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성과를 정치로 해석…실적시즌마다 정치·여론 타깃될까 '노심초사' '최대 리스크'가 된 정치 환경, 금융사 의사결정 지배
  • ▲ 이 이미지는 챗GPT의 이미지 생성기능을 통해 제작됐습니다.
    ▲ 이 이미지는 챗GPT의 이미지 생성기능을 통해 제작됐습니다.
    과거에는 기업들에게 '1위' 경쟁이 일상이었고, 그 자체가 시장경제의 역동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장사를 잘했다는 기사 하나조차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은행권에서는 '순익 1등' 슬로건이 사라진 것을 넘어 "1등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말도 스스럼없이 나온다. 실적 시즌이 다가오면 이익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정치·여론 리스크가 될까 눈치를 보는 표정마저 읽힌다.

    은행권에서 마지막으로 "순익 1위"를 대놓고 목표로 내걸었던 인물은 조병규 전 우리은행장이었다. 4대 시중은행 중 실적 면에서 가장 뒤처져 있던 우리은행에서 "1등을 해보자"는 구호는 다소 무리수처럼 보였지만, 지금 돌아보면 금융사가 당당하게 스스로의 경쟁력을 말하던 마지막 장면이었다.

    돈을 더 잘 벌어보자고 외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 것은 기업의 경영 성과를 경제가 아니라 정치적 잣대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굳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계엄과 탄핵을 거쳐 이뤄진 정권교체 이후에는 금융권에서 거의 모든 CEO마다 '전 정권 실세와의 연루설'이 돌았다. 사실 여부를 떠나 문제가 됐던 건 그런 루머 자체가 경영진의 거취와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정치 환경이 살벌해졌다는 점이다.

    12·3 계엄 정국 이후 1년 내내 이어진 내란몰이, 동조세력 색출 등 서슬퍼런 환경 속에 정권 기조에 거스르지 않는 것이 금융사의 가장 중요한 리스크 관리가 돼버린 것이다.

    정부 캠페인에 따른 금융사의 대출 자산 조정은 이제 일상이다. 주택담보대출은 막히고 신용대출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 흐름은 경제 논리보다 정치적 요구 반영에 가깝다. 

    이재명 대통령의 '금융 계급제' 발언 이후 은행권에서는 신용이 높은 차주 금리가 더 높은 이례적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다. 신한·NH농협·IBK기업은행 등에서 601∼650점 차주 금리가 600점 이하보다 높게 책정된 것으로 공시됐는데, 은행 스스로도 "리스크 기반 금리 원칙이 흔들린 보기 드문 사례"라고 말할 정도다. 취약계층 금융비용 완화를 위한 정책 기조가 직·간접적으로 시장 가격체계까지 뒤흔든 것이다.

    이처럼 정치권의 '약자 보호' 메시지가 시장에 과도하게 투영되다보니, 기업의 정상적 이윤추구조차 '과도한 욕심'으로 규정되고 있다. 이윤이 부각되는 순간 규제나 정치적 공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며, 기업들은 성장 목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조차 피하게 됐다.

    1등이 꺼려지는 현상은 금융에만 머물지 않는다. 제조, IT, 유통, 스타트업을 막론하고 기업 홍보실은 실적이 너무 좋다고 알려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돈을 너무 벌면 욕을 먹는다"는 인식이 산업 전반에 퍼진 것이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미덕은 무엇인가. 민간기업이 이윤을 추구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투자와 혁신을 이끌며, 그 성과를 주주와 근로자에게 나누는 것이다. 

    기업이 잘되는 것이 곧 국가 경쟁력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과 투자, 고용이 사회를 지탱한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탁월한 성과가 죄가 되고, 1등은 공격의 대상이 되며, 성장 목표는 정치적 부담이 됐다. 

    12·3 계엄 이후 1년 한국이 잃어버린 것은 시장에서 노력하고 경쟁해 성과를 내는 기업의 기본 동력, 그 건강한 에너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