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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전쟁] 개인의 공간 vs 국민의 공간, 독립기념관의 모호한 정체성

개인적 '호불호'로 독립운동사 '가위질'한 독립기념관도노반과 악수한 김구만 소개‥ 한미동맹 주역은 빠져'팥소 빠진 찐방'‥ 한미수교 14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성채린 연세대 정치학과 석사과정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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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2-09-14 15:26 수정 2022-09-14 15:26

▲ '미국과 함께한 독립운동'에 전시된 김구와 도노반의 사진. ⓒ뉴데일리

개인은 국민과 구분된다. 개인의 자유는 국민의 의무 앞에 제한된다. 이는 개인과 국민을 대하는 기관에도 적용된다. 국가기관의 이름을 내세웠다면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한미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기획전 <미국과 함께한 독립운동>이 독립기념관에서 열렸다. 1945년 미국 OSS(전략사무국, CIA 전신)와 한국광복군의 합작 관련 자료가 전시됐다.

위의 그림은 OSS의 도노반 소장과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이 만난 사진이다. 이외에도 한국광복군의 이범석, 냅코작전에 참가한 장석윤 등이 소개됐으나, OSS 특수부대 추진에 앞장섰으며 한미동맹의 주역이었던 한 인물의 기록은 없었다.

'그'는 1907년 조지 워싱턴 학사 과정을 수료한 뒤, 하버드 석사·프린스턴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무너져가는 조선에서 나온, 동아시아 최초의 국제법 박사였다. 당시 프린스턴대 총장이자, 후일 28대 미국 대통령이 되는 윌슨과 절친했던 그는, 1919년 미국 워싱턴에 ‘구미위원부’를 설립한다. 구미위원부는 임시정부를 대표해 미국·영국에서 외교활동을 전개했으며, 재미 한인으로부터 독립 자금을 모금했다.

OSS는 COI(정보조정국)에서 출발 됐는데, 그는 COI에 한인 특수부대를 창설할 것을 요청한다. 특히 미국 인맥을 활용해 OSS의 책임자 도노반과 가까워진 그는, 1941년 9월부터 열린 COI 회의에 직접 참석했다.

이번 전시가 한미수교 140주년을 기리기 위함이라면, 그에 대한 소개가 더욱 필요하다.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인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다. 조선의 평화를 미국이 지켜주리라 기대한 조약 뒤에서 일본은 조선을,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는다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이뤄졌다. 국제정세에 까막눈이던 조선은 비극적인 조약을 환영했다. 진실로 비극이었다.

1953년, 폐허가 된 한반도 재건을 미국이 지원하며, 상대국이 침략받을 시 도와준다는 내용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다. 강대국 미국을 최빈국 한국이 어떻게 도울 수 있었겠는가. 동등한 위치에서 체결된 조약의 성사는 '그'의 외교력 덕분이었다. 1953년 이전까지 끝없는 침략에 시달리던 한반도는, 한미동맹 이후 평화를 누린다.

OSS와의 합작, 한미동맹. 특별전시가 기념하는 모든 역사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그러나 독립기념관에는 그가 없다. 그의 이름이 이승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눈살이 찌푸려진다면, 이승만을 향한 개인적 감정 때문이리라. 독립기념관은 국민을 위해야 하는, 국가보훈처 산하의 국가기관이다. 역사 자료를 ‘국민’에게 제공할 책무가 있다.
 
<미국과 함께한 독립운동> 전시에 이승만을 없앤 이유는 무엇인가. 김구는 도노반과 함께 사진을 찍었기에 전시했다면, 도노반과 함께 논의한 이승만을 제외한 의도가 궁금하다. 독립기념관이 몇몇 개인을 위한 기관임을 알려주기 위함인가. 그렇다면 국가기관으로서의 자격은 없다. 단지 개인을 위한 사적 전시관일 뿐.
 
그의 이름을 말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독립기념관은 이승만을 향한 개인의 선호 앞에, 국민에 역사 교육을 제공할 책무를 저버렸다. 그가 이승만일 때, 역사에서 지워져야 하는 특별전시를 보며 답답했다. 국민으로 찾아간 전시관에서 개인의 선호가 느껴진 탓은 내가 개인이기 때문인가, 국민이기 때문인가. 이런 혼란을 준 독립기념관의 답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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