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무효·출국금지 따로 놀 때 선제 출국 허용두 번의 나포, 사후 구출 외교만 반복된 정부평화운동 내세운 위반 시도, 공공 복리와 충돌여행금지지역 제재·영사보호 기준 손질 불가피
  • ▲ 이스라엘군에 나포됐다가 석방된 한국인 활동가 김아현(활동명 해초)씨가 지난 23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들불상 시상식에 참여해 수상 소감을 밝히는 모습. ⓒ뉴시스
    ▲ 이스라엘군에 나포됐다가 석방된 한국인 활동가 김아현(활동명 해초)씨가 지난 23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들불상 시상식에 참여해 수상 소감을 밝히는 모습. ⓒ뉴시스
    이스라엘군에 두 차례 나포돼 구금·폭행 피해를 주장한 국내 활동가 김아현(활동명 해초) 씨가 외교부의 여권 무효화 처분 이후에도 가자지구행 구호선에 재탑승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며 행정 조치의 정당성을 확인한 뒤에도 출국을 강행했다는 점에서 여행금지 지역에 대한 실질적 출국 통제에 공백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정부는 지난 26일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제도적 보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반복되는 나포·구금 사태를 계기로 개인의 신념에 기반한 고위험 활동이 국가에 전가하는 외교적 비용을 어디까지 용인할 것이냐는 제도 논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27일 외교가에 따르면 외교부는 김 씨가 올해 1월 언론 인터뷰에서 재출국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자 지난달 초 여권 무효화 조치를 단행했다. 김 씨 측은 법원에 여권 반납 명령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냈으나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강재원 부장판사)는 이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처분의 효력을 정지할 경우 공공 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김 씨는 외교부의 여권 무효화 조치가 확정되기 전 이미 출국한 상태였다. 행정부의 제재 예고와 사법부의 기각 결정이 모두 사실상 무력화된 것이다. 김 씨는 지난 2일 이탈리아에서 가자지구를 향해 출항한 자유선단연합 소속 선박에 탑승했다.

    이번 사태는 두 가지 제도적 허점을 드러냈다. 우선 여권 무효화는 출국금지와 별개의 절차다. 여권법 제19조에 따른 반납 명령·무효화 조치가 내려져도, 법무부의 출국금지(출입국관리법 제4조) 결정이 별도로 이뤄지지 않는 한 공항 출국 심사대에서 자동으로 차단되지 않는다.

    현행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은 여권법에 따라 사용이 제한되거나 반납 명령을 받은 여권을 가진 경우 출입국관리공무원의 심사 대상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어서 심사관의 수동 확인에 의존하는 구조다. 이번 항해처럼 당사자가 무효화 처분 완료 이전에 선제 출국하거나 참가자 명단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으면 사전 통제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김 씨가 가자지구를 실제로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현행법 위반을 시도했기 때문에 정부는 앞으로도 이런 시도를 삼가도록 강력하게 권고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할 부분이 있는지는 들여다보겠다"고 덧붙였다.

    여권 재발급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조건을 달았다. 박 대변인은 "동인이 여행금지지역인 가자지구 방문을 시도하지 않을 것임이 확약되어야만 이것을 재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가 귀국 당일 "언제나 가자지구에 갈 계획이 있다"며 재방문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만큼 여권 재발급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첫 번째 나포 당시 외교부는 본부와 주이스라엘대사관을 통해 안전 확보·신속 석방·조기 귀국을 위해 총력 대응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국가 외교 역량을 최대한 투입하라"고 지시했다. 외교부는 주이스라엘대사관을 통해 석방 요청과 영사 조력 제공 방침을 공식화했다.

    이번 두 번째 나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반복됐다. 출국 통제에는 역부족이었던 정부가 나포 이후에는 이스라엘 측을 상대로 외교 총력전을 다시 가동해야 했다.

