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격을 왜 《화재 / 폭발》이라 하나드론을 왜 《미상 비행체》라 하나이스라엘은 때리면서 왜 이란엔 비굴?
  • ▲ 누가 봐도 이란의 자폭드론 2대가 나무호를 때린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왜 홍길동 같은 신세를 스스로 처신하고 있을까?
    ▲ 누가 봐도 이란의 자폭드론 2대가 나무호를 때린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왜 홍길동 같은 신세를 스스로 처신하고 있을까? "한다면 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호언장담은 어디 갔는가? ⓒ 챗GPT
    ■ 천안함 되어가는 나무호

    정부는 알까? 모를까?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정말 모른다면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한국 HMM의 다목적 운반선《나무(NAMU)호》가 호르무즈 해협에서《미상 비행체》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폭 5미터, 깊이 7미터의 파공은《화재》라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선미가 뜯겨 나가고 기관실 바닥이 뚫렸는데도 정부는 한동안《선박 화재》라는 표현을 고집했다. 

    심지어 미국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한국 선박이 피격됐다”고 말한 뒤에도, 청와대는 “피격이 그렇게 확실하지 않은 것 같다” 고 얼버무렸다. 
    마치 눈앞의 연기를 보고도 불이 아니라 안개라고 우기는 격 이었다. 

     
    ■ 얻어 맞고도 맞았다고 말 못하고…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단순히 한국 선박 나무호가 공격받았다는 데 있지 않다. 
    정부가 공격의 실체를 애써 흐리려 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더 큰 문제다. 

    국민이 가장 궁금한 것은 단 하나였다. 

    “누가 쏘았는가?” 

    그에 대한 정부의 답변은《미상의 비행체》였다. 
    사람들은《미상의 비행체》하면 쉽게 UFO 를 떠올린다.     
     
    한국의 처지는 홍길동보다 더 기구해 보인다. 
    홍길동은 아버지를《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형》이라 부르지 못했을 뿐이다. 

    한국은 맞고도 맞았다 말하지 못하고, 누가 때렸는지 말을 못하는 격이다.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더 황당한 건, 한국이 맞았다고 말하지 못할 때, 때린 쪽이 먼저 나서 때렸음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란 국영 매체의새롭게 정의한 해상 규칙을 위반한 한국 선박을 겨냥한 조치라는 발언이 그것이다. 

    사실상 자백에 가까운 메시지를 듣고도 정작 피해 당사국은 말끝을 흐렸다.  
     
    물론 외교는 신중해야 한다. 
    섣부른 단정은 국제 분쟁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신중함과 비겁함은 차원이 다르다. 
    외교적 언어는 정교해야 하지만, 현실 인식까지 모호해져서는 안 된다. 
    국가안보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오판이고, 오판보다 더 위험한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다. 

     
    ■ "패가망신" 이재명의 기개, 어디 갔나?

    더 큰 문제는 이런 모호함이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는 언제부턴가불편한 진실을 말하지 않고 모호하게 표현하는 것이 외교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나라의 정부가 쓰는 언어는 그 나라 국민수준의 평균치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상대에게 맞고도 “맞은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식으로 표현한다면, 그건 국격의 문제일 수도 있다. 

    맞지 않았는데 맞았다고 주장하는 건 억지스럽지만, 맞았는데 맞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건 바보스럽다
    국민 수준이 낮아 보이는 순간, 더 큰 도발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동북아처럼 힘이 가로로 세로로 얽힌 지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른 나라 선박이었다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미국 일본 같은 경우에도《미상의 비행체》라고 표현하고 말았을까? 
    아마 즉시 조사단을 보내고, 공격 주체 규명에 총력을 기울이며, 국제사회에 공조를 호소했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엑스(옛 트위터) 계정에 
    “한국인을 건드리면《패가망신》, 
    빈말 같습니까. 
    대한민국은 한다면 합니다. 
    끝까지,”
    라고 적은 바 있다. 

    그 기개를 다시 보여줄 때다.    

     
    ■ 미국 싫고, 중국 눈치 봐서 그런가

    이번 사건은 단순 해프닝으로 넘기기 어렵다. 
    한미 공조 문제까지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미국은 초기에 피격 가능성을 명확히 언급했지만, 한국 정부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양국 간 정보 공유에 이상이 생긴 것 아닐까 하는 우려까지 나오는 판이다.  
     
    물론 정부의 일처리가 완벽할 순 없다. 
    국민도 완벽함을 바라선 안 된다. 

    하지만 정부는 진실 추구 차원에서 적극성을 보여줄 의무가 있다. 
    정부의 모호한 태도는 국민에게혹시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남기기 쉽다. 

    용어 선택과 표현에도 신중함이 필요하다. 
    뻔히 드러날 진실 앞에서 용어를 흐리고 표현을 비틀면 《신뢰》가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강조하지만 안보전략를 위해 무기보다 더 중요한 게《신뢰》다. 
    양치기 소년이 늑대의 습격을 받아 물어뜯겼던 건 소년의 갈급한 외침이《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가 나무호를 쏘았는가?” 

    지금 국민은 그《주어》를 묻고 있다. 
    아울러 왜 정부가 그《주어》를 말하지 못하는지도 함께 묻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물음은 이것이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누구》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