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언론플레이, 중수부장 항명, 검사들 총장에 ‘下野’ 요구 조폭에게 돈 받고, 피의자와 성관계, 언론엔 ‘꼼수’개혁은 뒷전, 방향도 못 잡아..‘중수부 폐지’ 놓고 ‘檢亂’ 가능성까지
  •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29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민원실 앞에 설치된 조형물에 비친 대검 청사의 모습.ⓒ 연합뉴스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29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민원실 앞에 설치된 조형물에 비친 대검 청사의 모습.ⓒ 연합뉴스


    원인은 검찰의 오만과 독선이었다.
    법조 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검찰 항명 파동이 결국 총장 사퇴를 불렀다.

    그러나 총장이 사퇴하는 것은 시작일 뿐, 파동의 밑바탕에 있는 검찰개혁방안은 논의의 방향조차 잡지 못한 채, 진정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유진그룹과 조폭 조희팔로부터 수년간 억대의 금품을 상납받은 부장검사, 비뚤어진 환상에 사로잡힌 얼치기 초짜 검사의 피의자 성추문, 현직 검사의 여론 무마용 ‘검찰개혁 코스프레’..

    검찰은 어이없는 법률 적용으로 성추문 검사의 영장기각을 자초했고, 당황한 대검 감찰본부는 검찰개혁 언론플레이 파문에 휩싸인 윤대해 검사의 감찰에 착수하면서 화제를 돌리려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검찰이 창설 이래 최대 위기를 맞으며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황에서, 검찰의 수장과 대검 중수부장은 공개적으로 얼굴을 붉히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한상대 검찰총장(53·연수원 13기)은 이례적으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사실을 언론에 흘렸고, 최재경 중수부장(50·연수원 17기)은 대놓고 총장에게 항명하는 하극상을 연출했다.

    중수부장에 대한 ‘공개감찰’을 총장의 치졸한 복수극으로 판단한 일선 검사들은 들끓었다. 결국 대검 부장(검사장급)들이 집단으로 한상대 총장의 사퇴를 ‘건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대검 과장(부장검사급) 이상 중견간부들은 29일 정오로 한 총장의 사퇴시한을 못박았다.  

    정부 부처에서 직원들이 그 수장에게 날짜와 시간까지 지정해 사퇴를 요구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망신을 당한 한 총장은 “너희부터 나가라”며 거세게 반발했으나 생명과도 같았던 권위를 잃은 그가 택할 수 있는 길을 사퇴뿐이었다.

    '검사 동일체 원칙'에서 비롯된 특유의 상명하복 분위기 속에서 철옹성 같았던 검찰의 권위는 너무나 어이없이 땅에 떨어졌다.

    나아갈 방향도, 답도 잃은 검찰은 최대 현안이었던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 다툼이 오히려 뒤로 밀릴 만큼 심각한 위기에 놓였다.

    당장 검찰개혁위원회 구성,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기소배심제 도입 여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비처) 설립, 상설 특임검사제 운영 등 시급히 방향을 정해야 할 현안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스스로 이 위기를 헤쳐 나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기에는 일이 너무 꼬였다.

    대통령이 검찰의 수습과 개혁방안 마련을 검찰이 아닌 법무부장관에게 지시한 것은, 이미 검찰이 스스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음을 보여준다.


    # 조직 장악력 상실한 한 총장, 결국 사퇴..검찰 수뇌부 사퇴 여부도 관심

    29일 오전 채동욱 대검 차장검사(53, 연수원 14기)를 비롯한 대검 부장검사(감사장) 전원은 한상대 총장을 찾아가 퇴진을 건의했다.

    검사장급들이 집단으로 총장의 퇴진을 요구한 가운데 대검 기획관 및 단장, 과장(부장감사급) 등 중견간부들도 일제히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한 총장이 이날 정오까지 사퇴의사를 밝히지 않는다면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들까지 단체행동에 나설 것이라며 한 총장을 강하게 압박했다.

    이 과정에서 한 총장은 퇴진을 건의하는 채동욱 대검차장 등에게 “너희부터 나가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으나 결국, 부하 검사들이 정한 시한을 한 시간쯤 넘겨 사퇴의사를 밝혔다.

