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개헌, 통일 지우고 영토조항 신설김정은 핵지휘권 명기→1인 독재위장 평화공세… 6·25 전야 데자뷔李 정부 대북정책, 헌법 3·4조 충돌청와대, 원론적 '평화 공존' 재확인
  • ▲ 북한 김정은이 지난 2일 노동당 외곽 청년단체인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청년동맹) 제11차대회의 참가자들을 만나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 ⓒ북한 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 북한 김정은이 지난 2일 노동당 외곽 청년단체인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청년동맹) 제11차대회의 참가자들을 만나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 ⓒ북한 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북한이 '영토 조항'을 헌법에 박아 넣으면서도 육·해상 경계선 명시는 피했지만 대신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발생하는 국지 충돌을 언제든 '영토 침범'으로 포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북한 새 헌법 전문은 지난 6일 통일부 기자간담회를 통해 알려졌다. 신설된 제2조는 "영역은 북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로씨야(러시아)연방,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영토와 그에 기초하여 설정된 영해와 영공을 포함한다"고 규정했다. 

    기존 헌법 제9조에 명시된 '자주, 평화 통일, 민족 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는 조항은 통째로 삭제됐다. 서문과 본문 곳곳에 흩어져 있던 '북반부', '조국 통일',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도 일괄 제거됐다. 통일을 향한 '북반부'와 '민족' 담론을 걷어내고 남북을 사실상 별개의 국가로 전제하며 김일성·김정일의 통일 유훈을 조용히 폐기한 것이다.

    북한이 헌법으로 남북 관계를 '두 국가 관계'로 못 박는 동안 청와대의 첫 반응은 '평화 공존' 기조 재확인에 머물렀다. 청와대는 북한의 개헌에 대해 7일 "관련 사항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나갈 것"이라며 "한반도 평화 공존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내놨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2024년 1월 한국을 헌법에 '제1의 적대국'으로 명기할 것을 지시했음에도 정작 개정 헌법에 그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고무된 분위기다. 이를 북한이 정상국가화 하는 과정으로 평가하며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북한 전문가인 이정철 서울대 교수는 통일부 간담회에서 "북한이 정상 국가로서 일반적 헌법의 형태를 띠기 위해 변화를 꾀한 것 같다"며 "국무위원장의 권한을 상당 부분 강화한 측면이 가장 인상 깊다"고 평가했다.

    김정은의 독점적 핵무력 지휘권과 위임 근거를 처음으로 헌법에 명기하고 김정은에 대한 명목상의 견제 장치인 최고인민회의 소환권까지 삭제함으로써 1인 지배 구조를 헌법적으로 완성한 점을 고려하면 이번 개헌은 '위장 평화 공세'를 위한 개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전직 안보 관료는 "김정은이 2023년 12월부터 표명해 온 적대적 두 국가론이 법 조문에 명시되지 않았을 뿐이지 전략적 지향 자체는 바뀐 게 없다"며 "이번 개헌은 정상 국가의 외양을 취하면서 김정은에게 핵무력 통제권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헌법적으로 부여한 것으로 사실상 예고된 수순"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7일 북한 대외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는 담화를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전파방지조약(NPT)에 구속되지 않는다"면서 "국가핵무력정책법령과 핵보유국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고착시킨 국가 헌법에 따른 의무 이행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개헌이 남북대화의 신호가 아닌 핵 체제 공고화의 법적 완성임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북한이 6·25 직전에도 평화 협상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남침을 준비했다는 역사적 전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이 같은 위험은 서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북한이 헌법에 '영역에 대한 그 어떤 침해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고 못 박은 이상 NLL 일대의 물리적 충돌은 언제든 '영토 침범'으로 규정돼 도발의 명분으로 전용될 수 있다.

    1953년 유엔군사령관은 남북 간 해상 경계선인 북방한계선(NLL)을 설정했지만 북한은 이를 부인하며 연평도와 백령도 등 서해 5도 일대가 모두 북측 수역이라고 주장해 왔다. 김정은은 이미 2024년 2월 NLL을 "국제법적 근거나 합법적 명분도 없는 유령선"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또 다른 전직 안보 관료는 "소규모 국지 마찰조차 헌법적 근거를 갖춘 군사 대응의 빌미가 될 수 있다"며 "북한은 NLL 남측에 일방적으로 '서해경비계선'을 긋고 서해 5도 일대에서의 활동을 국경선 침범으로 규정해 무력 도발의 빌미로 삼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새 헌법을 근거로 기존의 '서해경비계선' 주장을 더욱 공세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가 헌법과 충돌한다는 비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공식 대북 정책인 '한반도 평화 공존 정책'은 북한 체제를 존중하고 흡수 통일을 하지 않으며 적대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3대 원칙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이는 한반도 전체를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한 헌법 제3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명시한 제4조와 충돌할 위험이 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부·여당이 내건 '단계별 개헌'의 최종 단계에 '평화적 두 국가론'과 북한 국호 사용이 포함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전직 외교안보 라인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헌법으로 분단을 고착시키는 사이 이재명 정부의 대북 인식은 대한민국 헌법의 규범적 토대로부터 스스로 멀어지고 있다"며 "정부 주요 인사들이 북한의 두 국가론에 편승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그럴수록 이재명 정부에는 정치적 자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