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협상과 협상학 27) "美北 상대하는 文정부, 두가지 변화 필요"
  • ▲ ⓒ뉴시스
    ▲ ⓒ뉴시스
    금주에는 교착상태의 북핵 협상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두 가지 계기가 있다. 11일 있을 한미정상회담과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이다. 우리는 이 계기를 이용해 다시 협상의 불씨를 살리겠다는 입장이다. 

    강력한 수단을 갖고 있는 상대와 협상을 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핵보유를 인정받으려는 세계적인 불량국가, 긴 설명 필요 없는 군사와 경제 세계 1위 초강대국을 상대로 협상을 하고 있다. 협상 전문가들은 이런 경우에 대해 두 가지로 조언하고 있다. 첫째는 ‘피하라’, 둘째는 ‘자신을 보호하라’이다. 후자의 경우는 피하지 못할 경우 거절했어야할 합의를 하지 않도록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라는 의미이다. 우리 정부는 북핵 위기의 직접 피해국임에도 스스로 협상의 ‘촉진자’라며 낮은 자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우선 두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미국에 대해서는 ‘의지’에 근거한 그동안의 태도를 바꿔야한다. 협상학에서는 의지에 근거한 결정에는 큰 대가가 따른다며 피하라고 조언한다. 상대와 나의 이익(Interest)에 근거하지 않고, 나의 의지에 따른 주장을 펼 경우 큰 손실이나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너무 안타까워 보인다. 4월 11일 딱 하루만 된다는 미국의 일정에 맞춰 그 먼거리를 1박2일로 다녀오는 모습부터 대등한 협상가의 모습이 아니다. 협상 시간, 장소, 의제를 디자인하라는 원칙에도 위배된다. 마치 전쟁통에 체통 다버리고 원조를 얻으러가는 사절단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가 가져갈 미국의 이익도 명확치 않아 다음 상황이 우려스럽다. 우리의 ‘이너프 딜(enough deal)’ 제안이 미국의 이익인지, 우리의 의지인지 생각해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미국은 이미 내년 대선레이스에서 트럼프 대통령부터 공화당과 민주당 주요후보에 이르기까지 경제, 멕시코 국경 등 국내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의 한반도 이해 가운데 가장 경계했던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실험은 이미 중단되어 있다. 주한미군 주둔비와 한미 FTA 재협상 등도 트럼프가 수차례 자신의 성과라고 자랑했다. 물론 미정부와 의회, 대선후보들이 관심 있어 할 한반도 ‘이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미국 내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 것들 가운데 있다. 다만 ‘이너프딜’은 그 중 하나가 아니다.

    둘째 북한에는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그간 북에 제시했던 다양한 이익, 유화책들은 사실 UN 제재와 맞물려 사실상 북에도 만족을 주지 못했다. 북한이 간절히 원하는 제재완화와 경제발전 그리고 빈틈만 보이면 말하는 민족통일전술에 대해 이제는 객관적인 원칙으로 대응해야 한다. 예외 없는 원칙은 없지만 원칙화된 협상은 상대도 내부 설득에 도움이 되는  효율적인 합의를 낳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그간 북한에 어떤 원칙을 제시했는지 되돌아보는 작업이 이제라도 먼저 진행되어야 한다. 한민족이라는 예외성을 주장하는 북에, 세계인으로서 국제적인 기준도 포함되어야 함이 보다 강조되어야 한다. 협상이라면 반드시 있어야할 주고받는 ‘상호교환성’ 아울러 인류로서 ‘인도주의’ 그리고 ‘불행한 과거에 대한 정리’ 등이 포함되어야 국내외적으로 대북협상에 대한 전체적인 동의를 얻을 수 있다. 
     
    한편 안타깝게도 우리 상대들을 다룰 외교부는 최근 여러 가지 실책으로 실무과장이 처벌받는 등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불쌍할 지경이지만 그간 청와대가 리드해온 톱다운 방식의 한계는 개선하며, 상대가 수용할 만한 이익을 찾고, 객관적인 기준도 만들어야 하는 최일선의 책임기관이기도 하다. 상대가 강한 협상 수단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협상 대안을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답답한 마음이지만 우선적인 개선점부터 해결하며 합리적인 대안들이 제시되길 희망한다.

    / 권신일 前허드슨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