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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연일 부동산 규제의 고삐를 죄며 서울·수도권 주택 매물 확대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대출 규제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실수요자가 체감하는 시장은 여전히 닫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에서는 "집을 팔라는 신호는 분명한데 집을 살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 다주택자 매물이 풀린들, 대출이 안 되는데 어떻게 사느냐"며 "이재명 대통령이 스스로 대출을 막아버린 건 잊은 것 아니냐"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이 언급한 서울 다주택자 아파트 4만여 채가 시장에 나오더라도 서민·청년·중산층 가정은 내 집 마련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매물 확대를 정책 성과로 강조하려면 대출 규제 완화를 함께 논의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공급 규모가 4만 채든 40만 채든 국민에게 '희망고문'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정부 스스로가 강력한 대출 규제를 걸어 매수 여력을 차단해 놓고 공급 효과를 말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것은 매물 확대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재개를 시사하며 시장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매물이 늘어나는 것과 거래가 성사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거래는 '자금'인데 정작 자금 조달의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강화된 대출 규제 이후 서울 주택시장은 명확한 신호를 받았다.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5억원에 달하는 상황에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6억원 안팎으로 묶이면서 나머지는 개인의 자산으로 메워야 한다. 집을 사려면 은행에 빚 지지 말고 현금으로 매입하라는 얘기다.
실제 대출이 막히자 주식·채권을 팔아 아파트 매입 자금으로 유입되기도 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종양 의원이 발표한 서울 주택 매수 자금조달계획서 집계 자료에 따르면 6·27대책이 시행된 직후인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7개월간 서울 주택 매수에 활용된 주식·채권 매각 대금은 2조3966억원에 달했다.
강력한 대출 규제로 은행권에서 주택 매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주식 차익 실현 자금이 주택 시장으로 대거 유입된 것이다. 하지만 이 마저도 '있는 사람들' 이야기다. 대출이 막히면 현금 조달 능력을 이용하면 되지만 집 한채 마련하고 싶은 서민들에게는 결국 '그림의 떡' 같은 이야기다.
특히 생애 최초로 내 집 마련에 나선 무주택 실수요자들까지 동일한 대출 규제를 적용 받는 구조에 대한 의문이 나온다. 대출 전면 완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만큼은 숨통을 틔워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공급을 강조하면서도 실수요자의 자금 조달 경로를 막아둔다면 매물 확대는 숫자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구조에서 서민과 청년, 중산층 실수요자는 시장의 관객이 될 수밖에 없다.
규제가 투기 수요를 차단했다기보다는, 대출이 필요 없는 사람만 걸러낸 셈이다. 정부가 의도한 '시장 안정'이 아니라 자산 격차가 다시 한 번 선명해진 구조다.
정책의 모순은 임대사업자 문제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정부는 임대사업자에게도 매물을 내놓으라고 압박하지만 이들이 보유한 주택의 상당수는 아파트가 아니라 빌라·다세대 주택이다. 대출은 막아두고 아파트 시장 진입을 차단한 채 실수요자에게 남는 선택지가 과연 무엇인지 묻게 된다. 정책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서울 아파트는 포기하고 빌라를 사라"는 메시지에 가깝다.
하지만 빌라는 환금성과 가격 신뢰도가 낮고 전세 사기 여파로 위험 인식도 크다. 정부가 위험을 줄여주기는커녕 위험한 선택지로 수요를 밀어내는 구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매물은 늘었을지 몰라도 살 만한 집은 여전히 멀다.
정책은 메시지가 아니라 구조로 평가받는다. 지금의 부동산 정책은 누구에게 집을 사라고 하는지, 누구를 시장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매물 숫자를 늘리는 데서 멈춘 정책은 시장을 움직이지 못한다. 규제와 압박만으로는 거래도 신뢰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울에 집이 없는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팔아라'는 신호가 아니다. 살 수 있는 조건이다. 그 조건을 만들지 못한 채 시장을 몰아붙인다면 그 부담은 결국 진짜 집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돌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