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인상 불가’ 원칙론 고수하면, 노동계 반발 소신 굽히면, ‘말바꾸기’, ‘제 식구 깜싸기’ 비판 서울시버스노조 “이번 파업은 서울시 책임” 박 시장 압박
  • 박원순 시장이 취임 후 최대 난제를 만났다.

    지하철 9호선의 요금인상 요구에는 ‘시민의 눈높이’를 강조한 원칙론으로 응수하면서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트위터를 비롯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박원순 시장을 칭송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 ▲ 서울시내버스가 15년만에 전면 파업에 들어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5년 5월3일 서울시버스노조 조합원들이 서울역광장에서 임금삭감 없는 주5일제 실행을 촉구하며 집회를 여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 서울시내버스가 15년만에 전면 파업에 들어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5년 5월3일 서울시버스노조 조합원들이 서울역광장에서 임금삭감 없는 주5일제 실행을 촉구하며 집회를 여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취임 전후 그가 보여준 말 바꾸기와 어설픈 즉흥 행정, 시 직원들의 쌓이는 피로감 등 그간의 우려와 비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박 시장이 상대할 적이 그의 최대우군인 노동계라는 점 때문이다.

    14일 오후 서울시버스노조는 90%가 넘는 압도적 지지로 18일 파업을 결의했다.

    16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마지막 중재절차가 남아있지만 전망은 어둡다.

    9.5% 임금인상과 서울시의 감차 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노조와 임금동결을 주장하는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의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양 측의 간극이 좁혀질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만약 16일 중재가 결렬된다면 그 다음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다. 노조는 이미 중재 결렬시 18일 파업을 공언했다. 15년만에 서울시민의 발이 묶이는 최악의 교통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내버스 운전종사사의 노조 가입률은 90%를 상회한다. 파업이 현실화되는 경우 멈춰서는 시내버스는 7천5백여대가 넘는다.

    서울시가 지하철과 마을버스의 첫차, 막차 시간을 연장하고 자치구별로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한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이것으로 시내버스의 운행 공백을 메꿀 수는 없다.

    시는 사실상 파업을 전제로 대책을 서두르는 분위기다. 노조와 사업주인 조합측의 입장차가 워낙 커 중재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눈길을 자연스럽게 박 시장을 향하고 있다. 특히 박 시장이 지하철 9호선에서 보여준 ‘원칙론’을 이번에도 고수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박 시장이 원칙론을 고수한다면 시와 조합측은 노조의 임금인상을 거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경영여건이 나아지지 않은 상황에서 노조가 주장하는 수준의 임금인상 여력은 없다는 것이 시와 조합측의 일관된 논리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파업은 사실상 불가피하다. 하지만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여줄 수는 있다. 파업의 최대 변수 중 하나인 여론을 시의 편으로 끌어들이면서 파업의 명분을 약화시켜 사태를 조기에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태가 원하는 대로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다. 무엇보다 박 시장 당선의 밑거름이 된 노조에 등을 돌리는 것과 같다는 점에서 박 시장이 ‘원칙론’을 고수하기에는 부담이 커 보인다.

    실제 박 시장은 취임 후 노동계에 대해서는 원칙론에서 비켜간 ‘예외’적 모습을 보이곤 했다. 지하철해고노동자 복직결정이 대표적인 예다.

    일부에서 ‘제 식구 챙기기’, ‘원칙이 없다’는 쓴소리를 들으면서도 박 시장은 노동계에 몸을 낮췄다.

    때문에 박 시장이 이번에도 ‘예외’를 선택할 것이란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정치인이 된 이상 지지기반에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결국 선택은 박 시장에게 달렸다.

    소신을 택한다면 우군의 지지철회가 마음에 걸린다. 반면 노동계의 눈치를 보면서 예외를 택한다면, 파업을 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말바꾸기와 눈치보기에 대한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이미지의 훼손은 물론 시정 장악력도 상처를 입을 수 있다.

    한편 서울시버스노조는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사태의 원인은 서울시에게 있다”며 박 시장을 압박했다.

    노조는 “2004년 준공영제 시행 후 시내버스 운영비용 전액을 책임지고 있는 서울시가 이번 파업의 실질적인 책임자”라며 날을 세웠다.

    특히 노조는 “이번 파업을 피하기 위한 시의 노력부재가 파업의 핵심 이유”라고 꼬집었다,

    노조는 “9.5% 임금인상안을 가지고 일곱차례나 교섭을 했는데도 조합측이 임금동결을 주장하고 있다”면서 시와 조합의 불성실한 교섭 태도를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면서 노조는 “시의 시내버스 감차계획은 일자리 감소로 이어져 고용불안을 야기할 수 밖에 없다”면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조합원들이 강력한 파업의지를 보였다”고 말했다.

    노조는 “시민불편 최소화를 위해 막판까지 파업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면서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예정대로 파업투쟁에 나설 경우 불편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노조는 17일 오후 3시부터 서울역과장에서 조합원 7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총파업 결의 집회를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