원한다.때맞춰《관제 멍석말이》가 등장한다.대중의 감정풀이를 위해서다.닫힌 사회는《경제 후진국 / 문화 후진국》으로 수렴한다.덧붙이자면, 원래 민주주의는 감정적으로 후련한 상태가 될 수 없다.민주주의는 차선에 불과하고, 다수가 그 차선에 동의했기 때문이다.즉, 조금씩 불편을 감수하는 상태다.큰 불편을 피하기 위한 인류의 지혜이기도 한 것이다.《관제 멍석말이》는 한국 판 마녀사냥 이다.이게 반복되면, 한국은 닫힌 사회라는 뜻이다.칼 포퍼의《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읽어보라.《닫힌 사회》가 지목한《그 적들》은《열린 사회》의《친구들》이다.역설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