    “한 총장은 내일 개혁안을 발표한 뒤 신임을 묻기 위해 사표를 제출할 예정”
     - 대검찰청 관계자

    한 총장이 사퇴하기로 하면서 검찰 수뇌부 및 검사장급 고위직들의 줄 사퇴 여부에도 눈길이 쏠린다.

    총장과의 공개적 마찰로 체면을 구긴 검찰 고위직들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동반사퇴를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미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50·연수원 15기)은 29일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검찰관계자에 따르면 사퇴소식을 들은 검사들이 그의 퇴진을 말리고 있지만, 최 지검장은 “나도 죄인”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총장, 중수부장 ‘중수부 폐지’ 놓고 낯 뜨거운 드잡이..일선 검사들, 한 총장에 집단 반발

    한 총장이 물러나기로 방향을 잡으면서 같은 날 예정된 검찰개혁방안 발표가 이번 사태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한 총장의 사퇴로 발표 자체가 연기될 것이란 관측도 나왔지만, 개혁안 발표는 예정대로 열린다.

    복수의 대검 관계자들은 한 총장이 검찰개혁방안을 발표한 뒤 사퇴의사를 밝힐 것이라고 확인했다.

    개혁안 발표는 30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에서 있을 예정이며, 중앙수사부 폐지, 기소배심제 도입, 상설 특임검사제 도입, 공비처 도입 등 그 동안 법조계 안팎에서 나온 개혁방안들에 대한 검토결과가 모두 담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수부 폐지, 공비처 도입 등은 검찰 내부의 반발이 강해 이들 방안이 발표에 포함될 경우,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 이번 검찰 항명의 발단은 한 총장과 최재경 중수부장 사이의 갈등이 시발점이었다. 한 총장은 중수부 폐지를 검찰개혁안의 핵심으로 내세웠으나 이를 강력 반대한 최 중수부장과 정면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한 총장이 최 중수부장의 ‘비리’의혹과 감찰사실을 이례적으로 언론에 알리면서, 검찰 간부들의 집단 항명을 초래했다.

    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보도가 나온 28일 밤부터 검찰 주변에서는 노골적인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총장이 치졸한 언론플레이를 한다. 중수부 폐지를 반대해 온 최 중수부장을 희생양 삼아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

    “총장이 ‘보복감찰’을 한다”

    “중수부장에 대한 공개감찰은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으로 낙인찍기 위한 흠집내기용에 불과하다”

    검사들의 항명으로 조직 장악력을 상실한 한 총장의 사퇴는 확정적이다.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청와대의 부담도 상당하지만, 검찰의 특성상 지도력을 잃어버린 수장을 자리에 계속 둘 수는 없기 때문에 이 대통령도 사표를 수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중수부 폐지’ 놓고 깊어지는 내홍, 일부선 ‘검란(檢亂)’ 가능성까지 점쳐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내일 있을 한 총장의 개혁안에는 원안대로 ‘중수부 폐지’ 카드가 담겨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 경우 대검을 비롯한 검찰의 집단 반발은 예정된 수순이다.

    당장 논란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대검 중수부 과장 검사들은 중수부 폐지가 개혁안에 포함될 경우 단체로 사표를 내겠다며 배수진을 치고 있다.

    그러나 한 총장은 지난 22일 있었던 전국 고검장회동에서도 중수부 폐지를 강하게 시사했다.

    “대검 중수부 폐지를 포함해 그동안 나온 검찰개혁 방안을 원점서 재검토 할 것”

    따라서 이미 퇴진의사까지 밝힌 한 총장이 그 동안 추진했던 중수부 폐지를 어떤 식으로든 관철시키려 할 것이라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한편에선 한 총장이 중수부 폐지를 개혁안에 포함시키더라도 실효성은 불투명하다는 분석도 있다.

    한 총장이 퇴진과정에서 검사들의 마음을 잃으면서, 그나마 중수부 폐지에 긍정적이었던 검사들까지 ‘폐지 반대’로 급격하게 기울고 있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권재진 법무장관이나 후임 총장 역시 상당수 일선 검사들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중수부 폐지’를 쉽게 확정하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