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 불가피성만 강조, 시민 살림살이에 대한 걱정 보이지 않아‘알맹이 없는’ 경영혁신 방안...혁신, 자구노력과 거리 멀어
  • ▲ '이젠 서울시민들의 삶이 퍽퍽하지 않은가?' 지난 11월 2일 새벽, 박원순 시장은 환경미화원들과 함께 쓰레기를 치우며 땀을 흘렸다. 박 시장은 당시 간부회의에서 대중교통요금 인상을 총선 뒤로 미루겠다는 뜻을 밝혔다. ⓒ 사진 연합뉴스
    ▲ '이젠 서울시민들의 삶이 퍽퍽하지 않은가?' 지난 11월 2일 새벽, 박원순 시장은 환경미화원들과 함께 쓰레기를 치우며 땀을 흘렸다. 박 시장은 당시 간부회의에서 대중교통요금 인상을 총선 뒤로 미루겠다는 뜻을 밝혔다. ⓒ 사진 연합뉴스

    “지금 지하철이 적자가 굉장히 많다. 그런데 1천만 서울시민의 발인 지하철요금을 함부로 올리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9월 30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단일후보 경선 1차 합동토론회, 민노당 최규엽 후보가 “서울시장이 되면 대중교통요금을 올리자 말자”는 제안에 동의하며)

    “박 시장은 부채규모를 줄이기 위한 자구 노력을 먼저 보여준 뒤에 인상하는 게 좋다는 입장을 최근 간부회의에서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11월 2일 MBC 뉴스데스크의 단독 보도)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지, 우리가 더 노력할 부분은 없는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물가대책위를 거쳐 여러 관련 기관들의 혁신방안이라든지 대안을 충분히 들어보고 인상시기와 정도 등을 고려해 발표하겠다” (지난해 11월 10일 서울시의회 제235회 정례회 1차 본회의)

    박원순 서울시장은 2일 오후 서울시청 기자실에서 지하철과 버스요금을 각 150원 올리기로 한 대중교통요금 인상안을 발표헸다.

    4년10개월간 누적 적자가 “3조5천억원에 이르며...도시가 부도가 날 것 같아” 요금을 인상할 수 밖에 없다고 시민들의 양해를 구했다.

    “지난 4년간 폭탄돌리기를 해왔다”“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이번만큼은 요금을 인상할 수 밖에 없다고도 강조했다.

    오는 25일 새벽 4시를 기해 지하철과 버스 요금을 각 150원 인상하겠다는 발표가 나온 지 하루가 지난 3일, 서울시민들은 박 시장이 강조한 것처럼 요금인상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이고 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지하철과 버스의 심각한 누적적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박 시장의 설명대로 서울시 대중교통요금인상 압박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그나마 지난 연말 인상요구를 지금까지 미룬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느낌이 있다. 뭔가 찜찜해 하는 표정들이다. 무엇 때문일까? 단지 지하철과 버스 요금이 올랐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까?

    1월 30일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대중교통요금 인상 계획을 철회할 것으로 요구했다. “서울시민의 살림살이에 대한 우려나 걱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시민들이 찜찜해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취임 직후였던 11월 2일 새벽녘, 환경미화원을 찾아 “시민들의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팍팍하다”했던 박원순 시장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석달이 지났다. 박 시장의 눈엔 이제는 150원 쯤 올려도 될 만큼 서민들의 삶이 퍽퍽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것일까?

    대중교통요금 인상안을 발표하는 박 시장의 모습은 결연했다. 전임 시장이 여론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던 '폭탄돌리기'를 끝내겠다는 ‘의연함’도 보여줬다.

    그러나 매일 아침 지하철과 버스로 출근하는 서민들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따른 미안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요금을 인상하지 않겠다”고 했던 후보자 시절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사과가 없었다.

    ‘말 바꾸기’에 대한 최소한의 ‘유감’ 표명을 기대했던 이들에게 날아 온 건 “요금을 인상치 않으면 도시가 부도가 날지 모른다”는 섬뜩한 협박이었다.

    당선 직후 박 시장은 지하철로 출근하는 파격을 보여주며 대중교통요금 인상계획을 묻는 질문에 “깊이 있게 여러 가지 논의를 충분히 해봐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작년 11월 서울시의회에서 150원 인상안에 대한 검토의견을 통과시켰을 때도 “지하철과 버스 운영 기관의 혁신과 자구노력 진행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역시 신중한 입장을 고수했다.

    여러 가지 논의를, 혁신과 자구노력에 대한 고민을 그만큼 충분히 한 결과라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2일 밝힌 경영혁신 방안은 버스회사에 대한 지원금 삭감, 지하철공사 고위직 임원 연봉 삭감, 지하철공사 물품의 공동구매와 이면지 활용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깊이있게 여러 가지 논의를 충분히 한 결과”라면 너무 실망스럽다. 고위직 연봉 삭감과 물품 공동구매, 지적재산권 공동사용, 이면지 활용 역시 ‘혁신과 자구노력’으로 보기에는 거리감이 있다.

    경영혁신 방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버스회사에 대한 지원금 삭감 역시 타시도와 비교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인천시의 경우 2009년 준공영제를 도입하면서 운전직 근로자의 인건비만 재정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관리직 인건비에 더해 매년 7백억원 이상의 이윤을 별도로 보장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제도를 뒤늦게 개선한 것에 불과할 뿐 ‘경영혁신’은 아니다.

    지금까지 박 시장의 발언을 종합하면 서울시는 버스 및 지하철 운영기관의 자기혁신과 자구계획이 포함된 개선안을 마련한 뒤 요금을 인상했어야 했다. 그리고 후보자 시절 약속을 지키지 못한데 대한 사과를 구했어야 했다.

    이번 대중교통요금 인상으로 박 시장은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하게 총대를 메는 용기를 보여주며 ‘과단성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말 바꾸기’로 후보자 시절 보여줬던 도덕성에는 적지 않은 상처가 났다. 알맹이 없는 혁신 방안을 내놓으며 그의 시정능력도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차제에 지켜볼 일이 하나 더 있다.

    박 시장은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며 매우 많은 ‘센터’와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정보소통센터 ▲서울공공투자관리센터 ▲서울마을방송국센터 ▲서울시 직장맘 지원센터 ▲전세금보증센터 ▲서울택시센터 ▲공동체돌봄센터 ▲지역건강센터 ▲지역정신보건센터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SSM과 재래시장, 대기업과 중소기업 분쟁조정을 위한 사전조정협의회 ▲민생문제위원회 ▲공공요금 검토심의위원회 ▲버스회사감독위원회 ▲각 구마다 공동주택분쟁조정위원회 ▲서울시민건강위원회 ▲노사민정협의회 등 위원회와 협의회를 새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여기에 길거리 농구장과 안전한 놀이터를 100곳 만들고 각 구에는 동네예술창작소를, 마을에는 건강 산책길과 쉼터를 만들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이제 박 시장은 후보자 시절 서울시민들에게 한 말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소통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한 말에 대한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