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 유심 해킹 사태 전면 나서 극적 수습 앞장선 모범 사례美 국적 오너·美 증시 상장 … 쿠팡, 한국서 과실만 따먹어책임 없는 오너 시장 신뢰 무너뜨려 … 강력한 철퇴 내려야
  • ▲ '쿠팡 사태, 김범석은 어디 있나?' 2일 국회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 관련 현안질의에서 김범석 쿠팡 의장의 사진기사 프린트가 놓여 있다ⓒ뉴시스
    ▲ '쿠팡 사태, 김범석은 어디 있나?' 2일 국회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 관련 현안질의에서 김범석 쿠팡 의장의 사진기사 프린트가 놓여 있다ⓒ뉴시스
    지난 5월 7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자회사 SKT의 유심 해킹 사태에 따른 대국민 사과를 위해서다. "SK그룹을 대표해 사과드린다"로 시작한 기자회견은 '사과 → 반성 → 원인 규명 → 피해 보상'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완성하며 마무리 됐다. 당시 유심 사태는 전국민적 이슈로 떠올랐지만, 그룹 총수가 사과와 피해 보상을 약속하면서 급속도로 수습되기 시작했다. 유심칩을 구하지 못해 난리통을 겪었거나 아예 해외 여행을 망쳐버린 이용자도 일단은 '수습 과정을 지켜보겠다'며 누그러졌다.

    불과 반년 뒤 벌어진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많은 것을 시시한다. 김범석 쿠팡 Inc 의장은 온데간데 없고 박태준 대표이사만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3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 현안 질의에서 여야 의원들은 책임 소재와 사태 수습 방향은 커녕 김 의장의 행방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박 대표는 피해 보상에 대해 "적극 검토하겠다" 이상의 답을 내놓지 못했고, "올해 김 의장을 국내에서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금융정보 유출까지 의심되면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지만 쿠팡은 여전히 '조사 중'이다.

    유심 사태에서 최 회장이 직접 나서는 것을 두고 SK그룹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자칫 그룹 전체가 책임을 덮어써야 할 수도 있는데다, 개인적 송사가 얽힌 최 회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내는게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정면돌파를 택했다. 재계에선 최 회장이 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면 당시 사태가 더 커졌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소비자들의 집단 소송은 물론, 정치권까지 나서 SK그룹 전체를 공격했을 수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오너 경영은 늘 공격의 대상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여권의 시각은 '재벌은 혼내줘야 할 대상'이었다. 3차에 걸쳐 입법 중인 상법 개정안도 총수의 지배력을 무력화 시키고 의사구조를 복잡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하지만 SK 사례는 오너 경영의 장점이 어떻게 강화될 수 있는지를 드러냈다. 오너가 직접 나서는 순간 책임 소재는 분명해지고 위기 대응 체계가 실질적으로 작동한다. 여론이 기술적 실패를 구조적 불신으로 확대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효과도 있었다.

    쿠팡 사태는 오너가 비겁하게 뒤로 숨을 때 얼마나 그 약점이 어떻게 현실화되는지를 보여준다. 미국 본사 중심의 지배 구조와 한국 이용자 기반 사이의 간극은 이번 사태에서 가장 근본적 불신 요인으로 떠올랐다. '책임질 사람'도 없는 기업은 신뢰를 잃고 지속 가능성 역시 담보하기 어렵다. "검은 머리 외국인이 한국 국민의 개인 정보를 활용하고 한국 물류 인프라를 사용하지만 법적 책임은 전혀 지지 않고 있다"는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의 질타를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최 회장이 보여준 즉각적 책임 선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위기 관리의 출발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 반대로 김 의장의 부재는 기술적 원인보다 더 큰 공백, 즉 지배구조 신뢰의 부재를 남긴다. 위기 상황에서 전면에 나선 오너는 신뢰 회복의 주체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오너는 곧바로 기업 전체의 리스크로 전환된다. 이번 사태는 한국 기업 사회가 요구하는 책임의 기준이 한 단계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자본은 책임지지 않는다. 배상만 있을 뿐. 반면 오너는 무한한 책임을 진다. 공과 과가 공존하지만 그런 오너 리더십의 강력한 추진력과 책임감은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한국 경제를 키워온 근간이 됐다. 하지만 쿠팡은 그렇지 않았다. 상장도 미국에 했고 오너도 미국 국적이다. 쿠팡이 앞으로도 오너 리더십을 계속 외면한다면 천문학적 배상과 시장 퇴출이란 미국식 철퇴가 기다리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 ▲ 지난 5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T 유심 해킹 사태 대국민 사과문 발표에서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뉴데일리DB
    ▲ 지난 5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T 유심 해킹 사태 대국민 사과문 발표에서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뉴데일리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