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제 미사일 증거 손에 쥐고도이란을 이란이라 부르지 못한 23일천안함엔 다국적 조사 및 5·24 조치나무호엔 대사 초치·유감 표명이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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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7일 외교부가 공개한 HMM 나무호를 타격한 비행체의 제조사 카탈로그 전시용 사진(위), HMM 나무호를 타격한 비행체의 제조사 TEM 각인(아래). ⓒ외교부 제공
'이란제 미사일'이라는 증거는 공개했으나 이란이 끝까지 책임을 부인한다는 점에서 한국 국적 상선 나무호 피격 사건은 '호르무즈판 천안함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안함 사건 당시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부인에도 도발 비용을 실제로 부과했다면 나무호 사건에서 이재명 정부는 이란제 미사일임을 밝혀내고도 가해국을 명확히 특정하거나 상응하는 군사적 대응은 외면한 채 이란의 부인을 사실상 용인했다. 한국 경제의 생명줄인 호르무즈해협에서 한국 국적 선박이 이란의 대함미사일 두 발을 맞은 상황에서도 이재명 정부가 택한 것은 공개 규탄과 실질적 후속 조치 대신 '저강도 외교 대응'이었다.◆기술적 귀속만 한 채 외교적 책임 귀속은 끝내 회피 … "고의성 입증 어렵다"29일 외교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7일 브리핑을 열고 나무호를 공격한 비행체가 이란에서 개발한 누르 계열 대함미사일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이란제 터보제트 엔진 'Toloue-4', 제조사 각인, 탄두 형상, 특유의 하늘색 도색, 20~30년 전 생산된 구형 전자기판까지 분석한 결과였다. 사거리 90~100km·비행시간 6~7분이라는 기술 제원도 공개됐다.그럼에도 정부는 외교적 책임 귀속만큼은 끝까지 피했다.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호르무즈해협 통제 세력으로 이란 해군과 혁명수비대를 언급하면서도 '이란이 우리 선박을 공격했다'는 확언 대신 "여러 증거가 이란 쪽을 향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전직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전문가들이 현장 조사와 정밀 분석을 마쳤다면 발사 주체를 특정하는 것이 순서인데도 이 단계에서 외교적 귀속을 회피한다는 것은 정치적·외교적 의도가 개입된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나무호는 이란과 교전 상태에 있던 목표물이 아니었고 이란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통제선 안으로 돌입하던 선박도 아니었다. '정박 중이던 민간 화물선'이었다. 브리핑에서 류윤상 국방부 국제차장(해군 준장)은 해군 지휘관 경험을 근거로 "두 발을 쐈다는 것은 피해를 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쏜 것"이라며 "공격하려는 의도는 정확히 가지고 있었던 걸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미사일 두 발 모두 '고폭 화약'이 탑재됐다는 사실도 정밀 감식으로 확인됐다.그러나 외교부는 "고의성은 주관적 영역과 관련되므로 그쪽(공격 주체)에서 인정하지 않는 한 파악하기 어렵다"며 "정책 결정 구조 안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한 안보 전문가는 "나무호는 군함이 아닌 민간 선박이다. 이란과 어떠한 적대적 행위도 없었고 이란이 통제선이라 주장하는 구역 안에 있지도 않았다. 그런 선박을 공격했다는 것 자체가 국제법상 범죄 행위에 준한다"고 반박했다.최근 초치된 사이드 쿠제치 주한이란 대사의 반응은 이 우려를 현실로 입증했다. 쿠제치 대사는 박 차관과 40분 면담 후 취재진에게 "이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다 부인한다"며 "절대 개입한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의 조사 결과를 인정하는지, 이란 정부가 사과할 것인지 등 질문에는 "적대국들의 가짜 깃발 작전을 주의해야 한다"며 관련성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기만적 작전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을 배제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며 공격 주체가 미국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내놨다. -
- ▲ 사이드 쿠제치 주한이란대사가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HMM 선박 나무호 호르무즈해협 피격 사건 조사 결과와 관련해 초치돼 청사로 들어가는 모습. ⓒ뉴시스
◆7개국 공동성명엔 동참했지만 … 피격 이후 고위급 공개 규탄 성명 전무한국은 지난 3월 19일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하는 7개국 공동성명에 동참을 선언했다. 나무호 피격 사건 이후인 지난 14일에는 26개국 공동성명에서 "외교·경제·군사적 역량을 공동으로 활용하겠다"면서 기뢰 제거를 포함한 다국적 군사 임무 지원 의지도 천명했다.그러나 피격 23일 만에 이란을 사실상 공격 주체로 특정했음에도 대통령의 공개 성명도, 외교부 장관 명의의 규탄 성명도 없었다. 박 차관은 브리핑에서 "공격 주체를 확정해서 정부가 비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면서 "규탄의 메시지가 있는 것과 진배없다고 이해해 달라"며 소극적 대응을 합리화했다. 피격 전에 서명한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한다'는 7개국 성명에 비하면 크게 후퇴한 표현이라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이와 관련해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캄보디아나 이스라엘과 관련해 우리 국민 피해가 생기면 대통령까지 나서 강경 대응을 천명하면서 정작 자국 상선이 이란제 미사일에 피격된 이 사안에서 침묵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같은 기준과 원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상에 따라 가치와 원칙을 선별적으로 적용한다는 인식이 국제사회에 각인되면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국익 중심 실용외교'는 정교한 전략이 아닌 원칙 없는 기회주의로 읽히게 된다.