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원~고성 택시로 이동” 주장… 김정은 생일날 방송보고 “왜 장군님 욕하나” 발끈민간인 없는 민통선 지역 골라 월북… "대공용의점 없다" 군 발표에도 석연치 않은 점 잇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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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밤 육군 22사단 경계지역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한 탈북자를 두고 군 당국은 3일 “대공용의점이 없다”고 단정했다. “청소부로 일하고 있어 고급정보에 접근할 수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월북 탈북자를 둘러싸고 나오는 말에는 석연치 않은 내용이 적지 않다.
- ▲ 평양 시내에서 택시를 타려는 시민. 북한에도 택시가 다니지만 운행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나원 동기들 “사리원서 택시타고 강원도 고성으로 이동했다 주장”
월북한 탈북자는 1993년생인 김 모 씨(30세)로 확인됐다. 그는 2020년 11월 초 육군 22사단 경계지역의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철책을 맨몸으로 뛰어 넘어 귀순했다. 철책을 뛰어 넘은 뒤 바로 귀순하지 않고 민통선 내에 숨어 있다 14시간 30분만에 발견된 뒤 귀순했다.
김 씨는 같은 달 탈북자 사회적응훈련기관인 하나원에 입소했다. 탈북사회 소식통에 따르면, 김 씨가 입소할 당시에는 탈북자가 매우 적어 그를 포함해 4명이 교육을 받았다. 여기서 김 씨는 다른 탈북자들에게 “2020년 10월 말 황해북도 사리원에서 택시를 타고 강원도 고성까지 이동했다”고 주장했다. 고성군에 도착한 뒤 비무장지대(DMZ)까지 걸어가 철책을 넘어 귀순했다는 게 김 씨 주장이었다.
이와 관련해 “북한에도 택시가 있으니 가능할 것”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의견을 내놨다. 북한인민해방전선 최정훈 대표는 “돈만 많이 준다면 북한 택시도 황해북도에서 강원도까지 이동은 가능하겠지만 보통 사람에게 과연 그럴 돈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2006년 탈북한 최정훈 대표는 “최근 소식을 들으면 북한 택시 중 돈만 많이 주면 10호 초소(보위성에서 관리하는 지자체 경계선의 감시초소)를 우회해서 이동하는 택시가 있기는 하다”면서도 “하지만 거기에 드는 돈이 일반적인 북한 주민들에게는 너무 큰 돈”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에서 택시로 사리원에서 고성군까지 가려면 미화 250달러, 북한 돈으로 160만 원이 필요하다고 최 대표는 추산했다. 이를 지난해 11월 북한 장마당에서의 쌀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380킬로그램이다. 북한 장마당에서 웬만큼 장사가 잘 되는 사람도 벌기 힘든 돈이다. 계부의 상습 폭행 탓에 크게 싸우고 탈북했다는 청년에게는 매우 큰돈이라고 최 대표는 지적했다.
하나원 동료들 “지난해 1월 김정은 비판하는 남한방송 보고 화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김 씨는 하나원에서도 이상했다. 그와 하나원 생활을 같이 했던 사람들에 따르면, 2021년 1월 8일 한국 언론이 김정은 생일에 맞춰 그를 비판하자 “원수님 생일에 원수님 욕하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 나쁘다”면서 화를 낸 적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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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또한 하나원에서 함께 생활한 탈북자들에게 “북한에서 복싱을 하다 머리를 크게 다쳤다”는 이야기도 종종했다. 김 씨와 함께 생활했던 한 탈북민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의도적으로 정신상태가 온전하지 않은 척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 ▲ 월북한 탈북자 김 씨는 황해북도 사리원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택시를 타고 왔다고 주장했다. 직선거리로만 22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구글맵 거리측정 캡쳐.
