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 시리즈'로 한 시대 풍미한 실베스터 스탤론… "노장의 아름다운 퇴장에 박수를"
  • ▲ 영화 '람보 : 라스트 워' 스틸 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S·CON 스콘
    ▲ 영화 '람보 : 라스트 워' 스틸 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S·CON 스콘
    터미네이터와 람보. 시리즈마다 폭력이 난무하지만 오랜 세월 정겨움이 느껴지는 장수 액션영화 신작이 금년 11월에 맞춰 개봉했다. 람보는 1982년, 터미네이터는 1984년에 각각 장도의 길에 올랐으며 이번 최신편은 통산 람보가 5탄, 터미네이터가 6탄에 해당한다. 현 40~50대 이상 영화 애호가들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한 평생을 같이해온 히어로들이라 할 수 있다.

    실베스터 스탤론의 연령(2019년 기준 73세)을 감안할 때 이번 5편이 공식적으로 마지막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2008년에 개봉한 4편 제목은 그냥 '람보(Rambo)'였는데 국내 배급사에서 마지막임을 강조해야 관객이 몰릴 것이라 생각했는지 ‘라스트 블러드(Last Blood)’라는 거창한 부제를 임의로 붙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번에 바로 그 부제를 달고 5편이 나와버렸다. 한번 썼던 제목을 두 번 쓸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한국판 람보5는 ‘Last Blood’라 쓰고 ‘라스트 워’라고 읽으라 한다.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 기구했던 조선의 영웅이 연상된다.
  • ▲ 영화 '람보 : 라스트 워' 스틸 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S·CON 스콘
    ▲ 영화 '람보 : 라스트 워' 스틸 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S·CON 스콘
    실베스터 스탤론은 브루스 윌리스와 함께 공화당을 지지해온 우파성향 배우로 영화에서도 특유의 색채가 곳곳에 묻어난다. 람보는 요즘 말로 ‘라떼는~’ 식의 꼰대이며 구식이다. 이번 5편에서도 월남전에서 배운 60년대 게릴라 전술로 2019년의 악당을 완벽히 제압한다. 또 적의 최후를 칼과 활같은 원초적인 무기로 장식함으로써 세월이 변해도 나쁜 놈들 혼낼 때는 옛날 방식만한 것이 없음을 보여준다. 이는 다이하드4(2007)에서 맥클레인 형사(브루스 윌리스)가 구식 무기를 들고 몸으로 때우며 첨단 해커조직을 박살내는 설정과 비슷하다.

