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공수처·검경수사권 연계 앞세우고… 바른미래·정의당 치고받는 틈에 발 빼
  • ▲ 심상정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 심상정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선거제 개편’ 동력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패스트트랙에 얹으려던 또 다른 개혁안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연계처리를 놓고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바른미래당에 책임이 전가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점차 민주당의 ‘빅딜’ 제안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애초부터 선거제 개편 의지가 없던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확산됐다.

    선거제 개편이 사실상 좌초됐다는 게 중론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소속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선거구를 정해야 하는 법정시한은 내년 4·15총선 13개월 전인 지난달 15일까지였다. 이를 토대로 국회가 선거구를 획정해야 하는 시한은 선거 1년 전인 오는 15일까지다. 법정시한 전에 선거제 개편안이 마련됐어야 내년 총선에 적용 가능한 것이다. 법정시한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여야가 패스스트랙에 전격 합의한다고 하더라도 정개특위에서 최대 180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최대 90일, 본회의에서 최대 60일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후 비로소 본회의에 상정하는데, 최대 330일이 걸리는 셈이다. 단계별 계류시간을 줄여 총 소요기간을 단축하는 방법도 있지만, 패스트트랙에 태우기 전부터 여야 합의가 계속 불발된 점을 감안하면 이마저 녹록치 않다.

    아직도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 선거법 등 3개 개혁법안을 연계해 패스스트랙에 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바른미래당은 기소권 없는 공수처법을 제안했다.

    선거제 개혁 사실상 무산… 민주-바른미래 이견

    일차적으로 바른미래당에 책임의 화살이 쏠렸다. 여야4당(민주‧바른미래‧평화‧정의)이 선거제 개편 패스스트랙 검토에 합의한 후 가장 먼저 ‘고려’ 의사를 밝힌 게 바른미래당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심상정 정개특위원장은 지난 9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바른미래당은) 공수처법 관련해 여당의 전향적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주길 바란다”며 “100% 아니면 안 된다는 자세를 고수하면 바른미래당이 선거제 개혁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손학규 대표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불씨를 살려 여기까지 온 선거제 개혁이 바른미래당으로 인해 좌초된다면 국민들이 매우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라며 바른미래당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했다.

    바른미래가 캐스팅보터? 진짜 키는 與가 쥐어

    이후에도 바른미래당과 정의당 사이에 대립각이 조성됐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사무총장은 11일 cpbc 라디오 ‘열린 세상 오늘, 김혜영입니다’와 인터뷰를 통해 “정의당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왜 (패스트트랙) 책임을 바른미래당에 전가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반박했다.

    오 사무총장은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라며 “단순히 이 정도면 되지 않으냐는 판단 속에서 뭉뚱그려 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오 사무총장은 전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정의당은 오직 패스트트랙을 통한 선거제 개편문제를 처리하지 못해 안달이 난 모습”이라며 “그러니 정의당만 좋게 하는 선거제도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에 정의당이 ‘오 사무총장의 편견’이라며 맞받아쳐 양당 간 논란의 불이 붙었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은 10일 브리핑에서 “공수처법의 세부 합의 또한 서둘러 처리하자고 촉구한 것이 심 위원장의 발언 취지인데, 오 사무총장이 사실관계를 호도했다”며 “‘안달이 났다’는 비속한 표현도 유감이지만, 무엇보다 ‘정의당만 좋게 하는 선거제도'란 표현은 매우 충격”이라고 지적했다.

    정 대변인은 “오 사무총장의 표현은 선거제 개혁을 위해 단식까지 했던 바른미래당의 노력을 스스로 부정하고 폄훼하는 것”이라며 “한국당과 다를 바 없는 발언에 거듭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선거제 개편’ 띄우고도 잠잠한 與 

    하지만 사실상 키를 쥔 것은 민주당이라는 시각이 크다. 바른미래당과 정의당의 싸움으로 비칠 뿐, 민주당이 뒤로 빠진 모양새라는 것이다.
    당초 ‘선거제 개편’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이다. 여기에 민주당은 지난 1월 야3당이 단식농성을 벌이자 “한국당을 제외한 패스트트랙을 추진하자”며 공조 분위기를 형성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선거제 개편안을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과 연계해 처리하자고 단서를 내건 것에 속내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못 이기는 척하겠다고 해 잠정합의된 선거제 개편 패스트트랙안도 사실 원래 야 3당과 시민사회가 요구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한참 못 미친다. 그래도 (야 3당으로서는) 조급하니까 개혁논의를 지속한 것”이라면서 “그런데 줄기차게 공수처, 검·경 수사권 조정과 연계처리를 요구한다. 바른미래당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같은 보수 야당인) 한국당을 제외한 채 공조하는 게 부담스러운데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도 그걸 모르지 않았을 텐데 끝까지 왜 자신들 입장만 고집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도 10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선거제 개편 등 ‘빅딜’을 제안한 민주당에 대해 “(요즘) 식물여당 같다. 살아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기득권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여당이 바른미래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기소권 없이 수사권만 주는 공수처안으로) 양보해야 한다고 본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도 ‘공수처가 기소권‧수사권을 다 갖게 되면 또 하나의 괴물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수사권만 가진 공수처를 설치하고, 검찰에 재정신청권을 부여하면 된다’고 제안했다”면서 “그런데 이제 와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여론 핑계를 대며 ‘기소권 없이 안 된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바른미래당의 제안을 받아줘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