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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바스라 정유공장 고도화설비 현장. ⓒ현대건설
"올해 해외사업은 공쳤다고 봐야죠. 원전이요? 그게 단기간에 되겠습니까."(대형건설사 관계자 A씨)
건설업계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국내 주택사업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믿던 해외사업마저 전쟁이라는 초대형 악재에 맞닥뜨렸다.
핵심 수주 텃밭인 중동은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문이 잠겼고 그나마 블루오션으로 기대를 모으는 원자력발전은 지난해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해외수주 위기론이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정부가 해외수주 지원에 소극적이라는 '책임론'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정부 고위급간 스킨십을 통해 새 시장을 개척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그 결과 과도한 중동 의존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5월 체코 원전 수주 이후 민관합동 '팀코리아' 활동이 지지부진하다는 평가도 적잖다. 실제 새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6월 이후 팀코리아를 주축으로 한 대형 수주 낭보는 들려오지 않고 있다.
정부 무관심 속에 건설사들은 고군분투를 이어가고 있지만 실적은 신통치 않다.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액은 473억달러로 2014년 660억달러 이후 11년만에 최고치를 찍었지만 여기엔 체코 원전(187억달러, 39.6%) 수주에 따른 착시효과가 작용했다.
실제 유럽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수주가 감소했다. 중동 수주액은 119억달러로 1년 만에 35.8%나 줄었고 아시아와 중남미도 각각 10.0%, 9.3%씩 감소했다.
북미 경우 68억달러로 전년 47억달러대비 늘었지만 대부분이 삼성전자·현대차 등 그룹사 물량이다.
올해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1~3월 누적 수주액은 13억달러로 전년동기 82억달러의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중동 수주액은 고작 3억달러로 전년동기 50억달러에서 94%나 빠졌다.
물론 여기에는 중동 산유국들의 재정 악화와 지정학적 위기라는 시장 대외적인 요인이 작용했지만 정부도 국내사들의 수주 지원과 신 시장 개척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해외시장에서 건설사가 기술력만으로 승부를 보던 시기는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선진국이든 중진국이든 대형 프로젝트 입찰이 예정된 경우 건설사는 물론 정관계 고위급 인사가 총출동한다. 더군다나 최근 해외사업 중 상당수가 공적개발원조(ODA)나 민관 합동투자 방식으로 진행돼 정부와 건설사간 팀워크가 더욱 중요해졌다.
한 건설사의 개인기만으로 해외 수주를 따내는 방식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특히 중견·중소건설사라면 정부 지원 없이 자력으로 해외사업을 수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기존 수주 텃밭이라면 그나마 상황이 낫지만 신규 시장에서는 수주 가능성이 '제로'다.
'K-건설'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중국과 인도 등 국가의 건설사들이 막강한 정부 지원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해외 건설시장을 빠르게 잠식해나가고 있어서다.
당장 필요한 것은 다각화다. 기존 수주 텃밭 외 신규 시장을 뚫어놔야 전쟁 등 외부변수와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 고위급 간 끈끈한 네트워크 구축이 선행돼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업 포트폴리오도 변화가 필요하다. 단순도급에서 벗어나 투자개발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야 건설사들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좁디 좁은 중동시장에 갇혀 말라 죽을 뿐이다. 물론 사업 포트폴리오 변화에도 정부의 통큰 지원이 필요하다.
'기회는 위기의 옷을 입고 온다'는 말이 있다. 팀코리아가 국내 건설사들이 글로벌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주길 기대해 본다.