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이여, 저항이여, 처절함이여!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푸틴과 젤렌스키의 중간쯤에 서려는 '비겁함' 벗어던져야
  • ▲ 지난 3일 서울팝스오케스트라가
    ▲ 지난 3일 서울팝스오케스트라가 "우크라이나 출신 단원 3명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떠났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우즈킨 드미트로 씨의 연주 모습(왼쪽)과 우크라이나에서 총을 든 모습. ⓒ서울팝스오케스트라 / 연합뉴스 제공
    한국 시민사회, 지성계, 정계, 미디어, 대중사회는 지금 몇 시인가? 한국의 시침(時針)은 지금 중세기인가, 근대인가? 그리고 한국이란 나라는 근대국민국가 맞는가? 이런 엉뚱한 질문을 새삼 던져보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너무너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 푸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우크라이나 정치 초년생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를 섣불리 자극한 탓이라고? 이걸 말이라고 했나, 막걸리라고 했나?

    우선 한국 미디어들이 한결같이 러시아의 ‘침략’ 아닌 ‘침공이란 용어를 굳이 쓰는 것부터가 돼먹지 못한 불공정이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 아닌 ’침공‘ 했다고 하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우크라이나에선 지금 시민 차원의 장렬한 반(反)파쇼 레지스탕스가 전개되고 있다. 시민 수천 명이 러시아군의 원전(原電) 공격에 맞서 인간방패를 이루었다. 먼저 나부터, 우리부터 쏴 죽이고 여길 통과하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교향악단에 근무하던 우크라이나 연주자 3명도 가족을 놔둔 채 참전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갔다. 시민 개개인이 누가 뭐라고 재촉하지 않았는데도 자진 귀국해 무기를 들고 있다.

    이 고귀한 순국 행렬을 묘사하는 어떤 형용사도 충분치 않다. 그저 눈물이 날 뿐이다. 인간이 이렇게 고상해질 수도 있구나 하고 가슴이 찡해질 따름이다. 아! 폭압이여, 야만이여, 저항이여, 처절함이여! 무슨 말이 필요한가?

    러시아 안에서도 올해 77세인 레닌그라드 공방전 참전 여군이 무기를 버리라며 반전(反戰) 시위를 하다가 푸틴 경찰에 연행당했다. 심지어는 나이 어린 어린이들도 우크라이나 대사관에 꽃다발을 전하다가 유치장에 갇혔다. 이런 판에 한국에선 뭐? 나토가 너무 동진(東進)한 게 잘못이라고? 에라 이, 무슨 개뼈다귀 부서지는 소리!

    한국은 그래서 다른 분야에선 선진국에 진입했는지 몰라도 ’지성의 지구화‘란 기준에선 여전히 전근대 사회이고 폐쇄 국가이고, 국내(國內) 위주의 변방(邊方) 국가다. 이걸 일부는 ’민족주의‘ 어쩌고 하겠지만, 그건 정도(正道)의 민족주의가 아니라 미개함이다. 정보화 일등 국가의 미개... 참 웃기는 역설적 코미디다.

    지구화에 가장 민감한 지정학적 상황에 있으면서도, 그래서 예컨대 오징어 게임 출연자들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있었던 배우조합상 시상식을 휩쓸었으면서도, 지성(知性)의 글로벌 보편성이란 부문에선 깜깜한 오지(奧地)인 채 남아있는 한국. 영 그런 종류의 선진 대열엔 끼이질 못하고 안 하는 한국. 이 무슨 무지막지, 후진성, 수치스러움인가?

    문제는 이런 지성의 변방성이 이른바 주사파적 역사관에서 나온 것이란 사실이다. 주사파는 산업화도, 근대화도, 선진화도 모두 식민지적 친일(親日) 현상으로 몰아 배척한다. 그들대로라면 북한 같은 폐쇄적 ’동물농장‘만이 참으로 ’민족적‘이고 ’평등한 세상‘이다.

    그런데 이 망발보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우리는 극우는 아니다”라고 제멋대로 자처하는 ’중간파‘ 지식인들마저 좌익의 그런 통일전선 전술에 굴복해 그 세태에 반쯤 기꺼이 밀려준다는 사실이다. 이들이야말로 적(敵)보다’ 더 미운 정신적 탈영병들이다. 침을 탁 뱉어주고 싶다. 한국에 무슨 나치가 있다고 극우 낙인인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푸틴을 옹호하고 우크라이나 지도자를 오히려 나무라는 현상에서, 그리고 푸틴과 젤렌스키의 중간쯤에 서려는 비겁함에서 우리는 한국사회의 너무나도 경멸스러운 정신적 타락을 목격한다. 그리고 개탄한다. 아, 우리는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자괴감으로 온몸을 떨어 마땅한 오늘의 자화상이다. 우크라이나여, 우리를 위해 울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