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시절 ‘반대’-당선 직후 ‘건설’-다시 ‘검토해 봐야’지지세력 시민사회 반대에 눈치보기 급급
  • ▲ 일본 방문 이틀째인 9일 도쿄 도심 환상7호선 대심도터널을 둘러보는 박원순 서울시장.ⓒ
    ▲ 일본 방문 이틀째인 9일 도쿄 도심 환상7호선 대심도터널을 둘러보는 박원순 서울시장.ⓒ

    “기존 방재정책을 강화해 나가면서 지하 저류터널을 건설하겠다(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당시)

    대규모 예산이 필요한 하수관거(대규모 하수관) 증설은 하지 읺겠다. 대신 도시의 자연 배수 기능을 최대한 살려 서울을 ‘빗물 순환도시’로 만들겠다”(무소속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재보궐 선서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심도터널’ 구상이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당시 경쟁자였던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의 공약사항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박 시장은 당시 나 후보의 대심도터널 건설 공약을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 토목행정”으로 정면 반박했다.

    특히 박 시장은 후보자 시절과 당선 직후, 그리고 이번 일본방문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말을 바꿔 이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은 지난해 서울시장 후보자 시절 오세훈 전 시장의 시정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특히 “대규모 토목공사”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나타냈다. 치수책으로서의 대심도터널에 대한 그의 부정적 입장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박 시장에게 대심도터널은 오 전 시장이 추진했던 여러 가지 토목공사 중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때문에 박 시장은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수해 방지대책으로 대심도터널 건설의사를 밝히자 “대규모 예산이 들어간다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대신 “서울을 빗물 순환도시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불과 보름도 안 돼 정반대로 바뀐다. 지난해 11월 10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 출석한 박 시장은 첫 시정연설을 하면서 슬그머니 대심도터널 건설계획을 끼워넣었다.

    “(중략) 일곱째, 재해 없는 안전한 서울을 만들기 위해...대심도 빗물저류배수시설을 구축하고 빗물펌프장을 신설 또는 증설할 것입니다“

    예산만 낭비하는 토목행정이라며 무시했던 대심도터널 건설계획이 어느새 재해 방지 대책의 핵심으로 자리매김 한 것이다. “서울을 빗물의 순환도시로 만들겠다”던 감성적 대책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재해 정책의 핵심이 바뀌었는데도 이렇다 할 해명은 없었다.

    더 심각한 것은 그 다음부터 보여주고 있는 박 시장의 ‘오락가락한’ 행보다.

    시의회에서 시정연설을 통해 대심도터널 건설계획을 밝혔던 그가 이번에는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며 결정을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원순 시장은 이번 일본방문 중 ‘도쿄 대심도터널’ 시찰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 박 시장은 대심도터널을 살펴보면서 “토목형 예산은 절감하더라도 도시안전 인프라에는 아낌없이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도쿄도 오랜 시간 많은 돈을 들여 시설이 잘 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발언도 나왔다.

    그러면서도 “서울의 치수대책으로서 적절한지는 전문가와 더 논의해 봐야 한다”고 한 발 비켜섰다.

    박 시장의 대심도터널 시찰에는 시 하천관리과 관계자와 박 시장을 후보시절부터 자문해 온 것으로 알려진 박창근 관동대 교수가 함께 했다.

    박 교수는 대심도터털 건설을 반대하는 대표적 인사 중 한 사람이다. 박 교수는 대심도터널 공사에 대해 “8천5백억원의 돈을 쓸 필요 없이 하수관거 확장만으로도 방재가 가능하다”며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작년 12월 서울시청에서 열린 시민대토론회에서도 같은 입장을 나타냈다.

    때문에 박 시장이 대심도터널 건설을 ‘토목공사’로 몰아세우며 반대하는 시민사회를 의식해 결정을 미루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박 시장의 대심도터널 건설 계획이 구체화되면서 시민사회의 반발도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은 지난 10일 성명을 통해 박 시장의 대심도터널 공사계획에 우려를 나타냈다. 서울환경연합은 “박 시장은 후보 시절 22조원 규모의 하수관거 증설계획 백지화를 약속한 바 있다”며 “박 시장의 말처럼 토론과 검증을 통해서 종합적인 치수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어 서울환경연합은 "박 시장이 현지 언급처럼 치밀한 분석과 지역의 상황에 맞는 검토가 필요하다"며 종합치수대책 검토를 위한 민관공동기구 설치, 토목성 치수예산의 집행 재검토 등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