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보다 정책', '시장보다 권력'이라는 시장관외환·금융위기, 통제 실패 아니라 정부 오판의 대가정부 정책도 시장에겐 가격 변수 중 하나일 뿐美 국채금리, 트럼프 금리 인하 압박 때마다 되레 상승시장 통제하는 나라, 글로벌 자본은 '위험 자산'으로 바라봐
  • ▲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정책 자료집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정책 자료집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지만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 한마디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연장 불가 방침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맥락은 부동산이었지만, 이 문장이 던지는 파장은 부동산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대통령의 시장관, 더 정확히 말하면 정책과 시장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가격보다 정책이, 시장보다 권력이 위에 있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 표현이다.

    조금만 역사를 돌아보면, "정부 이기는 시장 없다"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착각인지 금방 드러난다.

    1997년 외환위기는 왜 왔나. 당시 정부는 "외환보유액은 충분하다"고 했지만 시장은 믿지 않았다. 자본은 먼저 빠져나갔고, 정부는 뒤늦게 IMF(국제통화기금) 문을 두드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왜 왔나. 각국 정부와 감독당국은 금융시스템을 관리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시장의 레버리지는 이미 통제 불능 상태였다.

    역사는 단 한 번도 "정부가 시장을 이겼다"는 사례를 기록한 적이 없다. 시장은 애초에 정부를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정책은 수많은 변수 중 하나로 가격에 반영될 뿐이고, 정부는 늘 뒤쫓으며 비용을 치렀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의 본질은 정부가 시장을 억눌러서 안정시킨 역사가 아니라, 시장을 오판한 대가를 치른 역사다.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있어서가 아니라 시장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위기는 터졌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가 과거의 사례라면 비슷한 장면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며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공개적으로 공격하고 급기야 수사 카드까지 꺼내 들자 시장은 정반대로 반응했다. 

    최근 미 검찰이 연준 본부 공사 비용 문제를 이유로 파월 의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미 국채 금리는 오히려 뛰어올랐다. 당시 뉴욕 채권시장에서 10년물 국채금리는 오전 한때 4.19%까지 올라 전일 대비 2.2bp(1bp=0.01%p) 상승했고, 30년물 금리는 4.85%로 3.3bp 뛰었다. 

    권력이 금리 인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순간, 시장은 향후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먼저 계산해 "오히려 금리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쪽에 베팅한 것이다. 정책의 의지보다 시장의 계산이 얼마나 더 영악스럽게 앞서 가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장면이다.

    "정부 이기는 시장 없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은 부동산 정책 메시지를 넘어, 한국 자산시장 전체에 대한 선언처럼 들린다. 이 문장을 금융 언어로 번역하면 "정책이 가격 위에 있다", "필요하면 룰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말로 읽힌다.

    이런 인식이 강할수록 정책은 시장의 판단이 아니라 정부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수시로 손질된다. 시장 입장에서는 룰이 자주 바뀌는 나라가 되고, 그런 나라에는 반드시 위험 프리미엄이 붙는다. 환율에서는 원화 약세로, 주식시장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채권시장에서는 국가 리스크 스프레드 확대로 나타난다.

    결국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한국 자산 전반에 추가 할인율을 얹는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통령은 같은 글에서 "대한민국은 예측 가능한 정상 사회로 복귀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본시장의 귀에는 "정부 이기는 시장 없다"는 표현이 그 문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한국 주식시장이 늘 싸게 평가받는 이유로 흔히 지배구조를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외국인들이 한국 자산에 붙이는 또 하나의 구조적 할인 요인은 정책 리스크다. 그리고 지금 대통령의 이 한마디는 그 정책 리스크가 여전히 한국의 구조적 변수라는 사실을 정점에서 확인해준 셈이 됐다.

    시장은 관리의 대상이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정책은 시장을 억누르기 위한 게 아니라, 폭주하지 않도록 신뢰를 관리하기 위한 도구로 존재해야 한다.

    "버티면 손해 보게 하겠다"는 메시지는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이 권력의 의지로 읽히는 순간, 시장은 그 나라에 더 비싼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한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가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정부가 시장을 향해 통제적 태도를 취하는 순간, 글로벌 자본시장은 그 나라를 더 위험한 나라로 분류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의 힘을 과시하듯 시장을 통제하겠다는 태도가 아니다. 시장이 가는 길이 흔들리지 않도록 규칙과 방향을 관리하겠다는 약속이다. 그게 환율을 지키고, 주식을 지키고, 한국 자산의 신뢰를 지키는 가장 싸고 확실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