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 보상 확대에도 제도화 고수 도돌이표사업부문별 격차 키워 협상력 스스로 좁혀오히려 명분만 잃을라 … 타이밍 놓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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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쟁사 이상은 보장하겠다."
    "그래도 안 된다. 제도를 바꿔라."

    삼성전자 노사 협상이 또다시 멈춰 섰다. 회사가 사실상 초과이익성과급(OPI) 상한을 넘어서는 보상안을 내놓았지만 노조는 '상한 폐지의 제도화'를 고수한 채 교섭 중단을 선언했다. 실질적인 보상 확대의 문은 열렸는데 협상은 오히려 닫혔다. 남은 것은 "더 달라"는 요구와 '명문화'라는 명분뿐이다.

    이번 협상에서 회사가 내놓은 카드는 가볍지 않다. 반도체(DS) 부문이 업계 1위를 달성할 경우 메모리사업부에 경쟁사 이상 성과급을 보장하는 특별 포상안을 제시했고, 기존 OPI 상한을 사실상 뛰어넘는 보상도 가능하도록 했다. 여기에 6.2% 임금 인상, 최대 5억원 주거안정 지원, 출산 경조금 확대 등 복지 패키지도 더했다.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양보다.

    그럼에도 협상은 깨졌다. 이유는 분명하다. 노조가 협상의 중심을 '얼마를 더 받을 것인가' 아니라 '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고정시켰기 때문이다. 회사가 "우선 특별 포상으로 적용하고 제도 개선은 추가 논의하자"는 절충안을 내놨지만 노조는 이를 거부했다. 제도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어떤 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은 협상의 여지를 스스로 좁히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미 실질 보상은 열려 있었지만 협상은 '명분'이라는 틀에 갇혀버린 셈이다.

    더 따져볼 지점은 따로 있다. 과연 이 요구가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점이다. 노조안은 겉으로는 공정한 보상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사업부 간 격차를 키울 가능성이 크다. 회사 설명대로라면 해당 구조를 적용할 경우 일부 비메모리 사업부의 성과급은 기존 대비 크게 낮아질 수 있다. 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제시된 안이 특정 사업부에 유리하게 작동한다면 그것은 전사 보상 체계라기보다 이해 관계의 재편에 가깝다.

    삼성전자는 단일 사업부 기업이 아니다.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그리고 DX 부문까지 서로 다른 수익 구조와 성장 단계에 놓인 조직이 공존하는 복합기업이다. 이 구조에서 한쪽의 기준으로 설계된 보상 체계는 다른 한쪽의 동력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전사 균형을 고려하지 않은 공정은 결국 또 다른 불균형을 낳는다.

    타이밍도 좋지 않다. 지금 삼성전자가 마주한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AI 반도체와 고대역폭메모리(HBM), 파운드리 경쟁이 동시에 전개되는 가운데 인재 확보와 유지가 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이런 국면에서 노사 협상이 명분 싸움으로 흐르는 것은 회사뿐 아니라 구성원 모두에게 부담이다. 업황 회복이라는 기회는 길게 열려 있지 않다. 지금은 요구를 극대화할 때가 아니라 기회를 현실의 보상으로 연결할 때다.

    노조의 역할은 더 나은 조건을 끌어내는 데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이 '제도화 아니면 불가'라는 이분법에 머문다면 협상은 기능을 잃는다. 협상은 상대를 압박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실을 반영해 타협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지금처럼 제도 변경을 전제로 모든 논의를 멈춘다면 그것은 협상이 아니라 선언에 가깝다.

    책임의 문제도 피할 수 없다. 초기업노조는 이미 최대 노조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요구의 크기만큼 시야도 넓어져야 한다. 하지만 초기업노조의 현재 행보를 보면 더 큰 의문이 남는다. 과연 이 조직이 전체를 대변하고 있는가다.

    초기업노조가 과반 노조 지위를 선언했던 올해 1월 말 기준 DX부문 조합원은 1만4227명으로 전체의 22.4%를 차지한다. 절대 다수는 아니지만 조합원 네명 중 한 명꼴이다. 그럼에도 지금 협상 과정에서 DX부문에 대한 고려나 균형감은 좀처럼 읽히지 않는다. 지난해 말부터 DX부문까지 가입을 적극 독려하며 세를 키워왔지만 정작 협상 테이블 위에서는 이들의 이해가 충분히 반영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회사 역시 과제가 있다. 성과급 제도의 복잡성과 불투명성은 오랜 갈등의 원인이었다. '특별 포상'이라는 임시 해법만으로는 신뢰를 쌓기 어렵다. 결국 제도는 명확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다만 그 개편은 협상의 결과로 만들어져야지,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강제될 수는 없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 노조는 무엇을 위해 협상을 멈췄는가. 더 나은 보상을 위해서인지, 더 나은 제도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명분을 지키기 위해서인지다. 만약 마지막이라면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경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회사가 흔들리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도 구성원이다. 노조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교섭 중단이 아니라 방향 수정이다. 더 세게 밀어붙이는 힘이 아니라 더 넓게 보고 더 정교하게 타협하는 능력. 그것이 지금 삼성전자 노조가 보여줘야 할 책임 있는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