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전 실은 수레, 말이 끌까 소가 끌까 논쟁금융 재편 갈림길에서 또 허송세월기술혁신이 금융 구조 바꾼다
  • ▲ 이씨조선의 악습 DNA는 사라지지 않았다. 금융산업혁명의 바람이 솔솔 부는데, 한가한 예송논쟁은 치열하다. 선진국 문턱에서 미끄러져 다시 후진국 되게 생겼다.  ⓒ 챗GPT
    ▲ 이씨조선의 악습 DNA는 사라지지 않았다. 금융산업혁명의 바람이 솔솔 부는데, 한가한 예송논쟁은 치열하다. 선진국 문턱에서 미끄러져 다시 후진국 되게 생겼다. ⓒ 챗GPT
    ■ 금융의 역사는 기술의 역사

    수레를 말이 끌 것인가, 소가 끌 것인가? 
    황당한 물음일 것이다. 
    한국에서 스테이블 코인 제도화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의 핵심 이다. 

    금융의 역사는 기술의 역사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금융은 언제나《기술의 그림자였다. 
    돈이 바뀐 것이 아니라, 돈을 기록하고 이동시키는 기술이 바뀌었다. 
    그때마다 금융은 구조적으로 변했다. 
     
    종이가 등장하자 어음과 수표가 생겼다.
    인쇄술이 보급되자 주식과 채권이 탄생했다. 
    증기기관과 철도는 무역금융을 등장시켰다. 

    그리고 전기가 등장하자 금융은 결정적인 변곡점을 맞는다. 
    전신이 등장하면서, 인류는 처음으로 돈을 직접 보내지 않고, 돈에 대한《정보》를 보내는 방법을 갖게 됐다. 
    바로 전신환이다. 
     
    그 이전까지 국제 송금은 말 그대로 금화와 은화를 배에 실어 나르는 물류 산업이었다. 
    하지만 전신이 깔리자, 런던에서 뉴욕으로 돈을 보낼 때 더 이상 배가 필요 없어졌다. 

    숫자만 보내면 됐다. 
    그 순간 금융은 물류 산업에서 정보 산업으로 진화했다. 
    오늘날 외환시장, 글로벌 은행 네트워크, 국제 무역 결제 시스템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다. 

     
    ■ 금융 인프라의 세대교체

    이후의 역사는 반복이다. 

    컴퓨터가 등장하자 신용카드와 ATM이 가능해졌다.
    인터넷이 등장하자 페이팔과 전자결제가 나왔다. 
    스마트폰이 보급되자 핀테크와 간편결제가 일상이 됐다. 

    그리고 지금, 블록체인과 토큰 기술은 결제·청산·정산·소유권 기록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단계까지 왔다. 
    스테이블코인, 토큰화 국채, 24시간 결제 시스템은 모두 그 부산물이다.   
     
    요컨대, 기술이 먼저 길을 내면 금융은 반드시 그 길 위에서 재편된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쟁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마치 전기가 발명되고 전신이 깔렸는데, 엽전을 말로 실어 나를지 소로 실어 나를지 논쟁하는 것 같아서다.  
     
    스테이블코인이 결제·금융 인프라의 세대교체 문제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이게 예금이냐 아니냐” “은행이 해야 하느냐 핀테크가 해야 하느냐” “이자를 주느냐 마느냐” 18세기식 질문만 난무 한다. 
    세계는 금융 고속도로를 어떻게 설계할지 논의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수레를 끄는 주체가 말이냐 소냐를 놓고 싸우는 격 이다. 

     
    ■ 이씨조선 우매함의 재등장

    더 우스운 건, 이걸《신중함》이라고 포장한다는 점이다. 
    꼬집자면 이건 신중함이 아니라《문화지체》일 수도 있다. 
    역사를 보면, 한국은 변화에 능동적으로 잘 대응하지 못하는 경향 이 있다. 

    기술도 금융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면, 먼저 규제를 떠올리고, 그 다음 기존 업권 중심으로 관리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며, 결국 스타트업들은 해외로 나간다. 
    그리고 몇 년 뒤, 기업이 없네 일자리가 없네 등 자학적 질문을 반복한다.   
     
    스테이블코인은《코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차세대 결제망, 즉 금융 고속도로를 누가, 어떤 구조로 깔 것이냐의 문제다. 
    미국이《달러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국채 패권을 디지털로 확장하고, 유럽과 일본이 이미 제도화를 끝내고 활용 단계로 넘어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엽전 쓰던 역사의 반복?

    그런데 한국은 아직도 출발선에서 회의만 하고 있다. 
    전신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오랫동안 엽전을 썼던 역사가 있다. 
    현대에 들어서도 쌀을 화폐로 썼던 기억도 있다. 

    지금 한국은 세계 최강 인터넷 국가가 됐다. 
    한국이 인터넷 기술을 만들지 않았지만, 그 기술을 어느 나라보다 더 열광적으로 쓰고 있다.  
     
    금융 혁신은 거래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경제활동을 더 쉽게 한다. 
    보라. 
    부자나라는 모두 금융 선진국이다. 
    밑천은 제도 신뢰다. 

    제도의 미비함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한국에도《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건 세계에서 쓰이지 않는, 은행 앱 안에 갇힌 또 하나의 내부 포인트 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금융의 역사는 분명히 말해준다. 
    기술이 바뀌었는데 금융 구조를 바꾸지 않는 나라 는 반드시 뒤처진다. 

    지금 한국은 금융 후진국으로 가는 길목 에 있다. 
    역설적이게도 매우 열띈 토론을 하는 중이다. 
    돈 수레를 말이 끌어야 하느냐 소가 끌어야 하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