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I 91달러·브렌트유 93달러 급등 … 단기간에 20달러 뛰어쿠웨이트 12일, 사우디·UAE 3주…원유 저장시설 한계 접근유가 비상에 美 공급 확대 카드 … 러시아 원유 제재 완화 가능성
  • ▲ 아랍에미리트(UAE) 연안에서 대기 중인 유조선.ⓒ연합뉴스.
    ▲ 아랍에미리트(UAE) 연안에서 대기 중인 유조선.ⓒ연합뉴스.
    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가파르게 치솟으며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100달러 시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공급 차질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산유국에서는 원유를 수출하지 못해 저장시설이 포화 상태에 가까워지며 감산까지 불가피해지는 등 시장 불안이 빠르게 확산되는 모습이다.

    6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12% 넘게 급등하며 배럴당 91.27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WTI가 90달러를 돌파한 것은 2023년 9월 이후 처음이다.

    국제 유가 기준인 브렌트유 역시 9% 이상 급등하며 배럴당 93달러 선까지 치솟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70달러대 초반에서 거래되던 가격이 단기간에 20달러 이상 급등한 것이다.

    주간 상승 폭도 기록적이다. WTI는 한 주 동안 약 35% 상승하며 1983년 선물 거래가 시작된 이후 최대 주간 상승률을 기록했다. 글로벌 원유 시장이 단기간에 충격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시장에서는 이제 관심이 "유가가 얼마나 더 오르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제 유가가 수일 내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JP모건은 보고서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충격이 현실화되고 있다"며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유가 상승 압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석유 20% 지나는 '기름길' 멈춰

    유가 급등의 직접적인 배경은 중동 지역의 군사 충돌로 인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해상 운송로다.

    영국 해상무역기구(UKMTO)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이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 수는 사실상 멈춘 수준이다. 평소 하루 평균 50척 이상이 통과하던 유조선은 최근 들어 하루 0~3척 수준으로 급감했다.

    선박 위치 추적 데이터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된다. 약 300척의 유조선이 해협을 통과하지 못한 채 인근 해역에 대기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선박은 항적 신호를 끈 채 이동하고 있어 실제 운항 상황은 더 불확실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원유 공급망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이 해협을 통해 하루 약 1500만 배럴의 원유가 이동한다. 여기에 LNG 등 에너지 물량까지 포함하면 하루 약 2000만 배럴에 달한다.

    특히 중국, 인도, 일본,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이 해협을 통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아 충격이 더 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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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뉴스.
    ◇수출 막힌 중동 원유 저장고 한계 임박 … 산유국 감산 불가피

    중동 산유국들도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원유를 생산해도 수출할 길이 막히면서 저장 공간 부족이 현실적인 제약으로 떠오른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쿠웨이트는 원유 저장시설 부족으로 일부 유전의 생산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수출 예정이던 원유가 국내 저장시설로 몰리면서 저장 능력이 빠르게 한계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정보업체 케이플러(Kpler)는 현재 상황이 지속될 경우 쿠웨이트의 원유 저장시설이 약 12일 안에 포화 상태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의 주요 저장시설 역시 빠르게 채워지고 있으며 약 3주 내 저장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라크는 이미 원유 생산량을 절반 이상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유국 입장에서 유전 생산을 완전히 중단하는 것은 사실상 최후의 선택지다. 생산을 멈출 경우 유전이 장기적으로 손상될 수 있고 재가동에도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산유국들은 유전 폐쇄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감산 속도와 규모를 점차 확대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공급 감소가 현실화될 경우 유가 상승 압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100달러는 시작 … 150달러 가능성도"

    시장에서는 유가가 100달러 선을 넘어설 가능성을 기정사실로 보는 분위기다. 일부 전문가들은 상황이 악화될 경우 더 큰 상승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사드 알카아비 카타르 에너지 장관은 최근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된 상황에서 산유국들이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에너지 가격 급등이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물류·제조 비용을 끌어올리고 소비자 물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단기 가격 급등이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구조적 충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중동 지역 긴장이 장기화될 경우 유가 상승은 물론 세계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도 크게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연합뉴스.
    ▲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연합뉴스.
    ◇美, 유가비상에 "러 원유 제재 추가완화 가능"

    이처럼 유가 급등세가 이어지자 미국도 공급 확대 카드를 검토하며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글로벌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자 러시아산 원유 제재 완화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중동발 공급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가 다시 시장에 일부 유입될 수 있도록 길을 열겠다는 의미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6일(현지시간)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최근 인도에 대해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허용한 조치를 언급하며 “다른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도 해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미 재무부는 인도 기업이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시적 일반 면허를 발급했다. 이 조치는 3월 5일 이전 유조선에 선적돼 이미 해상에 있는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제품에 적용되며, 4월 4일까지 30일간 유효하다.

    베선트 장관은 "해상에는 제재 대상인 러시아산 원유 수억 배럴이 존재한다"며 "이들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면 단기적으로 공급을 늘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동 분쟁으로 인한 일시적 공급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러한 대응이 유가 상승 흐름을 근본적으로 되돌리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월가 주요 투자은행과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길어질 경우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