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의혹' 취재·보도하다 정정보도 늘어나면 '비윤리적' 언론사?
  • 친정부 성향의 한 미디어전문지 홈페이지에 올라온 기사 목록을 훑다 한 곳에 눈길이 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사회적 책임’ 지표를 강화해 윤리적인 매체에 지원을 늘린다는 요지의 기사였다.

    기사 설명에 의하면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부터 정부 광고 집행 기준에 사회적 책임 지표를 추가한 가운데 윤리적 언론사에 ‘이익’이 있어야 언론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을 반영한 흐름”이라며 언론재단이 올해 언론지원사업 심사에서 전년보다 ‘사회적 책임’ 지표를 더 많이 반영한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ABC 협회에 가입돼 있으면 1점 가점, 선거법 위반 이력이 있으면 건당 마이너스 1점, 언론중재위원회 정정 보도 건수에 따라 최대 마이너스 5점을 받고 자율심의 참여, 결과에 따라 최대 5점의 가점을 받았다고 한다. 올해부터는 ABC협회 가입 가점은 삭제하고 자율심의 참여, 결과에 따른 가점을 기존의 2배인 10점으로 느렸다.

    또 편집위원회 및 독자위원회 설치‧운영시 각 1점의 가점을 주도록 추가했고 언론중재위원회의 시정 권고 건수에 따라 최대 마이너스 5점을 줄 수 있도록 추가했다. 예컨대 전년도 시정 권고 건수가 1건이면 마이너스 1점, 5건 이상이면 마이너스 5점을 받는 식이라고 한다.

    언론재단이 윤리적 언론사 지원 근거로 ‘사회적 책임’을 삼는다면 그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은 뭘 말하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기사에 의하면 언중위의 정정 보도 건수를 사업 심사에 포함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정정 보도를 많이 할수록 마이너스 점수를 받게 되어 해당 언론사는 불이익을 받도록 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노력은 가상하지만 한심한 짓거리라는 게 필자의 솔직한 소감이다. 불필요한 규제를 자꾸 만들어내는 것으로 자기들 권한만 강화하는 공무원 사회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얘기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신문 등 올드 미디어가 시대에 맞게 변화 발전하도록 기존의 신문발전위원회, 한국언론재단, 신문유통원을 통합해 2009년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이다. 요컨대 신문과 신문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다.

    다른 문제는 차치하고 이 지면에서는 언중위가 윤리적 매체에 지원을 늘리겠다는 점만 따져 보도록 하자. 일단 윤리적 매체라면 언론윤리를 준수하는 매체일 것이다. 언론윤리란 사실을 가려 진실을 보도하고 투명하고 책임있게 보도하며 인권을 존중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차기 유력 후보 중 한 사람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간단하게 예를 들어 보자. 언론사들이 이 후보에 제기된 대장동 게이트를 치열하게 추적해 보도하고 있다. 보도를 많이 할수록 이 후보 측에 의해 언중위 제소와 검찰 고발을 당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자연스레 정정 반론 보도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악용 가능성만 농후

    실제로도 이 후보 비리 의혹을 많이 보도하는 언론들이 고소고발을 많이 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이 후보 대장동 게이트 비리 의혹을 열심히 보도하다가 고소고발 당하고 언중위 제소를 당하는 언론사들은 사회적 책임을 지는 윤리적인 매체인가 아니면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는 비윤리적인 매체인가.

    언론의 책임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비판대상으로부터의 고소고발과 언중위 제소는 어쩌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언론진흥재단은 정정 보도를 많이 안 할수록 윤리적인 매체임을 증명하는 것처럼 심사 기준을 잡았는데, 그런 평가는 과연 합당한가. 언론사가 매번 한 치의 오류 없이 정확하게 사실만을 보도하면 얼마나 좋겠냐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팩트 체크를 열심히 해도 문구 하나, 글자 하나만으로도 꼬투리를 잡혀 언론중재위원회로부터 정정, 반론 보도를 받는 게 현재의 언론 현실이다.

    이걸 모르지 않을 언론진흥재단이 언중위의 정정 보도 건수를 윤리적 매체인지 아닌지 심사 지표로 삼겠다는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 만일 마땅히 정정 보도를 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고 버티는 언론사가 있다면 그 매체는 그럼 정정 보도 건수가 늘지 않았으니 ‘더 윤리적인 매체’라도 된다는 말인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현 이사장인 표완수 씨는 경향신문, 시사인, 경인방송, YTN 사장 등을 두루 거친 대표적인 언론계 인사 출신이다. 그런 인물이 이사장으로 있는, 특히나 언론윤리를 어느 곳보다 잘 알고 있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언론의 윤리성을 평가할 잣대로 엉뚱한 건수를 잡아 점수를 매기겠다고 나서니 황당하다 못해 한심할 지경이다.

    또 언론진흥재단이 올해 윤리적 매체임을 증명하는 ‘사회적 책임’ 기준으로 삼은 ABC 협회 가입 여부나 자율심의 참여 여부도 정치적 꼼수가 엿보이는 항목들이다. 미디어 권력을 쥔 현 친정부 세력이 예컨대 ABC협회 유가부수 조작 논란으로 조선일보를 타깃으로 삼았던 사례만 떠올려도 충분히 의심할만하다.

    필자의 결론은 간단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윤리적 매체에 더 지원하겠다는 계획 자체를 폐기하라는 것이다. 언론진흥재단은 언론의 윤리성을 재단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 ‘내 편 언론 챙기기’라는 정치적 악용 가능성만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