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는 명분, 진짜 고민은 빚투와 자산버블코스피 9000·대출 9.3조 … 시장 과열 경고음 커진다증시 부양과 빚투 확산이 남긴 후폭풍과열의 청구서 앞에 선 신현송
  • ▲ 신현송 한은 총재 ⓒ뉴데일리
    ▲ 신현송 한은 총재 ⓒ뉴데일리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가장 섬뜩한 장면은 폭발 그 자체가 아니다. 과학자들이 계산한 숫자가 현실의 불덩이가 되는 순간이다. 이론은 종이 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금리라는 버튼은 누르는 순간 시장 전체로 충격이 번진다.

    지금 한국은행을 둘러싼 논쟁도 비슷하다. 신현송 총재는 연일 물가를 경고한다. 시장은 연일 금리 인상 가능성을 걱정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다른 곳에 있다. 지금 한은이 잡으려는 것이 정말 물가인가, 아니면 물가라는 이름으로 커져버린 자산시장 과열인가 하는 점이다.

    최근 한 달 동안 신 총재는 공개석상에서 네 차례 연속 물가 상방 위험을 언급했다. 지난 17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도 "상당 기간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될 것"이라며 적극 대응 방침을 재확인했다. 

    중동 전쟁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월 3.1%까지 올라 2024년 3월 이후 처음으로 3%대를 기록했다. 근원물가도 2.5% 수준까지 높아졌다. 원·달러 환율은 한때 1560원을 돌파했고 국제유가 역시 배럴당 100달러 재돌파 가능성이 거론된다. 중앙은행 입장에서 경계심을 높일 만한 변수들이다.

    신 총재의 문제의식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물가를 밀어 올리는 핵심 요인은 금리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에 있다. 중동 리스크에 따른 유가 상승, 환율 불안, 공급망 차질이 대표적이다.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다고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는 것도 아니고 국제유가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시장 일각에서 "감기에 걸렸는데 해열제만 반복해서 먹이는 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물가보다 시장이 먼저 달아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코스피는 1년 만에 9000선을 넘어섰고 투자자예탁금은 131조원을 돌파했다. 주식 투자자는 1455만명에 이른다. 영유아 계좌 개설이 3배 이상 급증하고 노후자금을 들고 증권사 창구를 찾는 70·80대도 낯설지 않다. 직장인들은 장이 열리는 오전 9시면 화장실로 향한다. 주식이 투자 수단을 넘어 일종의 생활양식이 된 셈이다.

    돈이 몰리는 곳에는 언제나 빚이 따라붙는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5월 한 달 동안 9조 3000억원 증가했다. 2024년 8월 이후 가장 큰 폭이다.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은 다시 불어나고 있고, 60대 이상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8조원을 넘어섰다. 서울 강남권 집값도 재차 들썩이고 있다. 신 총재가 물가를 이야기하면서도 환율과 가계부채, 부동산을 함께 언급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한은에 돌리는 것도 공정한 평가는 아니다. 지금의 과열은 한은이 만든 것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취임 하자 마자 '코스피 5000'이 국정의 도그마라도 되는 듯, 증시 부양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며 추경과 자본규제 완화 등을 통해 최대 98조 7000억원 규모의 추가 유동성 공급 여력을 마련했다. 시장에 돈이 밀려드는 구조를 만든 뒤, 그 부작용은 한국은행이 금리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신 총재가 마주한 현실은 단순한 물가 문제가 아니다. 물가와 환율, 가계부채와 빚투, 집값과 주가를 한꺼번에 떠안은 독배에 가깝다. 금융권에서도 최근 한은의 긴축 신호를 두고 "물가 대응이라기보다 금융안정 대응에 가깝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 유가발 물가 충격을 잡기 위한 금리 인상이라기보다 자산시장 과열을 식히기 위한 경고에 가깝다는 의미다.

    어쩌면 지금 한은이 받아든 것은 물가 보고서가 아니라, 현 정부가 키운 유동성 과잉의 청구서인지도 모른다. 지난 1년 동안 시장에 쌓인 기대와 레버리지, 과열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명세서 말이다. 누가 그것을 만들었는지는 아직도 논쟁거리다. 다만 그 대가를 가장 먼저 치르게 된 사람이 한은 총재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오펜하이머의 계산은 맞았다. 그러나 폭발 이후의 세계는 계산 밖이었다. 신 총재의 경제학도 맞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정답이 어느 시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먼저 폭발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