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평가와 내부 통제 사이의 괴리빛은 초상화를 비추지만, 조명은 얼굴을 드러낸다지배구조의 사각지대가 만든 권한과 보상 시스템개혁은 초상 아니라 얼굴을 다시 그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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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두 개의 초상화를 가지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한동안 ‘모범 전문경영인’이라는 이미지가 표면적으로 유지돼 왔지만, 농협 내부의 조명 아래 비친 얼굴은 훨씬 더 거칠고 어두웠다. 상훈과 국제 임명으로 박수를 받던 순간 뒤편에서 비자금 의혹과 특혜성 보상 구조가 자라났고, 결국 그는 사과문을 들고 국민 앞에 섰다. 농협중앙회장이 고개를 숙인 장면은 2011년 전산장애 사태 이후 15년 만에 다시 펼쳐졌다.

    외부에 걸린 강 회장의 초상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모범 경영인'의 틀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윤리경영과 CSR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한국전문경영인 대상을 수상하고,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아태지역 이사로도 선임돼 존재감을 키웠다. 농협은 국제 무대에서 점잖은 얼굴을, 국내 정치·금융 영역에서는 유능한 행정 얼굴을, 내부 조합원과 직원들에게는 경영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조직이다. 다층적 얼굴은 농협의 숙명이었고, 정작 문제는 그 다층성이 어떻게 보상됐는가였다.

    농림축산식품부 특별감사는 내부 초상을 정면으로 비추는 거울이 됐다. 감사 결과는 출장비 초과 집행과 겸직 보상 문제를 동시에 드러냈다.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쌓여 있던 겸직 보상 구조는 연간 3억원이 넘는 추가 보상과 퇴직금을 제공했고, 중앙회장은 이를 설명하거나 설계한 적이 없지만 그 혜택은 정확히 귀속됐다. 관행은 구조가 되고, 구조는 권리가 됐다.

    출장비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통제의 문제다. 강 회장은 일부 일정에서 규정을 초과해 집행된 약 4000만원의 공금을 사비로 반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책임을 덮은 조치일 뿐 문제를 끝낸 것은 아니다. 농협 내부에서 반복돼온 지적은 단순했다. "반환은 해결이 아니고 통제가 해결이다." 

    더 앞서 불거진 비자금 의혹은 또 다른 자화상을 제공했다. 농협생명 판촉물 조달 과정에서 최대 9억원 규모의 차액이 현금화됐다는 의혹은 이미 수사기관으로 넘어갔다. 정치권의 문제 제기가 금융당국과 검찰로 옮겨간 것은 사안의 성격이 '도덕'이 아니라 '자금 흐름'의 문제라는 뜻이다.

    농협은 협동조합이지만 공기업도 민간기업도 아니다. 금융·보험·유통·언론을 포함한 거대한 복합 경제조직이다. 중앙회, 금융지주, 계열사, 지역 조합으로 이어지는 다층 의사결정 구조는 어디에도 완전히 연결되지 않고, 어느 곳에도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다. 그 틈에서 중앙회장은 책임자이자 수혜자가 되는 묘한 지위를 확보한다. 이 구조는 오랫동안 농협의 힘이었고, 동시에 농협의 약점이었다.

    강 회장은 '뼈를 깎는 쇄신'을 약속했지만 금융권의 반응이 회의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혁의 대상과 주체가 분리되지 않는 조직에서 쇄신은 어렵다는 경험적 판단 때문이다. 책임은 분산되고 권한은 집중돼 있는 구조는 감독 시스템의 취약으로 이어진다. 농협이 스스로 개혁의 대상과 주체를 동시에 자처하는 모순은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개혁은 '누가 책임지는가'를 명확히 한 뒤에만 시작된다. 지금까지 농협은 그 질문을 피해 왔다. 책임 없는 사과, 통제 없는 쇄신, 외피만 바뀐 구조조정은 모두 실패로 귀결됐다. 이번 사태가 또 하나의 사과문으로 봉합된다면 농협이 잃을 것은 명예가 아니라 권한일 것이다. 

    외부의 초상은 쉽게 그려지지만, 조직의 내부 실체는 결국 드러난다. 농협이 선택해야 할 것은 어떤 초상을 남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얼굴로 시대를 견딜 것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