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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갈피 갑론을박
    이재명 대통령은 국토교통부 업무보고 과정에서 출국 검색 조치 현황을 세세하게 묻는 과정에서 이른바 '책갈피 외화 불법 반출' 문제를 꺼냈다. 공항공사와 관세청이 외화 반출 단속과 관련해 업무협약(MOU)을 맺은 만큼 공항공사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지적이었다. 이에 대해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MOU는 협조를 위한 양해각서일 뿐 법적 책임이나 위탁 관계는 아니라고 공개 반박하며, 외화 반출 단속의 법적 책임은 관세청에 있다고 맞섰다. 대통령의 문제 제기를 계기로 '업무협약의 법적 성격'을 둘러싼 개념 논쟁이 공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왕고래 질타
    한국석유공사 업무보고에서는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두고 사업성 검토가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대통령의 추궁이 이어졌다. 매장량 추정과 생산 원가, 국제 유가를 감안한 수익성 판단이 있었는지를 묻고 "계산을 해봤느냐", "변수가 많다고 해서 사업성을 따지지 않은 것이냐"고 질타했으며, 탐사 단계라는 설명에는 "아무 데나 막 파는 것이냐"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공공기관의 판단과 책임을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책갈피'와 '대왕고래' 진실 찾기에 몰두하는 사이 외환시장은 공포에 질리고 있었다. 17일 원·달러 환율은 1479.8원에 마감하며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장중에는 1482원을 넘어서며 다시 1500원 고지를 바라보는 긴장 국면에 들어섰다. 

    이날은 한국석유공사의 업무보고가 진행됐지만, 국제유가 하락 국면에도 불구하고 고환율 탓에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국내 기름값 문제처럼 기업 경영과 국민 생활에 직결된 이슈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환율이 실물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음에도, 관련 논의가 비켜간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최근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이후 달러 약세와 외국인 매도 축소 등 통상적인 하락 요인이 존재했음에도 환율이 오히려 고점을 높였다는 점에서 시장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을 진정시키려는 한국은행도 위기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설명회에서 "최근 고환율은 과거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고물가와 성장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어 결코 안심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나아가 이 총재는 국민연금이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까지 직접 거론하며, 해외 투자 과정에서의 거시적 파급 효과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중앙은행 총재가 개별 연기금의 운용 방식과 관리 필요성까지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현재 환율 상황을 단순한 단기 변동이 아니라, 구조적 수급과 심리 문제가 결합된 국면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금리 상황은 당장 국민들의 삶을 가장 직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 하단은 연 4%를, 상단은 이미 연 6%를 넘어섰다. 신용대출 금리도 다시 상승세다. 연말을 앞두고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올려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이 부담은 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 자금 조달의 바로미터인 회사채와 기업어음(CP) 금리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CP 금리는 최근 두 달 사이 0.5%p 이상 상승하며 기준금리 인하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시장 금리 상승과 함께 단기 자금 조달 비용이 뛰자, 회사채 발행을 망설이는 기업들이 늘었고 비우량 기업을 중심으로 단기물 발행이 급증하는 모습이다. 금리 상승이 기업의 자금 숨통까지 조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가계와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새로 빌릴 수 있는 돈줄은 마르고, 기존 대출의 이자 부담은 갈수록 커지는 국면이다.

    고환율과 고금리는 동시에 작동한다.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와 생활물가를 끌어올리고, 금리 상승은 이자 부담을 통해 소비 여력을 갉아먹는다. 물가와 금리가 함께 오르는 국면에서는 중산층과 취약계층의 체감 충격이 가장 크다. 기업 역시 환율 변동성 확대와 금융비용 상승이라는 이중 부담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흐름이 지속될 경우 소비 위축, 투자 지연, 자영업 부실 확대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이는 다시 성장 둔화와 재정 부담 증가로 되돌아오는 악순환을 낳는다. 

    더욱이 현 정부는 재정과 유동성 정책 역시 환율을 둘러싼 책임 논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올해 지역사랑화폐와 민생회복 소비쿠폰 등을 통해 단순 합산으로만 42조9000억 원에 달하는 유동성을 공급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 물가 상승 압력을 자극했고, 결과적으로 환율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지난주부터 이어지고 있는 대통령의 생중계 업무보고를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것은 '환단고기', '책갈피 외화 유출', '탈모 건보 적용' 밖에 없다는 것이 허탈하기만 하다. 

    출렁이는 자본시장과 이자 부담 앞에서 하루하루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국민들이 이런 장면을 보기 위해 생중계 업무보고를 지켜본 것은 아닐 것이다. 굳이 보지 않아도 될 업무보고를 사상 처음으로 생중계하겠다고 결정한 것 역시 이재명 대통령이다. 보여주기가 목적이 아니라면, 이제는 국민 경제를 향한 분명한 관심과 메시지를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