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상선 피격에도 군함은 왜 안 보내나천안함이 남긴 교훈, '100% 입증'의 한계이란 핵과 신정체제 vs 북핵과 독재체제이란 핵 외면, 북핵 확장억제 요구는 모순말뿐인 단계적 기여, 항행자유 지지에 그쳐트럼프의 공공재 청구서, '핵우산'까지 흔든다
  • ▲ 지난 4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일어난 한국 선박 화재 사건은 미상 비행체의 타격에서 비롯됐다고 정부가 밝혔다. 외교부는 지난 10일 이 같은 내용의 정부 합동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현장 조사단이 기록한 사진을 공개했다. 선체 하단에서 확인된 폭 5m·깊이 7m 파공. ⓒ외교부 제공
    ▲ 지난 4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일어난 한국 선박 화재 사건은 미상 비행체의 타격에서 비롯됐다고 정부가 밝혔다. 외교부는 지난 10일 이 같은 내용의 정부 합동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현장 조사단이 기록한 사진을 공개했다. 선체 하단에서 확인된 폭 5m·깊이 7m 파공. ⓒ외교부 제공
    호르무즈 해협에서 정박 중이던 한국 국적 선박 HMM 나무호가 피격된 지 약 열흘이 지났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국제법이 보장하는 통과통항권(항행의 자유)에 대한 원론적인 지지만 밝힐 뿐 자국민과 경제를 지키기 위한 실질적인 군사 조치, 즉 '군함 파견'에는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다.

    15일 외교가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는 이번 피격에 활용된 비행체와 공격 주체를 규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비행체가 드론인지 미사일인지는 "현재로서는 정말 모른다"고 밝혔다. 이어 "이란 이외에 다른 어떤 주체에 의한 공격 가능성은 아직 모르지만 상식적으로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근처에 해적이 있던 것도 아니다"라면서도 "(공격 주체가) 확인이 다 되면 응분의 외교적 공세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격 주체와 수단을 규명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다만 이를 규명하는 과정은 2010년 북한이 자행한 천안함 피격 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사건 당시에도 어뢰 폭발이라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의 조사와 물적 증거 확보, 국제 합동조사가 필요했다. 가장 결정적 증거인 어뢰 잔해를 제시한 이후에도 음모론과 정치적 공방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전직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뉴데일리에 "천안함 때도 북한이 했다는 증거가 수없이 제시됐지만 좌파 진영 일각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으며 끝까지 논란을 멈추지 않았다"며 "나무호도 '100% 입증'만 기다리다가는 아무 행동도 못 한 채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비행체 잔해가 국내로 반입돼 정밀 분석을 거친다 해도 공격 주체와 방식에 대한 과학적·법적 입증이 완결에 도달하기 쉽지 않다. 그 작업이 끝날 때까지 한국 선박과 선원이 또 다른 표적이 되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피격이 발생한 이상 항행의 자유, 자국민 보호와 경제 수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는 별도의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우선 순위는 따로 있다. 호르무즈에 갇힌 한국 선박과 선원의 안전, 봉쇄 위기 때마다 흔들리는 항행의 자유와 경제의 근간, 미국의 핵우산(대북 확장억제)에 의존하면서도 이란 핵 저지를 위한 미국의 선제 타격에 연루되지 않으려 선을 긋는 이 모순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를 해소하지 못하면 북핵 위기와 군사 도발,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향후 대만 해협 위기 같은 국면에서 한국은 동맹국인 미국으로부터 방기될 우려가 있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이란을 자극하면 외교적 역풍과 에너지·교민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과의 동맹 신뢰가 흔들리면 그 파장은 훗날 북핵 위기나 대만 해협 등 더 직접적인 안보 국면에서 훨씬 크게 돌아올 수 있다. 파병 여부가 국회 동의와 국내 여론 설득이 필요한 문제라면 바로 그 설득을 위해 정부가 어떤 전략과 로드맵을 갖고 있는지가 지금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중국 베이징의 명소 톈탄공원을 방문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톈탄공원은 명나라 영락제가 건설한 황실 제단으로 세계문화유적이기도 하다. ⓒAP/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중국 베이징의 명소 톈탄공원을 방문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톈탄공원은 명나라 영락제가 건설한 황실 제단으로 세계문화유적이기도 하다. ⓒAP/뉴시스
    특히 거래적 동맹관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 이후 한국·일본·중국·영국·프랑스를 콕 집어 군함 파견을 요구한 바 있다. 그는 지난 3월 14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이 인위적인 제약(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으로 영향받는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영국 등 여러 나라가 이 지역에 함정을 보내 완전히 무력화된 국가가 더 이상 호르무즈 해협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전쟁부) 장관도 지난 11일(현지시각) 미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하길 기대한다"며 안규백 국방부 장관에게 한국의 대(對)이란 군사작전 '에픽 퓨리'(Epic Fury·장대한 분노) 동참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적인 '에픽 퓨리' 작전은 흔들림 없는 의지로 위협에 맞서 국가 안보 이익을 수호하겠다는 확고한 헌신"이라며 "현재의 글로벌 환경에서 강력한 동맹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트럼프식 접근법은 미국이 더는 일방적으로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인식과 철저한 거래주의에 기대고 있다. 미국은 중동산 에너지 의존도가 크게 줄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직접 의존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해협을 거치는 원유와 가스에 크게 의존하는 중국·한국·일본·유럽 등 해협 개방성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나라들이 그만큼 더 큰 부담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항행의 자유와 해협 안전을 지키기 위해 미국만 피를 흘리고 예산을 투입하는 구조를 지속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란 핵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유엔과 미국은 수년간 강도 높은 제재와 외교 협상을 병행해 왔으나 중국은 제재를 우회해 이란산 원유를 계속 수입함으로써 이란이 핵 프로그램의 뼈대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줬다.

