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버리려는 與, 김상곤 지켜주는 野“한나라당은 적군과 아군도 구별 못해”
  • “섭섭하다. 그래도 여전히 믿고 있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가 최근 <뉴데일리>와 가진 만남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금급식을 반대하는 주민투표 성공을 위해 중앙당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한 한나라당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대한 소회다.

    “힘들 때 돕는 것 또한 정치 아니겠느냐, 우리도 역시 의리를 지킬 것이다.”

    이 말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최측근 인사가 12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밝힌 말이다. 그는 현재 경기도교육청 직원 신분은 아니지만, 2009년 김 교육감이 당선될 때부터 최측근 정무라인으로 활동 중이다.

  • ▲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과 오세훈 서울시장ⓒ자료사진
    ▲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과 오세훈 서울시장ⓒ자료사진

    민주당 경기도의원들조차 반대해왔던 경기도교육청의 유치원 세금급식이 부분적이나마 통과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뒤 ‘만족감’의 표현이다. 이런 변화 뒤에는 ‘김상곤을 구하라’는 민주당 중앙당의 비밀 지령(?)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금급식’ 하나만으로 2명의 정치인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한사람은 정치적 나락에 직면해 있고 다른 한사람은 기세가 하늘 끝까지 솟았다. 주민투표라는 정치적 승부를 코앞에 둔 오세훈 서울시장과 유치원 세금급식을 내세운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이야기다.

    ◇ 오세훈은 외롭다

    차기 대권 후보 0순위라는 서울시장 직위에 있으면서도 오 시장은 세금급식 주민투표에서만큼은 여당인 한나라당의 이렇다 할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중앙당의 어려운 수고(?)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당 지도부가 주민투표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12일 비공식 원내대책회의에서 서울시 세금급식 주민투표에 대한 중앙당 차원의 개입은 없다고 선언했다.

    “중앙당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 서울시당 차원에서 (지원여부를) 결정할 일”이라는 것이 한나라당 좌클릭의 선봉장 황우여 원내대표의 말이다.

    전날인 11일 오 시장이 다급한 마음으로 여의도로 달려가 요청한 ‘SOS’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셈이다.

    세금급식 문제가 ‘복지 포퓰리즘 논쟁’으로 비화된 만큼 자칫 시한폭탄으로 변화될지도 모르는 이슈에서는 ‘비켜나 있자’는 전략을 결국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인 당 지원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이런 한나라당의 반응에 서울시는 못내 속상한 표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민투표법상 중앙당이 투표 독려 등의 활동을 하는 것이 법 위반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당 지도부에서 공식석상에서 계속 거론해주는 것만으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현 지도부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일단은 주민투표 성사를 위해 함께 뛰기로 한 한나라당 서울시당도 중앙당의 개입을 바라는 눈치다. 한나라당 서울시당 운영위 대변인 강승규 의원은 이날 “중앙당에서는 서울시 문제이기 때문에 서울시에 일임하고 있지만, 중앙당 차원으로 더 커질 수 있다고 본다”고 지원을 당부했다.

    주민투표 과정의 총 지휘봉을 쥐고 있는 서울시 조은희 정무부시장은 “민주당의 부당한 전면 무상급식을 심판하는 주민투표에 서울시당이 적극 참여하고 있어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면서도 “중앙당도 전면보다는 선별적 무상급식을 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늘 중앙당의 발표는)최종 결정된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며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 ▲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6일 세금급식을 반대하는 주민투표 청구 서명용지 앞에서 발언하는 모습 ⓒ 자료사진
    ▲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6일 세금급식을 반대하는 주민투표 청구 서명용지 앞에서 발언하는 모습 ⓒ 자료사진

    ◇ 기세등등 김상곤, 풀죽은 경기도의회 민주당

    민주당 소속도 아닌 단지 진보 교육감으로 분류되는 김상곤 경기교육감은 오 시장과 정반대의 입장이다. 오히려 경기도의회 민주당 도의원들이 침통한 분위기를 보이는 아이러니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이건 아니다”며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유치원 세금급식을 반대하고 나섰던 민주당 도의원들에게 갑작스런 날벼락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무상급식 이슈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 김상곤 교육감의 유치원 무상급식에 힘을 보태달라.”

    민주당 중앙당이 경기도의회 2/3 의석을 점령한 민주당 도의원들에게 내린 당부 아닌 당부다.

    이들 민주당 도의원들은 그동안 유치원 세금급식에 대해 “아직 의무교육인 중학교도 하지 못한 무상급식을 유치원부터 할 수는 없다”며 반발해왔다.

    유치원 세금급식을 위한 예산 마련 계획에 기초단체의 예산도 절반이나 들어가는 것도 ‘억지스럽다’는 입장이었다. 기초단체가 자신들의 지도·감독 영역인 어린이집의 무상급식보다 유치원 급식 지원에 돈을 내야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도 우려했었다.

    이들은 유치원 세금급식 예산이 포함된 경기도교육청의 추경예산안 심사를 보이콧하며 김 교육감의 출석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민주당 도의원들은 중앙당의 개입에 하나둘 손을 들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당 도의원은 “공천을 거론하며 협조를 요구하는 중앙당 인사도 있었다”면서 “아무리 반대를 하고 싶어도 공천 앞에서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기 싶지 않다”고 털어놨다.

    결국 경기도의회 민주당은 당초 김 교육감이 제시한 유치원 전체(만3~5세) 세금급식에서 타협한 만 5세에게만 급식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으로 당론을 모았다.

    올해 2학기 만5세 세금급식을 도입함으로써 내년부터는 전면으로 갈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이에 대해 김진춘 경기도의원(한·교육위)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여당과 자기 식구는 끔찍하게 챙기는 야당의 차이를 몸소 실감케 한 사건”이라고 평하며 “한나라당이 적군·우군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 같은 행태를 계속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 ▲ 왼쪽부터 김상곤 교육감과 김진표 원내대표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가 악수를 나누는 모습 ⓒ 연합뉴스
    ▲ 왼쪽부터 김상곤 교육감과 김진표 원내대표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가 악수를 나누는 모습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