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내식당' 된 7000원 뷔페…가성비에 인산인해"월급 빼고 다 올라"…컵밥·구내식당 몰리는 '생존형' 한 끼"커피 한 잔도 망설여져"…외식 물가 5년 새 30% 폭등"저렴한 게 1순위"…유행 넘어 '구조적 변화'
  • ▲ 14일 오전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 중소기업 건물 지하 한식 뷔페 입구에서 직장인들이 키오스크를 통해 식권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임찬웅 기자
    ▲ 14일 오전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 중소기업 건물 지하 한식 뷔페 입구에서 직장인들이 키오스크를 통해 식권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임찬웅 기자
    14일 오전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중소기업들이 밀집한 건물 지하. 점심시간이 시작되자 복도는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찼다. 이들의 발길이 멈춘 곳은 '한식 뷔페'라는 글씨가 적힌 간판 앞이다. 뷔페 매장 입구와 달리 주변 식당가는 한산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근 국숫집이나 국밥집, 마라탕 매장 등은 빈 테이블이 곳곳에 보였지만 한 끼를 7000원에 해결할 수 있는 한식 뷔페 매장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해당 건물 입주 기업에서 근무하는 40대 남성 정모씨는 "외근이 없으면 거의 매일 이곳에서 식사한다"며 "이 빌딩뿐만 아니라 인근 중소기업 직원들이 다 몰려오다 보니 사실상 동네 전체의 구내식당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씨는 한식 뷔페를 찾는 이유로 "가격이 7000원인데 음식 퀄리티도 괜찮고 다양하게 먹을 수 있어 찾는다"고 밝혔다.

    인근에서 근무하는 20대 남성 장모씨도 "주변에 식당이야 많지만 아무래도 물가가 오르다 보니 식비 부담이 된다"며 "7000원에 해결할 수 있는 한식 뷔페를 거의 매번 온다"고 말했다.
  • ▲ 14일 오전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위치한 한식 뷔페 전경. ⓒ임찬웅 기자
    ▲ 14일 오전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위치한 한식 뷔페 전경. ⓒ임찬웅 기자
    ◆마지노선 무너진 '1만 원 시대' … "'가성비'가 1순위"

    가산동과 영등포 일대 직장가에서 '1만 원의 벽'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직장인들은 이제 맛이나 분위기보다는 '가성비'를 선택의 최우선 순위로 둔다.

    가산동에서 근무하는 20대 여성 이모씨는 "회사에서 별도로 식대 지원이 없어 도시락을 싸 오곤 한다"며 "도시락을 싸 오지 않는 날엔 무조건 한식 뷔페로 온다"고 말했다. 이씨는 "학교 급식 정도의 퀄리티만 보장된다면 가격이 저렴한 게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영등포에서 상담 업무를 하는 20대 남성 이모씨는 "혼자 먹을 때는 고민 없이 한식 뷔페를 찾는다"며 "주변 식당은 메뉴 하나에 기본 1만 원이 넘는데, 여기에서는 8000원에 매일 다른 메뉴를 무제한으로 먹고 라면까지 직접 끓여 먹을 수 있어 가성비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30대 남성 박모씨도 "특별한 일 없으면 항상 점심은 여기서 먹는다"며 "주변에 중국집이나 국밥집도 있긴 한데, 여기가 더 싸고 양도 훨씬 많이 먹을 수 있어 자주 찾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직장인들의 지갑을 지켜주는 한식 뷔페 역시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다. 가산동에서 한식 뷔페를 운영하는 50대 여성 최모씨는 "채소, 고기, 양념까지 안 오른 게 없다"며 "특히 닭이나 제육 등 육류는 이전 가격보다 1000원에서 1200원 정도 원가가 더 들어 부담이 상당하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지금은 7000원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식재료비가 계속 뛰고 있어 조만간 가격 인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14일 오전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위치한 또 다른 한식 뷔페 전경. ⓒ임찬웅 기자
    ▲ 14일 오전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위치한 또 다른 한식 뷔페 전경. ⓒ임찬웅 기자
    ◆컵밥·구내식당 … 고물가 시대 '생존형' 한 끼

    고물가 시대에 직장인들이 선택하는 저렴한 한 끼의 형태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한식 뷔페와 더불어 노량진 컵밥거리와 기업 내 구내식당은 1만 원 미만으로 식사할 수 있는 '가성비 성지'로 꼽힌다.

    수험생을 상징하던 노량진 컵밥거리에서는 이제 점심을 해결하는 직장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컵밥집을 자주 찾는다는 30대 남성 백모씨는 "7000~8000원 하던 국밥이 이제 1만 원이 넘어가니 심리적 거부감이 크다"며 "월급은 제자리인데 밥값만 오르니 점심시간마다 짜증이 난다"고 말했다.

    노량진에서 컵밥집을 운영하는 하모씨는 "최근 시청 근처 국밥값이 1만5000원까지 올랐다는 소문이 돌면서 멀리서 오는 직장인들이 부쩍 늘었다"며 "물가 상승 탓에 전 메뉴 가격을 500원씩 올릴 수밖에 없었지만, 여전히 4500원 선을 유지하려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시청 인근에서 근무하는 40대 남성 김모씨는 오늘도 5000원짜리 구내식당 식권을 손에 쥐었다. 김씨는 "요즘 밖에서 국밥 하나 먹으려면 1만2000원이나 한다"며 "일정이 따로 없는 날엔 무조건 구내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다"고 말했다. 그는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상황에서 5000원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혜택"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한식 뷔페, 컵밥, 구내식당은 고물가의 파도를 넘기 위한 직장인들의 필수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 ▲ 거지맵 내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역 주변 가성비 식당 정보가 표시되어 있다. ⓒ거지맵 애플리케이션 캡쳐
    ▲ 거지맵 내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역 주변 가성비 식당 정보가 표시되어 있다. ⓒ거지맵 애플리케이션 캡쳐
    ◆"가성비 소비는 자연스러운 현상 … 자영업자도 전략적 영업 필요"

    점심값 부담은 단순히 식사 메뉴에만 그치지 않고 식후 소비 패턴까지 완전히 바꿔놓았다. 가산동에서 근무하는 한 직장인은 "식비가 오르니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망설여진다"며 "프랜차이즈 커피값은 기본 4500원 이상이라 점심값의 절반을 차지하니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변의 2000원대 저가 커피를 찾거나 아예 아침에 집에서 텀블러에 커피를 챙겨오곤 한다"고 덧붙였다.

    고물가 기조는 지표상으로도 뚜렷히 확인된다.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외식 물가 지수는 127.28을 기록했다. 기준연도인 2020년 외식 물가를 100으로 설정한 점을 고려하면 5년여 만에 점심값을 포함한 외식 물가가 30% 가까이 치솟은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거지맵(저렴한 식당 공유 지도)'이나 '무지출 챌린지' 열풍으로 번지고 있다. 정보를 공유하며 조금이라도 지출을 줄이려는 직장인들의 '짠테크'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전문가는 직장인들의 '생존형 소비'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선 구조적인 변화라고 분석했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물가 기조 속에서 가성비와 효율 중심의 소비로 향하는 흐름은 이제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이 됐다"며 "소비 양극화가 심화함에 따라 외식 대신 내식을 택하거나 편의점 도시락 등 저가형 대체재를 찾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영업자들 역시 업종이나 가격대에 따라 갈리겠지만 결과적으로 박리다매 형태의 전략적 영업 방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