    정부는 지난 23일 주한이스라엘대사대리를 외교부로 불러 활동가 측이 주장한 구타 행위에 대한 엄중한 인식을 전달하고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외교가에서는 이를 사실상 '초치'에 가까운 조치로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고를 무시한 채 출국 뒤 위험에 처하면 국가가 외교 자원을 총동원해 구해주는 방정식이 반복될수록 유사 사례에 대한 억제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이스라엘 측은 활동가 측 주장 자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은 전날 성명을 통해 "플로틸라에 탑승했던 두 명의 한국 국민과 관련해, 이들이 귀국 후 제기한 주장과 달리, 그리고 한국 정부도 확인한 바와 같이, 이들은 구금된 사실이 없다. 두 사람은 아슈도드 항 도착 즉시 수속을 마쳤으며, 신속 절차를 통해 추방됐다"며 "이는 이들이 제기한 주장의 신빙성에 의문을 더한다"고 밝혔다. 특히 학대 주장에 대해서도 "현재까지 입증된 바 없다. 일부 참가자들은 부상자인 것처럼 연출해 들것에 실린 채 사진을 찍었으나, 이후 다른 사진에서는 건강하고 상처 없는 모습으로 확인됐다. 진정한 증거나 공식적인 불만이 있다면 관할 당국이 철저히 조사할 수 있도록 적절한 경로를 통해 제출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활동가 측은 "정부가 안보와 법치를 명분으로 여권을 실효시켜 이동권을 박탈하고 세계적 평화운동을 행정적 수단으로 탄압했다"고 주장한다. 귀국한 김 씨도 "여권 무효화돼도 이동할 권리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활동가 측 주장이 국제법적 논의와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해상 봉쇄에 대해서는 유엔 인권이사회 특별보고관들이 국제인도법 위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으며 구호 활동 자체의 인도주의적 성격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논리에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개인의 이동 자유가 보편적 권리라 할지라도 국가가 지정한 여행금지 지역에서의 보호 의무가 그 권리 행사와 자동으로 병행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이 "공공 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를 들어 집행정지를 기각한 것은 사법부가 이미 이 경계를 그은 신호다. 국가에 보호를 요구하면서 국가의 법적 경고는 무시한다는 것은 권리와 의무의 선택적 적용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이번 사태가 남긴 과제는 분명하다. 여권법상 반납 명령·무효화 조치와 출입국관리법상 출국금지를 연동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복 위반자에 대한 영사 보호 범위 제한 여부와 여행금지 지역 방문 시도에 대한 형사 처벌 기준의 명확화도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에 대해 전직 한 외교관은 "여권 무효화는 행정 처분에 불과해 법무부 출입국 시스템과 실시간으로 연동되지 않는 한 물리적 출국을 즉각 차단하기 어렵다"며 "사전 통보·정보 공유 체계가 작동하지 않으면 이번처럼 선제 출국으로 제재가 사실상 무력화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정부가 정작 자국민의 반복적 법령 위반 시도에 실질적 제재를 가하지 못하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제도의 실효성과 외교적 일관성을 동시에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는 한-이스라엘 양자 관계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은 성명에서 "이 선단들은 정당한 인도주의적 목표가 아니라, 수천 명의 이스라엘인을 학살한 테러 조직 하마스의 이익을 위한 조직적인 정치 캠페인의 일환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활동가들이 한-이스라엘 간의 우호적인 관계를 의도적으로 훼손하려는 시도에 깊은 우려를 표명해 왔으며, 이 문제는 최근 외교부에도 제기됐다"고 밝혔다.

    미국도 이번 선단을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 미국 재무장관은 이번 플로틸라를 "친테러 플로틸라"로 규정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평화 노력을 저해하려는 시도라고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이스라엘 측은 해당 플로틸라와 연관된 여러 인물들은 하마스 및 기타 테러 단체와 연계된 조직과의 활동 이력이 확인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미국은 관련 활동가 4명에 대해 이미 제재를 부과했다. 한국인 활동가의 참여가 한미 관계 맥락에서도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