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의 시계는 왜 늘 시장보다 늦었나금과 환율에서 반복된 ‘사후 대응’의 비용리스크를 피한 선택이 전략의 공백이 될 때신뢰는 결과가 아니라 타이밍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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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정책에는 시장의 동일한 평가가 늘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방향이 틀린건 아니지만, 타이밍이 늦다." 시장이 먼저 움직인 뒤에야 중앙은행의 시계가 돌아간다는 의미다. 금에서도, 환율에서도 그 시간차는 반복됐다. 오를 때는 주저했고, 정점에 다다른 뒤에야 대응을 검토했다. 그 사이 정책은 방향을 만들지 못한 채 사후 조정으로 소모됐다.

    금 보유 전략은 그 상징적인 사례다.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2013년 이후 104.4톤에서 단 한 번도 늘지 않았다. 당시 국회에서 불거진 금 투자 논란은 한은 내부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이후 선택은 일관됐다. 아예 건드리지 않는 것. 리스크를 관리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멈춘 셈이다.

    그러는 동안 금 가격은 다른 시계를 따라 움직였다. 온스당 1400달러 안팎이던 금값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한은이 보유한 금의 평가액은 네 배 가까이 불었지만,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3% 수준에 머물렀다. 주요국 중앙은행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안전 자산'의 시대에 중앙은행의 안전 자산 전략은 공백으로 남았다.

    뒤늦게 검토된 것이 금 현물 ETF다. 그러나 시점은 이미 시장이 고점을 의식하는 국면이었다. "지금은 비싸다"는 설명이 붙자, 시장에서는 냉소가 나왔다. 사지 않으면 회피라는 비판을 받고, 사려 하면 늦었다는 평가를 받는 구조인 것. 장기 전략도, 단기 기민함도 모두 놓친 결과다.

    환율 대응도 닮아 있다. 원·달러 환율은 1470원대를 중심으로 불안한 진폭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연말 외환당국은 개입을 통해 환율을 일시적으로 끌어내렸지만, 새해와 함께 다시 반등했다. 시장은 이를 방향 전환이 아닌 시점 조정으로 읽었다. 숫자는 관리했지만 추세는 바꾸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 비용은 외환보유액에서 드러난다. 1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259억 1000만달러로 두 달 연속 감소세다. 공식 설명은 외환스와프 등 시장 안정 조치지만, 환율 방어 과정에서 상당한 달러가 소진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방어는 소모전이 됐고, 시장은 이를 인식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경고도 가볍지 않다. 한국은 대외 충격에 민감한 구조로 분류됐다. 단기 외환 유동성 대비 대외 금융자산 비율은 주요 선진국대비 25배에 달한다. 변동성이 커질수록 환율이 더 크게 흔들릴 수 있는 구조라는 뜻이다. 중앙은행의 '안정' 담론과 시장의 체감 온도는 여기서 다시 어긋난다.

    환율 불안은 금리로 전이됐다. 기준금리는 2.50% 동결됐지만, 환율 압박 속에서 유동성 공급이 늘어나자 시장 금리는 오히려 상승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연 3.21%, 10년물은 3.71%까지 상승했고,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6~7%대에 진입했다. 환율을 막기 위해 돈을 풀수록 원화 가치에 대한 신뢰는 약해지고, 시장은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는 역설이 만들어졌다.

    중앙은행의 신뢰는 결과가 아니라 타이밍에서 나온다. 맞는 말을 언제 하느냐, 필요한 결정을 언제 내리느냐의 문제다. 이 총재 체제의 한은은 정치적 부담을 피하는 데는 우등생이었지만, 시장을 설득하는 데는 지각생이었다.

    금도 환율도 놓친 지금, 선택지는 줄어들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에 따른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총재의 시간표는 안정이 아니라, 어긋난 시계의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