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악화에 다급한 검찰, 긴급체포 하루 만에 구속 ‘속전속결’뇌물죄 ‘준 사람’, ‘받은 사람’ 모두 처벌..검찰, 피해여성은 불기소 대법원 판례도 없어..법원 판단에 따라 검찰 신뢰회복 판가름
  • ▲ '사면초가, 위기의 검찰' 여성 피의자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전모 검사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이 진행중인 26일 오후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한 직원이 밖으로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사면초가, 위기의 검찰' 여성 피의자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전모 검사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이 진행중인 26일 오후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한 직원이 밖으로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청 사무실과 모텔에서 40대 여성 피의자와 성관계를 맺은 ‘성추문 검사’에게 검찰이 ‘뇌물죄’를 적용하자 법조계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성관계를 직무와 관련된 일종의 ‘향응’으로 보면 (뇌물)수뢰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더 많지만, 사건의 조기 수습을 원한 검찰이 무리수를 뒀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서는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51) 사건으로 수세에 몰린 검찰에게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악의 경우 이번 사건이 경찰에게 수사권을 내 주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마저 나오고 있다.

    ‘성추문 검사’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감찰본부는 24일 여성 피의자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은 전모(30) 검사를 소환조사한 뒤, 전격적으로 긴급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대검은 전 검사를 긴급체포한 지 하루 만에 수뢰죄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감찰본부의 이같은 결정은 윗선의 의중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 19일 구속된 김광준 검사의 금품수수 사건으로 ‘제 식구 감싸기’라는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검찰이,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해 전 검사에 대한 구속수사를 기정사실화했다는 추측이다.

    여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검찰 수뇌부가 사건을 길게 끌고 갈 경우 일어날 수 있는 후폭풍을 미연에 차단키 위해 처음부터 강수를 뒀다는 것이다.

    전 검사 감찰에 나선 대검은 처음부터 구속의사를 강하게 내비쳤다.

    처음 검찰은 전 검사에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강간죄’ 적용을 적극 검토했다. 그러나 전 검사와 피해 여성(43)이 둘 사의의 성관계를 민형사상 문제 삼지 않기로 합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시도는 무산됐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강간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로 이미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이상 적용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전 검사에 대한 검찰의 구속시도는 눈에 띄게 ‘집요’했다.

    첫 시도가 실패한 뒤 검찰은 두 번째 카드로 직권남용죄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여의치 않았다.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직위를 이용해서 ‘의무가 아닌 일’을 해야 하는데 둘 사이의 ‘성관계’를 ‘의무가 아닌 일’로 보기에는 두 사람의 진술이 엇갈려 무리가 있었다.

    검찰이 세 번째로 선택한 것이 바로 ‘수뢰죄’.

    이 경우에도 성관계를 수뢰죄의 구성요건 중 하나인 ‘향응’으로 불수 있느냐에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미련없이 ‘뇌물수수죄’를 적용했다.

    전 검사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직무와 관련된 향응’을 받았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전 검사에 대한 검찰의 구속기소는 이렇게 세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 악화된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한 검찰이 전 검사의 구속을 얼마나 바랬는지를 보여준다.

    이미 김광준 검사 사건으로 된서리를 맞은 검찰로서는 자칫 잘못하면 경찰에게 ‘수사권’을 내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검찰은 무리수라는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 검사 사건을 빠른 시간 안에 마무리하는데는 성공했다. 무엇보다 신병을 확보해 언론의 관심을 차단했다는 점도 적지 않은 소득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검찰이 성관계를 직무연관성이 있는 ‘향응’으로 봐 수뢰죄를 적용했지만 정작 이에 대한 판례가 전무하다.

    현재까지 수사주체가 수사와 관련해 선처해 주는 대가로 피의자와 성관계를 맺은 경우 이를 향응으로 봐 수뢰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례가 없다.

    뇌물을 준 자와 받은 자를 같이 처벌하는 뇌물죄의 특성상 수뢰죄 적용이 어렵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실제 뇌물죄는 뇌물공여자와 수수(收受)자를 모두 처벌하는 ‘대향범(對向犯)’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하급심 법원에서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2010년 창원지방법원은 수사편의 제공을 목적으로 경찰이 여성 피의자와 성관계를 맺은 사건에 대해 직무관련성을 인정, 유죄를 판결한 사례가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법원의 반응은 일단 검찰의 수뢰죄 적용에 긍정적이다.

    사안의 성격상 수뢰죄를 적용하지 않고서는 달리 처벌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직권남용죄 적용을 포기한 검찰의 판단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분위기다.

    성관계 자체를 뇌물의 일종인 ‘향응’으로 볼 수 있다는 적극적인 의견을 내놓는 법관들이 적지 않다. 한 마디로 검찰의 수뢰죄 적용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모두 긍정적인 건 아니다. 검찰의 수뢰죄 적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법관들도 있다.

    무엇보다 성관계를 향응으로 보는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가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뇌물공여자와 수수자를 모두 처벌하는 것이 원칙인 대향범의 특성을 이유로 뇌물죄 적용이 무리라는 해석도 나온다.

    때문에 검찰이 피해 여성의 ‘뇌물 공여 의사’를 밝혀내는데 실패한다면 무죄가 선고될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강압에 의한 뇌물 공여’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펼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전체를 패닉상태로 몰아넣은 희대의 ‘검사 성추문 사건’은 이제 사법부로 넘어갔다. 남은 것은 법원의 판단이다. 그 결과에 따라서 검찰의 신뢰회복 여부도 판가름 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