하나원 퇴소 후 대인관계 전혀 없어…“북한 보내 달라” 국회 앞 1인 시위도
김 씨는 지난해 3월 말 하나원에서 퇴소한 뒤 노원구에 거주지를 배정 받았다. 또 지역의 한 청소용역업체에 청소부로 취업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탈북자는 물론 주변 사람들과 접촉이 전혀 없었다. 탈북자 단체나 취업지원센터도 찾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여름에는 국회 앞에서 “북한으로 보내 달라”는 1인 시위도 벌였다. 노원경찰서 담당 형사가 이를 파악한 뒤 월북 가능성을 보고했지만 상부에서는 무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정훈 대표는 “지난 10년 동안 하나원에서 탈북자들에게 ‘퇴소한 뒤 탈북자 단체와 접촉하지 말라’고 교육을 하기 때문에 탈북자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있지만 탈북자도 사람인데 주변 사람들과 전혀 교류가 없었다는 점은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월북경로, 왜 강원도 고성군 수동면 덕산리로 정했나
김 씨의 월북경로 또한 석연치 않다. 군 당국과 언론은 김 씨의 월북경로와 관련해 비무장지대(DMZ)와 GOP 철책 돌파 상황을 주로 설명했다. 그런데 그가 비무장지대로 가기 위한 경로로 강원도 고성군 수동면 덕산리를 선택한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남북으로 분단된 고성군에서 면 전체가 민간인 통제선(민통선)에 속하는 곳이 수동면이다. 농사짓는 사람도 없고 거주자도 없기 때문에 행정업무도 다른 면에서 맡는다. 이런 수동면에서 군사분계선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곳이 덕산리다. 김 씨는 이 덕산리를 월북경로로 삼았다.
군 당국의 해명도 이상하다. 민간인이 민통선 내부로 들어가려면 사전 신청과 군 검문소의 검문을 받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김 씨가 수동면에 들어설 때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군 당국은 “김 씨가 민통선에 들어선 뒤 곳곳에 있는 CCTV에 포착이 됐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이를 두고 “다들 아시다시피 민통선 내에 민간인도 살고 농사도 짓고 많은 사람들이 통행한다”고 주장했다. 민통선 내 민간인이 포착됐음에도 검문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담당 부대에서는 그가 귀순자인줄 알았다”는 답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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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청소부라 고급정보 접근하기 어려워 대공 용의점 없다”
- ▲ 경기도 연천군의 한 민통선 검문초소. 김 씨는 고성군 수동면 민통선에 들어간 뒤 어떤 제지도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군 당국은 지난 3일 설명에서 “김 씨에게 대공용의점이 없다”고 밝혔다. 국내 정착과정에서 용역업체 소속 청소부로 일했기 때문에 국가중요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일에 종사해 왔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언론을 비롯한 국민들 시선은 다르다. 군 당국은 이날 “김 씨가 군사분계선을 넘어간 뒤 북한군 3명이 그를 데려간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다만 감시 장비의 성능과 당시 상황 때문에 사람이 점보다 조금 큰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아 안내원인지 경계 병력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언론 등은 “북한군이 김 씨가 월북할 장소와 시기를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최정훈 대표는 “북한이 요즘 같은 세상에 고급정보 빼내겠다고 간첩을 직접 보내겠냐”고 되물었다. 해킹 등 사이버공격, 자생간첩 등을 통해서 적지 않은 고급정보를 빼낼 수 있는데 굳이 사람을 보내 공작을 펼치는 위험을 왜 감수하느냐는 지적이었다.
1년도 되지 않는 한국생활, 전무하다시피 한 대인관계, 귀순 당시 군사분계선 철책을 뛰어 넘고선 14시간 30분 간 민통선 내에 숨어 있다 군 병력에 발견 뒤에야 귀순한 점, 월북 경로로 귀순한 비무장지대 철책과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을 선택한 점, 북한 체제에 대한 사상적 충성심 등을 최 대표의 지적과 함께 생각하면 이상한 측면이 많다.
혹시 '검열조 공작원'?…김 씨에 대한 정보 부족하므로 판단 어려워
몇몇 군 소식통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검열조 공작원 가능성’을 제기했다. 탈북자 동지회의 설명에 따르면, ‘검열조 공작원’은 남파 간첩과 포섭된 간첩들 실태를 파악하고 지도·감독하는 임무를 맡는다. 검열 대상에는 지하조직 구축 등 남파간첩 평가 및 사업방향 지도, 변절여부 점검, 남파 및 포섭간첩의 사상 재무장, ‘슬리퍼 셀(장기매복간첩)’ 탐지 및 활성화 등이다.
한편 최정훈 대표는 “다만 저뿐만 아니라 언론들 또한 김 씨에 대한 정보가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며 “때문에 우리가 함부로 김 씨의 대공혐의점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