    이와 관련해 전직 안보 관료는 "미국에 있어 이란 핵 문제는 언젠가는 군사적으로 마무리해야 할 과제에 가깝다"며 "이 문제를 어정쩡하게 남겨두면 트럼프 대통령은 '끝내지 못한 전쟁'의 정치적 부담을 나중에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욕을 먹더라도 정리를 하고 가는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지금 미·중 정상회담은 넓게 보면 이란의 후견인으로 지목되는 중국을 압박하고 나중에 군사 행동을 하더라도 명분과 여건을 갖춰 두려는 준비 작업으로 볼 수 있다"며 "한국만 호르무즈에서 몸을 사리면 이란과 중국의 부담을 덜어주고 미국의 부담을 키우는 방향으로 판이 짜일 수 있다"고 짚었다.
  • ▲ 북한 김정은이 지난 2일 노동당 외곽 청년단체인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청년동맹) 제11차대회의 참가자들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조선중앙TV가 3일 보도했다. ⓒ북한 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 북한 김정은이 지난 2일 노동당 외곽 청년단체인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청년동맹) 제11차대회의 참가자들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조선중앙TV가 3일 보도했다. ⓒ북한 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결국 이란 문제와 북핵,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의 자유, 한국의 대북 확장억제는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다. 비핵국인 한국은 북핵 위협 아래에서 미국의 핵우산, 전략자산 전개, 연합 억지태세를 핵심 안보 자산으로 활용해 왔다. 미국의 시각에서 한국은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공공재의 수혜자인 만큼 미국이 다른 지역에서 추진하는 전략과 임무에도 상응하는 방식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청구서가 따라붙는다. 이에 대해 전직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이번 대이란 군사작전의 본질은 핵 억제를 둘러싼 전쟁"이라며 "여기서 우리는 한발 물러서 있으면서 북핵 억제를 위한 확장억제만 따로 더 강하게 해 달라고 하기는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신정체제, 북핵과 김씨 일가의 독재체제는 각각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핵무기는 포기하면서도 우라늄 농축권은 주권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이란의 방식은 한동안 '민수용 핵개발'을 내세웠던 북핵의 초기 행태와 유사하다"며 "이란 사태는 신정 정권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해결책이 없다. 북핵도 김 씨 일가의 독재 정권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해결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정권 구조를 고려하면 이란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호르무즈에서 한 걸음도 나서지 않는 선택은 현실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미국이 이란 핵과 북핵을 하나의 전략적 문제군으로 보는 상황에서 한국이 이란 문제에서 계속 몸을 낮출수록 북핵 국면에서 요구할 수 있는 확장억제의 강도와 명분은 그만큼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지지 표명–인력 파견–정보 공유–군사자산 지원 등 단계적 기여 방안을 언급했을 뿐 실제로 밟은 단계는 없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3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간담회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롭고 안전한 통항을 위해서 연대하려는 국제적인 여러 형태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며 "여러 단계에 군사적인 역할은 있을 수가 있겠다. 그래서 낮은 단계부터 몇 단계를 이렇게 검토하면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를 분간하고 있는 단계 정도"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근의 사태가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사태가 있든 있지 않든 우리는 해협의 자율 통항에 대해서 그 역할을 하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제법상 권리인 통과통항권에 대한 원론적인 지지를 표명하는 외교적 레토릭은 구사하면서 행동의 실체는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전직 고위 외교관은 "항행의 자유라는 국제법상 원칙을 당연한 권리로 추켜세운 것 외에 미국이 주도하는 작전 구상에 대한 공식 지지 표명도, 정보·자산 측면에서의 실질적 참여도 시작되지 않았다"며 "자국 선박 피격에도 실체를 갖춘 단계는 아직 하나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란의 책임 여부와는 별개로 호르무즈 해협은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단순한 원거리 분쟁 지역이 아니다. 항로·자원·시장이 막히면 국가가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는 반복해서 보여줬다. 일본은 1941년 미국의 대일 자산 동결과 석유 금수에 맞서 진주만 공습을 감행했고 나치 독일은 1차대전 이후 영토·자원 상실과 영·불의 해상 봉쇄 압박 속에서 동유럽 무력 팽창을 택했다. 오늘의 중국도 미국의 인도·태평양 해상 견제에 대응해 러시아산 에너지와 유라시아 육상 물류망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스스로 팽창을 선택한 일본·독일과 달리 한국은 외부의 봉쇄 앞에서 항로를 지킬 것인가, 사실상 포기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쪽이다. 그 선택의 결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선언 이후 국제 유가는 배럴당 70달러대에서 100달러 안팎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이 쏟아졌고 원·달러 환율도 1500원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불안해졌다. 쓰레기봉투와 비닐 포장재의 원료인 나프타 수급 차질 우려까지 겹치면서 호르무즈 한 곳에 걸려 있는 항로·자원·환율이 한국 경제에 어떤 충격을 줄 수 있는지 국민이 체감한 상황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 위기는 단지 중동 현안에 그치지 않고 동맹의 상호성과 신뢰를 가늠하는 시험대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이 이란 관련 안보 현안에서는 일관되게 몸을 낮추면서 북핵 문제에서는 확장억제 강화와 선제적 조치를 요구한다면 미국의 시각은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 주도의 해양자유연합(MFC)과 '프로젝트 프리덤'에 대해 한국이 반복적으로 거리를 둔다면 언젠가 북핵 대응과 확장억제 강화를 둘러싼 협상 테이블에서 그 선택에 대한 청구서를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