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관계’ 본질은 경쟁력 위한 분업과 협력… 특정 부류 공격 수단으로 쓰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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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최근에 닥쳤던 그의 불운이 극심한 스트레스가 되어 앓고 있던 병에 악역향을 끼쳤고, 특히 최근 대한항공 이사 선임이 무산되면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 건강이 악화했다 한다. 

    나는 대기업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어서, 기업을 창업해서 대기업으로 일군 사람들이 한국 경제에 미친 공헌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간혹 이런 업적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쉽게 말하는 이도 있지만, 기업을 창업해서 대기업으로 키우는 기업가정신은 특출한 능력에 속하는 것이지 결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국의 항공산업을 세계적으로 키운 그의 공적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갑질’이란 단어가 가진 폭발성

    그의 불운이 시작된 것은 일종의 우발사건이라 할 만한 ‘갑질’ 사건이었는데, 일단 ‘갑질’이라는 용어로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기업 대주주 일가가 정부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그 후 수 개월 간 사법과 사정기관이 한진그룹을 수사하고 오너를 기소하는 사태로 번졌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갑질’이라는 단어가 폭발성을 발휘했다. 

    한국 사회에서 갑질이라는 용어는 도덕철학적으로 분석해 보아야 할 사안이다. 원래 조직이란 상하 간의 명령과 계획으로 운영되는 체제다. 그 속에서 어느 정도의 강제가 허용되는지는 조직문화의 문제이기도 하고, 그 상위 문화인 사회적 관습의 문제이기도 하다. 조직 내의 문제라 해서 한 없이 강제가 허용되는 것은 아닌 것이, 기본적으로 조직 구성원은 자신이 받은 대우가 지나치게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그 조직을 그만두고 다른 조직으로 옮길 자유가 있기 때문에 조직 내 상위자도 자신의 행동을 관습에 따라 조절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번졌던 갑질 논란은 마치 사회주의 사회가 시민들에게 고도의 도덕성을 지닌 자아를 요구하는 것과 유사하게 사회가 각 개인의 행동에 대해 틀을 정하고 통제하려는 모양이 되었다.

    대륙적 사회주의 전통과는 달리 자유주의적 전통에서는 개인의 행동을 국가가 나서서 통제하는 것을 극히 조심한다. 사람은 실수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들 간의 문제는 스스로 관습과 시장 관행을 통해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가 개인에게 어떤 행위를 금지할 때에는 법치의 원칙에 맞아야 한다. 그 법치의 범위는, 개인 간에 계약을 위반했다거나 사기, 기만으로 상대방의 자유를 훼손하는 시장 질서의 위반이 있었는지 등에 관한 것이다. 

    갑질이라는 것은 조직 내 또는 조직 간 협력관계에서의 일일 텐데, 어찌하다 보니 한국 사회에서는 조직 내 개인 간의 문제가 갑질이라는 사회적 감성을 자극하는 용어로써 이슈화 되고 더 나아가 국가의 법 집행이라는 강제력을 통해 대기업 그룹의 경영권을 무력화하는 사태로까지 번진 셈이 되었다. 

    갑질은 꼭 재벌 오너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다. 법의 잣대로 갑질을 처벌한다면 이 세상의 크고 작은 수많은 갑질을 다 찾아내어 처벌해야만 보편성이라는 법치의 원칙이 지켜지는 것이지 사회의 특정 부류에게만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근대 국가에서 정부의 역할은 국민의 안보와 자유를 지키는 일이다. 국가가 의욕이 넘쳐서 국민의 도덕성을 확립하는 역할까지 하려 든다면 자칫 전체주의의 함정으로 빠져들 수 있다. 그러므로 국가가 이런 감성적인 사안에 나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작은 경험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도 언젠가 갑질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당황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건을 통해 갑질이라는 말이 사람 간의 거래 관계를 객관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감성적 측면을 부각하고, 사람을 집단으로 나누어 다른 쪽을 공격하는 무기로 악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수기 수리 기사와의 기억

    그 경험이란 우리 집에 두어 달에 한 번씩 오는 정수기 기사와의 일이다. 그는 우리 집 부엌 싱크대에 설치된 정수기의 필터를 교환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방문하는데, 한 번은 그 사람이 일을 하고 간 후에 싱크대에 붙어 있는 식기 세척기가 작동이 안 되는 일이 발생했다. 스위치를 누르면 조금 작동하다가 곧 붉은 경고등이 켜지며 작동을 멈추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고장이려니 했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식기 세척기에 들어오는 작은 수도관이 본선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것이었다. 필시 정수기 기사가 지난번 필터 교환작업을 하다가 착오로 세척기 쪽 수도관을 단절시킨 것이었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필터 기사에게 전화를 해서 “지난 번 작업 때 식기 세척기 쪽 수도관을 단절시킨 것 같으니 와서 손을 좀 봐 달라.”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전화기 저쪽에서 펄쩍 뛰며, “내가 왜 식기 세척기 쪽을 건드렸겠나? 당신, 갑질하는 거냐?”라는 거친 대답이 돌아왔다. 

    그 때가 마침 세간에 갑질이라는 단어가 회자하던 때라, 내게는 그의 항변이 “당신 한 번 당해보고 싶은 거냐?”라는 위협으로 들렸다. 나는 화가 났지만, 갑질이라는 말에 기가 눌려서 더는 대화를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럼 이 사진을 한번 보고 판단해보라”라며 싱크대 아래의 필터 배관을 휴대폰으로 사진 찍어 보내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결 나긋나긋해진 목소리로 그 필터 기사가 곧 방문하겠다는 전화를 해 왔다. 아마도 사진을 보니 자신의 실수임을 기억하게 되었는지 더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작업을 마친 후 그는 “출장비는 얼마면 되겠습니다”라며 자신의 실수로 오게 된 일에 출장비까지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 때도 나는 속으로는 화가 났지만, 괜히 또 갑질하는 것이냐는 소리를 들을까 봐 얼른 출장비를 주어 보냈다. 이 작은 일화에서 갑질은 누가 한 것인지, 그리고 이 용어를 쓰는 의도가 무엇인지 헷갈린다. 

    사회 계층을 양분하는 분위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양한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모든 것을 ‘갑을 관계’로 보는 것은 사회를 계층으로 양분하려는 분위기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갑을 관계’라는 것들이 따지고 보면 시장 내에서 회사를 더 경쟁력 있게 만들기 위한 분업과 협력관계라는 것이 그 본질이다. 그런 분업과 협력 관계 속에서 경쟁력 있는 서비스와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그 기업이 존속, 성장하고, 그 결과 국가경제가 성장하며, 우리는 생활이 점차 개선되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만약 수많은 거래 행위 중에 시장질서를 해칠 만한 규칙 위반이 있다면 당사자 간에 사안 별로 해결하면 된다. 

    반면에 ‘갑질’이라는 용어는 어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차별적으로 싸잡아 공격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어 시장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 시장이라는 자발적 질서의 체제를 인위적으로 재단하려 할 때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 더욱이 국가 기관이 나서서 이런 감성적 문제를 법 집행이라는 형식으로 강제하게 된다면, 이는 감정이 법 위에 서는 격이어서 법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사회에서 ‘갑질’이라는 감성적 단어가 자유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좀더 면밀하게 검토되었으면 한다. 

    / 숭실사이버대학교 경영학과 문근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