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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여야 지도부 오찬 회동에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발언을 듣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최근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보수·우파 진영 인사인 이혜훈 전 의원을 지명하고,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 김성식 전 의원을 임명한 것은 단순한 탕평을 넘어선 고도의 정치적 포석으로 읽힌다.
여기에 유승민, 조경태, 홍준표 등 보수·우파 진영의 무게감 있는 인사들까지 차기 인선이나 협치 모델의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의도와 무관하게 이 대통령의 이러한 전격 발탁은 국민의힘이라는 야당의 근간을 뒤흔드는 정치적 파급력을 낳고 있다.
정치는 전선을 설정하는 싸움이다. 어떤 의제를 중심에 올리느냐, 어떤 프레임으로 상대를 묶어두느냐에 따라 승패는 갈린다. 최근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이 점을 누구보다 집요하게 활용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겉으로는 통합을 내세우지만 실제 효과는 야당의 판단과 대응을 흐리게 만드는 교란에 가깝다.
대표적인 장면은 인사다. 야권 출신 인사를 요직에 배치하거나 과거 대척점에 섰던 인물을 전면에 세우는 장면은 늘 화제가 된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나는 진영을 넘는다"는 이미지다. 그러나 이 인사는 정책 방향의 전환이나 권력 구조의 분산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야당 내부에 혼선을 불러오는 신호로 작동한다. 비판하면 '발목 잡기'가 되고 환영하면 '정권의 들러리'가 된다. 어느 쪽이든 야당은 곤혹스럽다.
청와대는 '능력 위주의 인사' '진영을 넘는 통합'이라는 설명을 내놓지만 야당 내부에서는 앞서 언급한대로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을 분열시키는 정치적 효과를 정확히 겨냥한 인사라는 것이다. 이혜훈 전 의원을 즉각적으로 제명 조치하며 배신자로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큰 불만은 이번 인사가 야당과의 사전 협의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는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존중하기보다는 야당 내 온건파나 정책 전문가들을 개별적으로 포섭해 야당의 단일대오를 무력화하려는 전략적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이러한 인사 발표 후 국민의힘 내부는 술렁이고 있다. 일부는 "능력 있는 인사가 국정에 참여하는 것을 마냥 반대할 수는 없다"고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야당의 인적 기반을 빼내는 교란 작전"이라는 강한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당의 노선과 전략, 리더십을 둘러싼 갈등이 인사 문제를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이 상황을 모두 대통령의 '교란 작전'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이 지점에서 야당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대안 세력'으로서 국민에게 어떤 비전과 메시지를 제시해왔는지 냉정하게 자문해야 한다.
외부의 자극 하나에 당이 쉽게 흔들린다면 그것은 이미 내부 체력이 크게 약화됐다는 방증이다. 명확한 가치와 노선, 이를 중심으로 한 결속이 있었다면 몇몇 인사 발탁만으로 당 전체가 동요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된다면 국민의힘은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선거는 결국 '누가 더 단단한 팀인가'를 겨루는 싸움이다. 분열된 야당, 각자도생하는 정치인, 일관된 메시지를 내지 못하는 지도부로는 집권 세력에 맞서기 어렵다. 이는 단순한 선거 패배를 넘어 야당의 구조적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신호다.
이 대통령의 인사가 통합을 위한 것인지, 정치적 계산이 깔린 승부수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평가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야당이 지금처럼 크게 동요한다면 그 평가와 무관하게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힘 몫이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노나 음모론이 아니라 스스로를 단단히 세우는 '자강의 전략'이다.
과거 천막당사 때의 정신으로 단일대오를 복원하고 내부 이견을 조정해 국민에게 분명한 대안을 제시해야 '인사 교란'을 예방할 수 있다. 이대로라면 야당은 분열을 넘어 몰락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이혜훈 전 의원이 장관 후보자로서 첫 출근 때 우리 경제는 '회색 코뿔소'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역설적으로 국민의힘에도 회색 코뿔소가 그대로 적용된다. 국민의힘이 현재 겪는 문제는 충분히 예견됐고 경고가 반복적인데도 쾌도난마 없이 제자리만 맴돌고 있다. 30%대 박스권 전국 지지율이 이를 증명한다. 이대로 돈키호테처럼 풍차를 향해 질주한다면 그나마 비상할 동력을 지닌 날개마저 꺾일 것이다.
이제 내년 지방선거까지는 150여 일밖에 남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즉각적으로 응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