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8000 시대의 두 얼굴신용거래융자 잔고 37조원 넘어은행 부실채권 18조원 육박뜨거운 증시 뒤 불안한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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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6월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숫자는 8000이다.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질주하자 투자자들은 연일 환호하고 있다. 박스피를 걱정하던 시장은 어느새 코스피 1만을 논하는 곳이 됐다.

    직장인들은 점심시간마다 수익률을 확인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번에는 진짜 다르다"는 글이 넘쳐난다.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인공지능(AI) 혁명, 기업가치 재평가까지 상승을 설명하는 논리는 차고 넘친다. 주식이 오르는 나라에서는 희망도 함께 오른다. 8000은 그런 숫자다.

    그런데 모든 시선이 8000에 쏠려 있을 때, 다른 숫자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처음으로 37조원을 넘어섰다. 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빌려 주식에 태운 돈이다. 한 달 만에 1조 3000억원 넘게 불어났고, 코스피 시장 신용잔고 역시 처음으로 27조원 선을 돌파했다.

    은행 창구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5대 은행의 개인 신용대출은 5월 한 달 동안 2조 6496억원 급증했다. 2021년 4월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반면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250억원에 그쳤다. 증가 규모만 놓고 보면 신용대출이 주담대를 100배 이상 앞질렀다.

    마이너스통장 잔액도 41조 9303억원으로 3년 5개월 만에 최고 수준까지 불어났다.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집을 사기 위해 빚을 냈다. 지금은 주식을 사기 위해 빚을 낸다. 영끌이 퇴장한 자리를 빚투가 대신 채우고 있는 모습이다.

    등산을 해본 사람은 안다. 산이 가장 위험한 곳은 입구가 아니다. 정상 부근이다. 가장 힘든 구간을 지나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경계심을 푼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풍경이 두려움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시장도 비슷하다. 코스피가 3000에서 4000으로 갈 때보다 7000에서 8000으로 갈 때 투자자들은 더 낙관적이다. 위험은 커졌는데 공포는 줄어든다. 정상은 가장 아름다운 곳이지만 동시에 가장 미끄러운 곳이기도 하다.

    문제는 시장 밖의 숫자들이다. 올해 3월 말 국내은행 부실채권은 17조 7000억원으로 18조원에 육박했다. 2019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부실채권비율은 0.60%로 2021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더 심각한 것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다. 개인사업자 부실채권비율은 0.66%로 2015년 이후 1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중소법인 부실채권비율도 1.03%까지 높아졌다. 코로나19 시절 정책 지원 아래 가려져 있던 부실이 고금리와 내수 부진 속에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식시장에서는 미래를 사기 위해 빚을 내고 있지만, 실물경제에서는 오늘을 버티기 위한 숨 고르기조차 버거운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같은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체감하는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마치 한 건물의 옥상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지하에서는 균열이 번지는 모습과 닮았다.

    더 불안한 대목은 금리다. 시장이 환호할수록 중앙은행의 표정은 오히려 굳어지고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물가를 보나 성장을 보나 환율을 보나 부동산을 보나 갈 길이 명확하다"고 말했다. 시장은 이를 사실상 긴축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앙은행이 보는 풍경과 투자자들이 보는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한 셈이다.

    실제 은행채 5년물 금리는 4.28% 수준까지 올랐고 일부 은행의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은 이미 7.11%까지 상승했다. 연내 기준금리 인상이 현실화될 경우 주담대 금리 8%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신용대출 금리 역시 5% 후반까지 올라섰다.

    금융시장의 역사를 돌아보면 가장 위험한 순간은 사람들이 빚을 두려워할 때가 아니라 빚이 가장 합리적으로 보일 때였다. 1999년 닷컴버블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2021년 영끌 광풍도 그랬다. 위험은 언제나 공포 속이 아니라 낙관 속에서 자란다.

    시장이 실물경제보다 훨씬 빠르게 달리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둘의 간격을 좁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업 실적과 성장률이 이를 따라주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조정은 생각보다 거칠게 찾아온다. 특히 지금처럼 신용잔고와 신용대출이 동시에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는 국면에서는 상승장의 열기가 식을 때 충격 역시 증폭될 수밖에 없다.

    달력 속 여름은 이제 막 시작됐지만 시장은 이미 한여름이다. 정부는 증시 부양을 말하고 시장은 새로운 시대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시장은 미래를 먼저 사고, 현실은 나중에 계산서를 보낸다. 햇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진다. 그리고 계절에는 언제나 끝이 있다. 여름도, 상승장도 예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