    한편 40여년의 세월동안 영화 람보는 시대와 장소를 바꿔가며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악당들이 등장하지만 약자를 유린하는 그들의 악행은 별반 다르지 않다. 1,2편은 전쟁 영웅을 천대하고 필요할때만 이용하는 미국의 공권력이 악당으로 그려지지만 이후 3,4,5편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양민을 괴롭히는 제3세계의 군부나 마약 카르텔이 악당 계보를 잇는다. 극중 람보는 소수의 선한 이들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악의 존재와 속성을 받아들여야 하며, 강경하게 제압하는 길 외에 달리 방법이 없음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 ▲ 영화 '람보 : 라스트 워' 스틸 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S·CON 스콘
    ▲ 영화 '람보 : 라스트 워' 스틸 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S·CON 스콘
    이처럼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일관된 주제 탓에 람보는 PC(Political Correctness, 구성원들로부터 불이익이나 비난을 피하려는 자세. 경우에 따라 ‘위선’ 또는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소리’로 비판받기도 한다.) 성향이 일반적인 평단에서 종종 억울한 혹평을 받아야 했다. 일례로 2000년에는 최악의 영화 관계자에게 상을 주는 ‘골든 라즈베리’가 실베스타 스탤론에게 ‘20세기 최악의 남우주연상’(특별상)을 수여했다. 이 외에도 매 회 논쟁이 불거진 바 있는 과도한 폭력성, 양민 학살을 일삼는 악당들이 주로 제3국 출신이라는 점에서 인종적 편견이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들려온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영화 람보의 그같은 설정은 그다지 과장된것도 아닐뿐더러 경우에 따라 오히려 현실이 더 살벌한 것 같다. 우선 4편이 배경으로 하고 있는 미얀마에서는 실제로 군부에 의한 양민학살이 종종 보고되고 있다. 보다 못한 유엔은 2106년 10월부터 행해진 이른바 ‘지역청소작전’이라 불리는 미얀마군의 소수민족 학살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 ▲ 영화 '람보 : 라스트 워' 스틸 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S·CON 스콘
    ▲ 영화 '람보 : 라스트 워' 스틸 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S·CON 스콘
    특히 이 과정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로힝야족이 희생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미얀마의 지도자 아웅산 수치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자 2018년 캐나다가 명예 시민권을 박탈했고 같은 해 국제 앰네스티도 2009년에 수여했던 ‘양심대사상’을 철회했다. 한때 전 세계 비폭력 인권운동의 상징이었던 그녀도 어찌할 수 없는 까닭이 무엇일까? 인권과 소수자 보호라는 대의명분보다 더 절박한 현실정치의 논리가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이번 5편에서 배경으로 하고 있는 멕시코의 인신매매, 마약 범죄 또한 실존하는 고질적 병폐이며 현재진행형이다. 2017년 4월에는 멕시코의 한 마약 조직이 상대 조직에 대한 위협의 표시로 고문해서 죽인 시신들을 비행기에서 던지는 바람에 “시체의 비”가 내린다는 섬뜩한 보도가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2019년 8월 기준으로 지난 13년간 암매장된 시신이 총 4,874구에 달하며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마약, 인신매매등 조직범죄와 연관돼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전체 살인 범죄의 94%가 신고조차 되지 않고 있어 멕시코가 사실상 치안과 공권력이 무너진 일종의 아비규환 상태라는 보도가 있었다.
  • ▲ 영화 '람보 : 라스트 워' 스틸 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S·CON 스콘
    ▲ 영화 '람보 : 라스트 워' 스틸 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S·CON 스콘
    이 외에도 람보는 속편이 거듭될때마다 스토리가 빈약하며 단선적이라는 혹평이 늘 따라다닌다. 그런데 현실적인 선악의 문제에 영화 평론가들이 바라는 것처럼 어떤 심오한 스토리나 반전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 이 세상에는 국방과 안보의 경우처럼 단선적으로 이해하고 원초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대개 가능하면 피하고 싶지만 누군가는 해야하니까 하는 일들이다.

    극중 람보는 무적의 영웅으로 그려지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월남전에서 겪은 고문과 참혹한 살상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STD)를 얻었다. 이 병은 극심한 죽음의 공포와 환각·환청이 수시로 엄습하는 무서운 질병으로 알려져 있는데 국내에서는 지난해 3월 천안함 생존 용사 전준영씨가 이 병으로 고통받고 있음이 알려져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 ▲ 영화 '람보 : 라스트 워' 스틸 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S·CON 스콘
    ▲ 영화 '람보 : 라스트 워' 스틸 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S·CON 스콘
    평단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지난 40여년간 우직하게 한 길을 걸어온 람보가 이제 갈채 속에 은퇴를 앞두고 있다. 올해 <더 리치스트>가 공개한 배우들의 순자산 내역에 따르면 1위 머브 그리핀(10억$), 3위 탐 크루즈(5억 5천$), 6위 멜 깁슨(4억 2천 5백$), 8위 잭 니콜슨(4억$)에 이어 실베스터 스탤론이 9위(4억$)를 차지했다.

    칠순을 넘기고 자산도 넉넉한 원로 배우가 큰 사심없이 람보로서의 삶을 정리하며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겠다는데 평단이나 관객수는 큰 의미가 없어보인다. 다시 한번 지금까지 람보와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노장의 아름다운 퇴장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 기회를 빌어 췌장암으로 타계한 트라우트만 대령 역의 리처드 크레나(1926~2003)의 뒤늦은 명복을 빈다.

    - 양일국 정치학박사·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