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北 남침-中 병력-소련 무기의 합작품항미원조, 中이 6.25 참전 합리화 위한 용어전쟁기념관, 항미원조를 초중고생에게 교육전투력 3대 요소, 정신·조직·동맹 모두 흔들려묻지마 사관학교 통폐합, 전작권 정치적 전환
  • 6월이면 나는 가끔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는다. 전쟁기념관 회랑과 추모벽에는 수많은 이름이 새겨져 있다. 1950년 여름 낙동강 전선에서 전사한 학도병도 있고, 혹한의 장진호 전투에서 산화한 미 해병도 있다.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쓰러진 젊은 국군 장병들도 있다. 그들 대부분은 스무 살 안팎이었다. 강의실에 앉아 미래를 꿈꾸어야 할 나이였다. 그러나 그들은 교과서 대신 총을 들었다. 나라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6·25 전쟁은 그렇게 대한민국을 지켜낸 전쟁이었다.

    그런데 최근 그 전쟁기념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전쟁기념관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6·25전쟁, 서로 다른 해석」이라는 해설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부제는 「압록강을 바라보는 두 시선」이었다. 포스터에는 대한민국의 '6·25전쟁'과 중국의 '항미원조'가 나란히 배치됐다. 교육 대상에는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까지 포함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프로그램은 철회됐다. 그러나 국민들이 받은 충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전쟁기념관에서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했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항미원조(抗美援朝)'. 중국은 지금도 한국전쟁을 이렇게 부른다. 중국이 미국에 맞서 조선을 도왔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네 글자에는 한국전쟁의 진실이 빠져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침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항미원조 서사에서는 중국이 가해자라는 진실도 사라진다. 남는 것은 미국의 침략과 중국의 정의로운 참전뿐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중국이 단순히 뒤늦게 참전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1949년 5월 김일성은 특사를 베이징으로 보냈다. 목적은 남침전쟁 준비였다. 당시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군 소속 조선인 부대들을 북한에 넘기는 데 동의했다. 훗날 북한군 주력 사단으로 편성되는 핵심 전력이었다.

    소련의 스탈린은 더 노련했다. 그는 직접 싸우지 않았다. 대신 중국을 전쟁으로 밀어 넣었다. 마오는 소련제 무기를 원했고, 스탈린은 중국군의 참전을 원했다. 결국 김일성은 전쟁을 시작했고, 마오는 백만명이 넘는 병력을 보냈으며, 스탈린은 뒤에서 조종했다. 한국전쟁이 세 명의 공산 독재자가 벌인 공동 프로젝트였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독재자들이 벌인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대한민국 국토는 잿더미가 됐다. 천만 이산가족의 비극이 시작됐다. 더구나 중공군 개입으로 전쟁은 2년 8개월 더 길어졌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삶도 그곳에서 멈췄다. 그래서 항미원조 논란은 단순한 용어 논쟁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어떤 역사로 기억할 것인가의 정체성 문제다.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도 국가정체성 차원에서 ‘항미원조’ 논란과 비슷하다. 정율성은 한국인 이지만, 6.25 전쟁을 벌인 북한군과 중공군의 군가를 작곡한 인물이다. 북한군과 중공군은 정율성이 지은 군가를 듣고 부르며 사기가 올랐고, 그 사기로 국군과 유엔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그런데도 정율성이 태어난 지자체는 국민 세금으로 정율성을 기리는 공원을 조성하려다 국민 반대로 중단했다. 도대체 북한군과 중공군 군가를 작곡했던 인물을 기념할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을 지켜낸 사람들을 기억할 것인가.


  • ▲ 국회 국방위원회 한기호(좌)·임종득(우) 의원이 육사 졸업생 김세진(중앙)씨와 함께 국방부 정문 앞에서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폐합 졸속 추진에 반대 시위하고 있다.
    ▲ 국회 국방위원회 한기호(좌)·임종득(우) 의원이 육사 졸업생 김세진(중앙)씨와 함께 국방부 정문 앞에서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폐합 졸속 추진에 반대 시위하고 있다.
    문제는 요즘 군 전투력의 요소인 정신에 해당하는 국가정체성 외에도 조직과 동맹까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총체적 난국이다. 전쟁에선 무기도 중요하지만, 정신이 흔들리면 적과 아군의 경계가 흐려진다. 조직이 취약해지면 군은 힘을 잃는다. 동맹이 느슨해지면 국가안보의 축이 무너진다. 지금 이 세 가지가 모두 흔들리고 있다.

    그 사례 최근 방첩사 해체 논란이다. 계엄령 사건으로 미운 털이 박힌 방첩사는 오랜 세월 보안과 방첩에 특화돼 있고, 경험도 많다. 조직이 밉다고 해서 임무를 찢어 흐트려 놓으면 대체 누가 보안과 방첩 임무를 제대로 할 것인가. 사관학교 시스템 개편은 군사전략과 군구조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은 답정너식의 사관학교 개편과 통합은 마차가 말을 끄는 꼴과 다름없다.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환수도 그렇다. 조건이 전혀 충족되지 않은데 정부는 정치적 판단으로 자주권 차원에서 환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나라의 운명이 걸린 사안을 정치적으로 판단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처럼 대한민국 안보를 떠받치는 세 개의 기둥이 동시에 흔들리는 느낌이어서 국민은 뭔지 모를 불안감을 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코스피 상승과 K-방산 수출 호황을 보며 대한민국이 강해졌다고 말한다. 물론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국가의 힘은 주가지수로만 측정되지 않는다. 나라를 지탱하는 힘은 결국 국민이 공유하는 역사와 정체성, 그리고 그것을 지키겠다는 의지에서 나온다. 1950년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이었다. 변변한 무기조차 없었다. 그러나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정신만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살아남았다. 

    전쟁은 1953년에 끝났지만, 기억을 둘러싼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쟁기념관 벽에 새겨진 젊은 전사자들의 이름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들은 우리가 무엇을 지키기 위해 꽃다운 청춘을 바쳤는지 기억하는가." 역사를 잃으면 정체성을 잃는다. 정체성을 잃으면 전투력을 잃는다. 그리고 전투력을 잃은 국가는 결국 나라를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