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마귀”·“잔인한 금융” … 이재명·김용범이 던진 신용사회의 불편한 질문절박할수록 비싼 돈 쓰는 구조, 포용금융 확대에도 음지 사금융은 급팽창고신용자에 몰리는 돈의 흐름 … 착한 금융과 건전성 사이 깊어지는 딜레마모두를 살리려다 시스템 흔들릴 수도 … 금융과 복지의 경계 다시 시험대
  • ▲ 이재명 대통령(왼쪽)의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 모두발언을 김용범 정책실장(가운데)이 청취하고 있다.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왼쪽)의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 모두발언을 김용범 정책실장(가운데)이 청취하고 있다. ⓒ뉴시스
    금융은 사람의 사정을 보지 않는다. 은행 창구 앞에서 인간은 사연이 아니라 숫자가 된다. 가장 돈이 급한 사람에게 가장 비싼 금리가 붙고, 가장 절박한 사람일수록 신용의 문턱 밖으로 밀려난다. 살아남기 위해 돈이 필요한 순간, 금융은 오히려 가장 차갑게 등을 돌린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 같은 금융 구조를 비판했다. 그는 "돈은 마귀"라고 했고, "절박한 사람일수록 더 비싼 돈을 쓰는 구조는 잔인한 금융"이라고 말했다. 최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SNS에 연이어 올린 '금융의 구조' 시리즈 역시 같은 문제의식 위에 서 있다.

    김 실장은 "가계대출이 고신용자라는 안전한 온실 속에만 갇혀 있지 않도록 대출 구성을 흔들어야 한다"며 현재 은행권의 신용평가 체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언제까지 과거의 연체 기록과 카드 이력만 바라보고 있을 것인가"라는 말도 남겼다. 금융 관료 출신 정책실장이 스스로 자신이 몸담았던 금융 시스템의 한계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은 셈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 건수는 1만 4786건으로 전년 대비 12% 넘게 증가했다. 올해는 1만 7000건을 넘어설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반면 등록 대부업 이용자는 빠르게 줄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에 따르면 등록 대부업 이용자는 2021년 말 112만명에서 지난해 말 70만 8000명 수준까지 감소했다. 제도권 금융과 합법 대부업 시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음지로 향하고 있다는 의미다.

    인간은 정의를 원하지만 금융은 확률로 움직인다. 은행은 선의로 돈을 빌려주는 조직이 아니다. 미래에 돈을 갚을 가능성을 계산하는 시스템이다. 소득과 자산, 카드 사용 패턴, 기존 대출 규모, 연체 이력을 조각처럼 잘라 미래의 상환 가능성을 추정한다.

    잔인하지만 그것이 금융의 언어다. 고신용자는 낮은 금리를 받고, 저신용자는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한다. 금융의 세계에서 차별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공식이다. 현재 은행 시스템 역시 한국이 독자적으로 만든 구조가 아니다. 중앙은행 제도와 BIS 자기자본 규제, 위험가중자산(RWA), 신용평가 모델까지 지금의 금융 시스템은 서구에서 수백년 동안 누적된 통계와 확률, 금융공학 위에 세워졌다.

    즉 은행은 인간을 믿기보다 패턴을 믿는다. 그래서 금융은 늘 안전한 사람에게 먼저 돈을 내준다. 이미 충분한 자산과 안정적 소득을 가진 사람은 더 낮은 금리와 더 큰 한도를 받는다. 반대로 실패 경험이 있는 사람은 금융 바깥으로 밀려난다. 김용범 실장이 지적한 '신용의 이중 구조'도 결국 이 지점을 겨냥한다.

    시장 흐름도 그렇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65조원을 넘어섰다. 반면 인터넷전문은행의 중·저신용자 대출 연체율은 이미 3~4%대를 웃돈다. 위험이 커질수록 금융은 다시 안전한 곳으로 숨어든다.

    문제는 이 벽을 무너뜨리는 순간 또 다른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국내 4대 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율은 평균 60% 안팎이다. 은행은 공공성과 동시에 수익성과 건전성도 관리해야 하는 주식회사다.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이 커지면 대손충당금 부담이 늘어나고, CET1(보통주자본비율)은 하락 압박을 받는다. 자본 건전성이 흔들리면 결국 은행은 다시 대출 문턱을 높인다. 

    포용금융 역시 모순적이다. 은행권은 이미 지난해 약 2조 1000억원 규모의 민생금융 지원을 집행했고, 5대 금융지주 역시 총 70조원 규모의 포용금융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기대만큼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금융은 결국 손실 가능성을 외면할 수 없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금융이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은행이 장기 연체채권을 상각하거나 매각하는 순간 채무자의 삶은 급격히 무너진다. 부실채권은 원금의 3~10% 수준 가격에 추심시장으로 넘어가고, 금융에서 버려진 사람들은 불법 사금융과 추심의 먹잇감이 된다. 은행이 비워낸 공간을 결국 음지 금융이 차지하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금융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된다. 그래서 역사 속 권력은 늘 빚을 두려워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왕들은 주기적으로 채무를 탕감하는 '주빌리'를 선포했고, 로마 역시 과도한 채무가 공화정을 흔드는 정치적 불씨가 되는 경험을 반복했다. 빚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인간을 사회 밖으로 밀어내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금융 질서가 무너졌을 때 치러야 했던 대가 역시 역사는 수도 없이 보여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은 저금리와 유동성으로 시장을 떠받쳤지만, 그 돈은 결국 다시 자산시장으로 몰리며 더 큰 양극화를 낳았다. 일본 역시 2000년대 대부업 규제를 대폭 강화했지만 상당수 저신용자들은 오히려 음지 사채시장으로 밀려났다.

    결국 필요한 것은 금융과 복지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이다.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은 필요하다. 다만 그것이 신용질서 자체를 흔드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금융으로 해결할 문제와 국가 재정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다르다.

    인간은 늘 착한 시스템을 꿈꾼다. 하지만 역사상 대부분의 시스템은 착해서 유지된 적이 없다. 우리가 잔인하다고 부르는 금융의 구조 역시 어쩌면 인간의 탐욕과 공포를 수백년 동안 가까스로 봉합해온 질서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