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400원대 장기화 속 정책 방향성 부재중앙은행 역할은 해설이 아닌 결정과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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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후반에서 장기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은행의 대응은 여전히 설명에 머물러 있다. 환율 상승의 배경과 구조에 대한 진단은 꾸준히 제시되지만, 그 진단 이후 어떤 정책적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는 분명하지 않다. 시장에서 한국은행을 두고 ‘남대문 사찰(寺)’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다. 설법은 끊이지 않지만 결정적 순간에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행보는 비교적 선명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를 3.75%까지 인하하며 실질금리를 중립 수준으로 되돌리는 국면에 들어섰다. 일본은행은 반대로 기준금리를 0.75%까지 인상하며 초저금리 정상화에 나섰다. 방향은 다르지만, 장기간 유지해 온 정책 기조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 아래 정책 전환을 선택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반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2.5%를 유지한 채 동결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금리는 0% 안팎으로 계산된다. 과거 한국은행과 학계에서 중립금리의 참고선으로 언급돼 온 실질 기준 약 1%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한국은행은 인상이나 인하 어느 쪽에도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금리를 내리기에는 환율이 부담이고, 올리기에는 경기가 부담이라는 설명이 반복될 뿐이다.

    환율에 대한 인식 역시 큰 변화는 없다. 한국은행은 원·달러 환율 상승 요인으로 해외 주식투자 확대에 따른 달러 수요 증가, 한미 금리차, 엔달러 환율과의 동조화 현상을 지속적으로 언급해 왔다. 팬데믹 이후 해외 증권투자가 구조적으로 증가한 것도 사실이고, 글로벌 달러 강세 국면에서 원화가 영향을 받은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이 같은 요인들은 최근에 새로 등장한 변수가 아니라 수년째 이어져 온 구조적 흐름이다. 문제는 그 기간 동안 중앙은행이 무엇을 했느냐는 점이다.

    통화량을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유동성 과잉이 환율 상승의 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한국의 광의통화(M2) 증가율은 과거 고점 대비 낮아진 상태다. GDP 대비 통화량 비중 역시 팬데믹 이후 급증했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은행 스스로도 유동성 책임론에 선을 긋고 있다. 그렇다면 진단을 넘어 어떤 정책 수단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상황을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위험을 사전에 인식하고 정책 수단을 통해 완화하는 것이 본래 기능이다. 최근 한국은행을 향한 비판은 정책 실패라기보다 정책 선택이 보이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설명은 축적됐지만 이론적 해설 속에서 신중한 태도만 반복되며 결정은 유보됐고, 그 결과 한은은 금리를 내리지도 올리지도 못하는 막다른 지점으로 몰리며 통화정책 실기론이 되풀이 제기되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모습은 이창용 총재가 후보 시절 그렸던 한은의 청사진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이 총재는 2022년 총재 후보 당시 "한국은행을 우리 경제를 가장 잘 아는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한은의 진단과 분석, 연구는 한층 정교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시간이 흐른 지금, 중앙은행이 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작 정책 주체로서의 선택과 책임은 충분히 드러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의 신뢰는 해설이 아니라 결정에서 나온다. 금리든 환율이든, 선택의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 중앙은행의 본래 역할이다. 이창용 총재 체제의 한은이 '절간'이라는 평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장을 설명하는 기관을 넘어 방향을 제시하는 정책 주체임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