◆이란 추가 공격 막는 '카드'가 아니라 '면죄부' … 전략적 모호성의 허상일각에서는 이란을 공격 주체라고 정면으로 지목·규탄하면 호르무즈해협에 여전히 발이 묶인 '한국 선박 25척'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논리로 전략적 모호성이 이란의 추가 공격을 막는 카드로 해석하는 분위기도 있다.억제력 측면에서 이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전략적 모호성이 카드로 기능하려면 상대가 '레드라인을 넘으면 큰 대가를 치른다'고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피해국이 귀속과 규탄을 유보하면 도발국은 오히려 책임을 회피할 여지를 확보하며 회색지대 전술을 펼칠 수 있다. 이란 대사가 초치 당일 "가짜 깃발 작전"을 언급하며 전면 부인에 이어 오히려 미국을 공격 주체로 시사하는 역공을 편 것은 이 패턴이 이미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모호성은 이란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는 카드가 아니라 도발의 자율성을 넓혀주는 면죄부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공격 주체가 끝까지 부인하는 상황에서 피해국마저 귀속을 유보하면 '민간 선박을 겨냥해도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선례가 굳어진다.전직 안보 관료는 "호르무즈해협에 정박 중이던 우리 선박의 귀환은 미국과 이란의 종전 합의 여부에 달려 있다. 한국이 침묵한다고 해서 우리 선박의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전시 상황에서 교전국은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피해국이 조용히 있는다고 해서 상대가 선별적으로 보호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과 거리가 먼 '낭만적 환상주의'"라고 비판했다. -
- ▲ 2015년 4월 10일 애쉬턴 카터 당시 미국 국방장관과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이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 안보공원에 마련된 천안함 선체를 둘러본 뒤 소감을 밝히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천안함 피격 때와 달리 오히려 공격 주체 도발 비용 낮춰2010년 천안함 사건 당시 이명박 정부는 미국·영국·호주·스웨덴 전문가를 참여시킨 다국적 민군 합동 조사단(JIG·합조단) 구성,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 5·24 조치까지 북한에 도발 비용을 실제로 부과했다. 당시 JIG의 출범은 단순한 증거 확보를 넘어 도발 주체를 국제사회에 외교적으로 귀속시키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었다. 북한이라는 명확한 귀속 주체가 있었음에도 북한 소행 여부가 논쟁이 되는 상황에서 다국적 조사라는 틀 자체는 귀속을 확정하는 결정적 수단이 됐다.하지만 이재명 정부는 다국적 조사단 구성이나 국제기구 회부 등 사건을 국제 이슈로 끌어올릴 카드는 꺼내지 않았다. 박 차관은 브리핑에서 "어느 국가도 우리에게 관련 피격 상황과 관련해서 협의를 요청하지 않고 있고 우리도 별도로 요청하지 않고 있다"며 "이란의 피해를 받고 있는 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정식으로 조사해 발표한 건 처음"이라고 조사 결과 발표에 의미를 부여했다. 사건을 "투명하게 밝혔다"는 자평과 그 결과를 국제적 압박으로 연결할 의지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현실 사이의 간극이 이번 대응의 핵심 한계다.◆한미동맹 연루의 딜레마, 결국 '동맹 방기 청구서'로나무호 피격 당시 청해부대는 아덴만 인근에 전개돼 있었지만 동맹국인 미국이 호르무즈해협 기여를 압박하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자유 항행 원칙에 동참 의지가 있다", "단계적 기여 방안을 검토한다"는 원론만 되풀이했다. 전직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청해부대가 인근에 전개돼 있는 만큼 우리 민간 선박이 군사 공격을 받은 상황에서 호르무즈해협 내부 진입이 아니더라도 상황에 상응하는 군사적 조치는 취해야 했다"고 비판했다.호르무즈해협에서 국제법이 보장하는 통과통항권 수호를 위한 군사적 기여를 회피한 선택은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미국의 확장억제와 핵우산이 필수인 한반도의 현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통과통항권이 보장된 국제 해협인 호르무즈해협에서 그 원칙을 끝까지 지키지 않으면 나중에 남중국해나 말라카 해협에서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무슨 발언권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우리는 북핵 억제를 위해 미국의 확장억제에 의존하면서 정작 이란 핵 문제와 관련해선 어떤 군사·외교적 기여도 하지 않는다"며 "이란 핵 보유 시도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훼손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북한을 향해서도 같은 메시지를 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한 대북 전문가도 "이란은 북한의 행태를 사실상 벤치마킹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농축도 60%의 우라늄 440kg을 보유한 이란을 방치하면 '제2의 북한'이 된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對)이란 전쟁은 명분을 갖는다"며 "이란 핵무기 문제는 언젠가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구조의 결과인데 이를 단순히 '미국의 불법 전쟁, 이란은 피해자'라는 감정적 프레임으로만 보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이란제 미사일 두 발을 맞고도 이란을 끝내 외교적으로 귀속하지도 규탄하지도 못한 이번 사건은 단순히 나무호 한 척의 문제가 아니다. 한 예비역 장성은 "이란제 미사일이라는 증거를 확보하고도 이란을 이란이라 명시적으로 지목하지 못한 채 발표를 희석한 것은 군사·외교적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대응"이라며 "동맹은 상호성에 기반할 때 지속 가능하다. 호르무즈해협에서 한국이 보여준 행동 공백과 외교적 회피의 청구서는 결국 북핵 확장억제 테이블에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