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요란한데…위험신호 둔감해진 韓경제중기, 생존자금 수요 증가…연체율도 금융위기 이후 최고길 막힌 부동산→몰리는 빚투…신용잔고 사상 최대흥분 아닌 속도 조절…독버섯 터지기 전 멈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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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데일리DB.
'1%대 성장 회복'과 '코스피 4000·5000' 같은 숫자들이 연일 쏟아지며 우리 경제에 대한 낙관론과 청사진이 시장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 기업과 가계가 체감하는 온도가 어떤지, 그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숫자는 환하게 빛나는데, 그 아래에서 쌓이는 부채와 커지는 경고음은 묻히고 있다. 오히려 이 독버섯 같은 위험을 진지하게 마주하려는 시도가 줄어든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반도체 훈풍' 서사가 퍼지면서 경기 낙관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은행권 기업대출 흐름에서는 '두 개의 경기'가 선명하게 갈린다.지난 6월말 기준 은행권 기업대출 중 운전자금 대출 비중은 약 48.9%로 1년 전보다 0.7%포인트 줄었다. 미래 생산 확대를 위한 시설투자 성격의 대출이 상대적으로 늘었다는 의미다. 얼핏 보면 기업들이 당장의 운영자금보다 투자에 적극 나서는 것처럼 읽힌다.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이 흐름은 대기업이 포함된 평균치일 뿐, 중소기업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중소기업 대출을 가장 잘 보여주는 IBK기업은행의 운전자금 대출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5조3000억원 늘었다. 한 해 전 같은 기간 증가폭(4조7000억원)보다 더 커졌다.운전자금은 설비 확충 같은 미래 대비 자금이 아니라, 재고·인건비·납품 결제 등 당장을 버티기 위한 단기 자금이다. 대기업은 '투자', 중소기업은 '생존'이라는 온도차를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현금 흐름이 빠듯한 중소기업의 현실은 연체율에서도 드러난다. 기업은행의 올해 3분기 대출 연체율은 1%로 올라섰다.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9년 1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기업대출만 따진 연체율은 1.03%로 15년 만에 최고치다.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중기 대출 연체율도 0.53%로 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고, 지방 은행은 1.1%로 이미 시중은행의 두 배를 넘는다.이런 흐름은 한계기업 급증과 정확히 맞물린다. 한국은행이 지난 9월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체 외부감사 기업 가운데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 미만인 한계기업 비중은 17.1%로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기업 중 6분의 1일이 한 해 벌어들인 돈으로 대출 이자조차 갚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부동산 규제에 재테크 길을 잃은 가계부문에서는 역대급 '빚투(빚내서 주식 투자)'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주식시장의 신용융자잔고는 25조5000억원으로, 2021년 고점(25조7000억원)에 거의 근접했다. 코스피가 4000선을 넘어서자 유가증권시장 신용융자잔고는 15조8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이런 상황에서 정부까지 "코스피 4000·5000"을 연일 언급하며 장밋빛 전망을 앞세우면서 개인들의 위험 선호는 더 자극되고 있다. 특히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빚투도 일종의 레버리지"라며 주식시장 상승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발언은, 자산시장 과열을 제어해야 할 정책 당국이 오히려 흥분을 부추긴 대표적 장면으로 남았다.권 부위원장은 이후 "무리한 투자를 권한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감당 가능한 범위 내에서 리스크를 관리하라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된 발언 당시에는 부동산과 주식의 수익률을 직접 비교하며 주식 투자를 사실상 권유하는 뉘앙스를 비쳤다.빚이라는 독버섯은 자랄 때는 조용하지만, 한 번 터지면 포자가 사방으로 번져 순식간에 숲 전체를 오염시킨다.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흥분과 더 큰 청사진이 아니라, 독버섯이 번지기 전에 속도를 늦추고 위험을 줄이는 일이다. 한계기업, 금융기관, 가계 신용 어느 곳에서든 균열이 시작되면 그 충격은 금융과 실물, 자산시장으로 연쇄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국내 자산시장이 청사진에 취해 있는 사이, 해외에서는 이미 워닝벨이 요란하다. '빅쇼트'의 마이클 버리가 엔비디아와 팔란티어에 대규모 공매도를 걸며 AI 거품 붕괴 공포를 촉발했고, 뉴욕·유럽·아시아 증시가 일시에 흔들렸다. 세계 금융시장에서 쓰나미가 몰려올 때, 부채로 떠받친 한국이 이를 온전히 견뎌낼 수 있을까. 든든한 뿌리 없이 독버섯만 가득한 숲은 거센 물살 앞에서 통째로 떠내려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