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서재필의 외롭고도 슬픈 '조국재건' 독립운동사태평양 건너 미국서 독립선언…무형(無形)의 조국 그려역사적 사실 다루는 독립기념관, '두 거인'의 흔적 지워'독립기념관'이 기리고픈 '독립정신'은 과연 무엇인가?
  • ▲ 독립기념관 제3전시관 내 필라델피아 한인대회를 소개한 공간이다. 이승만·서재필 관련 자료는 나와 있지 않다. 우측 상단에 있는 영상에서 이승만은 삭제됐다. 공간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뉴데일리
    ▲ 독립기념관 제3전시관 내 필라델피아 한인대회를 소개한 공간이다. 이승만·서재필 관련 자료는 나와 있지 않다. 우측 상단에 있는 영상에서 이승만은 삭제됐다. 공간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뉴데일리
    1592년 4월, 이순신 장군이 승리로 이끈 한산도대첩이 일어났다. 이를 다룬 <한산:용의 출현>이 지난 7월 개봉했다. 영화를 본 우리는 “벅차다”, “위대하다”라며 역사에 영광을 돌린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벅찬 이유는, 슬프기 때문이다. 오천 년 동안 997번의 침략을 받은 국가의 ‘독립’을 향한 투쟁은 장대한 슬픔이다.

    한산도대첩 발발로부터 327년이 흐른 1919년 4월, 사라진 조국을 재건하려는 운동이 일어난다. 지금까지의 독립과는 달랐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한반도는 일제의 땅이 되었다. 지켜낼 조국이 사라진 상태. 망국의 슬픔을 진 이들은 또 다른 독립을 위해 싸웠다.

    1919년 한반도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3·1운동에 힘입어, 4월 11일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수립된다.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이었다. 재미 한인 독립운동의 구심점으로써 ‘대한인국민회’를 이끌던 이승만은, 3·1운동 소식을 듣자마자 서재필과 함께 필라델피아 한인대회를 계획한다. 태평양 건너의 미국에서 무형(無形)의 조국은 계속해서 그려져 갔다.

    1919년 4월, 필라델피아의 리틀 극장(Little Theater)에서 ‘제1차 한인회의(The First Korean Congress)’가 개최된다. 120여 명의 한인 및 미국인 저명인사를 포함해 약 150명이 참석한 회의였다. 이들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근본으로 하는 미국 정부와 국민, 그리고 파리 강화회의·일본 지식인·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내는 5개 결의안을 채택하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독립이라는 단어가 주는 외로움처럼, 크나큰 미국에서 아주 작은 한반도를 되찾고자 외친 결의문은 슬펐다. 회의 마지막 날, 망국의 국기를 들고 리틀 극장에서 미국 독립기념관까지 벌인 시가행진에, 필라델피아 시장은 경찰 기마대 및 군악대를 파견한다. 이는 미국 내 독립운동 조직의 확장은 물론, 재미 한인들의 재정 모금 운동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장대하다. 외롭고도 슬픈 조국 재건의 독립운동은 중국·러시아·미국 등에서 일어났다. 볼 수 없는 조국을, 오직 독립의 정신 하나만으로 그려냈다. 그 시간은 무려 1948년까지 지속됐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 독립정신, 이를 기리고자 1987년 <독립기념관>이 건립된다.

    독립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1919년의 역사는 ‘겨레의 함성’이라 명명된 제3전시관에 있다. 3·1운동은 물론 만주·연해주·미주에서의 독립운동이 전시돼 있으나, 필라델피아 한인대회 자료에 이승만과 서재필의 이름은 없다.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담아 미국과 일본에 보낸 결의문 내용 또한 없다. 영상 자료에 이승만의 모습은 편집돼있다.

    이승만과 서재필의 독립정신이 잘못된 걸까.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위해 1919년 미국에서 목숨 걸고 싸웠단 말인가. 이승만과 서재필이 전시됐어야 할 공간은 비어있다. 빈 공간은 다양한 잔상을 남긴다. 정치란 무엇이며, 역사적 인물에 대한 가부(可否)는 대체 무엇이기에, 정치적 감정을 배제해야 할 독립기념관이 두 사람을 지웠는가.

    이승만과 서재필의 독립은 잃어버린 한반도를 향한 정신이었다. 그들의 독립은 만주·연해주 내 독립운동가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삶이 정치라지만 '독립사'를 기리는 기념관만큼은, 판단이 아닌 사실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독립된 조국에서 여전히 배척돼야 하는 몇몇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비루한 몇 글자를 남겨봤다. 그래서 이 글은 슬픈 글이다. 여전히 빈 공간에서 무형(無形)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이승만과 서재필의 독립정신을 기리며, 독립기념관이 기리는 독립정신의 의미는 무엇인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